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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5.02.02 03:41
최지혜의 예술칼럼 (5)매트릭스로 철학하기...슬라보예 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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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슬라보예 지젝 인간들이 수많은 인큐베이터 속에서 누워있던 충격적인 장면, 중국의 쿵후를 보는 것과 같았던 키아누리브스(Keanu Charles Reeves,1964-)의 총알을 피하던 장면 등, 이 재미있는 영화에 심오한 철학의 의미를 더하는 석학들이 만들어낸 책'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1949-)과 다른 많은 철학자들이 영화<매트릭스>에 대해서 자신의 철학적 시각을 담은 책을 편찬했는데, 이것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MATRIX & PHILISOPHY)" 이다. 이 중에 나는 지젝이 쓴 15장을 통해 과연 무엇이 가상 세계인지, 무엇이 현실 세계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서유럽 학자들이 '동유럽의 기적' 이라 할 정도로 세계적인 철학자인 지젝은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Ljubljana) 대학교 사회학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 자크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비판이론가이다. 현실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1990년 슬로베니아 공화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 대중문화에서 온 예시들을 라캉의 이론과 라캉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철학과 마르크스의 경제비판이론으로 사회현상을 해석, 비판하는 대륙철학자로서, '광신도를 몰고 다니는 사람' 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각광받고 있는 사상가이다. 2013년 3월 경희대학교에서 외국어대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 학교' 에미넌트 스칼러(eminent scholar)로 그를 임용했다고 한다. 지젝은 한 지방 작은 극장에서 '매트릭스' 를 봤다라고 한다. 옆에는 시종일관 영화에 흥분하며 반응하는 젊은 청년이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 그에게 이 청년의 반응은 아주 날 것처럼 신선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이 청년같은 일반 사람들이나, 라캉을 연구하는 철학자들, 프랑크푸르트 학파들, 또한 뉴에이지(New age)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 등 모두가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과 부합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플라톤(Plato, BC 427-347)의 "국가론" 을 언급한다. 매트릭스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하면서, 동굴 밖 태양 빛으로 빛나는 세계가 그냥 황량한 '진실의 사막' 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했다.
플라톤의 동굴 지젝은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우리가 영화 '매트릭스' 와 같이 세계 너머에 '진정한 현실' 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늘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진정한 현실은 '매트릭스' 에서처럼, 피터 와이어(Peter Weireter. 1953-) 감독의 '트루면 쇼(The Truman Show)', 필립 딕(Philip Kindred Dick, 1928-1982)의 소설 '뒤죽박죽 된 시간(Time out of Joint)', 그리고 슬로터디예크(Peter Sloterdijk, 1947-)의 '구(Shperes)' 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삶이 구체성을 잃고 공허한 모습으로 비쳐진다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앨디스(Brian Adliss, 1925-)의 소설 '우주선(Spaceship)', 조지 시어튼(George Seaton, 1911-1979)의 영화 '36시간(36 Hours)'에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외, 챈들러(Raymond Thornton Chandler, 1888- 1959)의 '안녕, 내 사랑(Farewell, My Lovely)' 과 히치콕(Sir Alfred Hitchcock, KBE, 1899-1980년)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를 예를 들면서, 우리가 중세 원근법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지젝은 영화 '매트릭스'속의 매트릭스가 진정한 실재를 은폐하는 라캉의 '대타자' 라고 한다. 이 대타자는 상징계에서 주체를 조직적으로 소외시키며,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무엇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대타자가 바로 사회적 실체라고 했다. 이러한 대타자의 일관성을 재구성하기 위해 환상을 만들고, 또한 사회적 구조라는 타자 뒤에 숨어서 사회적 삶의 예기치 못한 효과들을 계획하고 그럼으로써 일관성을 보장하는 또 다른 타자에 대한 믿음에서 편집증이 생긴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 일상 생활은 컴퓨터 네크워크라는 대타자 안에서 이러한 편집증이 더욱 심해지고 있고, 영화 '매트릭스' 는 이와 같은 삐딱한 편집증적 시선으로 거대컴퓨터 대타자인 매트릭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 '매트릭스' 는 대타자 매트릭스에 의해 유지되는 일상적인 현실의 배후에 또 다른 진정한 실재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불완전하고 모순된 현실의 모든 모순을 은폐하는 것이 바로 매트릭스의 기능이라고 했다. '매트릭스' 속편들에서 결국 우리는진실의 사막(진정한 현실)도 또한 매트릭스가 만들어 낸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는 의사 소통을 통해 이상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는 대화적 공동체를 언급했는데, 지젝은 이것이 대타자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양식이 문화적인 면에서 서로 공통 분모를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해져서, 이 대타자가 근본적으로 분열, 붕괴되고 있다고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의 범람으로 인해 이러한 붕괴현상이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고 하면서, 사이버 공간의 실재 지식인 과학적 지식이 이렇게 대타자의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근대 과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상식 철학적 존재론 사이의 간극은 극복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 쳐해 있는 듯하다. 즉, 지젝은 우리가 무엇을 용인된 진실로 간주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특정 사회에서 의미의 지평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대타자가 결코 실재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이 제공하는 사실들에 직접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젝은 또 다른 견지에서 매트릭스를 설명한다. 매트릭스는 우리를 실재로부터 분리시키고 진실의 사막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보호막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재는 환상이라는 보호막에 의해 은폐되고 고상하게 꾸며지고 길들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왜곡하는 장애물로서의 보호막 그 자체인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 2009)의 '구조 인류학(Structural Anthropogy)' 에서 위네바고족이 건물들을 공간적으로 배열하는 방법을 통해 지젝은 실재는 부인된 무언가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에 대한 시각은 일그러져 왜곡된다고 한다. 지젝은 남성-여성과 좌파-우파, 이 양쪽을 모두 포괄하는 중립적인 관념으로 다시 레비 스트로스의 '영 제도(Zero institution)' 을 도입한다. 이러한 영제도안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이 영제도안에서 어떻게 중층결정되고 채색될 것인가가 달려있다고 했다. 근대국가의 의미도 직계 가족이나 전통적이고 상징적인 매트릭스들에 근거를 둔 사회적인 유대의 소멸과 함께 중립적인 공통의 근거의 필요에 의해 출현한 것이라고 이 영제도를 들어 설명을 했다. 또한, 이 영제도를 통해, 고급 모더니즘을 대표하는상징적 예술가들, 말레비치(Kazimir Malevich:1878-1935)의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과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1968)의 변기를 예로 현대 예술의 실재를 3가지 차원으로 설명했다.
마르셀 뒤샹 <샘> 상상계-상징계-실재계라는 삼원 체제를 반복하는데, 실재는 왜상적인 얼룩이고, 왜곡된 이미지이며, 객관적인 현실을 주관화하고 가장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런 다음, 실재는 빈 장소, 즉 상징적 구조물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세가지 차원들은 사람들이 왜상적 왜곡을 통해 현실을 보고, 그 안에 어떤 장소도 가지고 있지 않은 물체를 도입하고, 현실의 모든 내용을 제거하여, 남이 있는 것이라곤 이러한 물체들이 채우고 있는 그 빈 장소뿐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지젝은 '매트릭스' 의 허위성을 네오를 일자(The one)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도 지적한다. 일자는 결코 무너지지 않고 비합리적인 관대함과 존엄을 유지하고 발산하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엄성을 이 일자를 통해 유지한다고 한다. '매트릭스' 에서 일자는 일상현실이 암호화된 가상세계라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이것이 네오였다. 그러나, 네오가 일자라는 것을 결정할 예언자의 대기실 장면에서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아이는 놀라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숟가락을 구부리는 방법은 그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다고 자신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이 없다고 자신에게 확신시키는것이예요." 여기에서 '매트릭스' 는 나라는 자신,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적인 명제를 수용했어야 한다고 지젝은 지적한다. 또한, 시간, 공간을 이동할 때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더욱 적합했을 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변기의 물을 내리면 배설물이 사라지는 그 영역은, 사실상 사물들이 사라지는 소름 끼치도록 숭고한, 근원적이고 전존재론적인 혼돈의 저편을 상징하는 은유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변기는 위상적인 구멍, 혹은 우리의 현실 공간을 구부리고 비틀기 때문에, 우리는 배설물이 일상적인 현실의 일부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각하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서, 지젝은 영화의 결말에 매트릭스 요원인 스미스의 말이 프로이트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하면서, 장애물의 경험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무언가를 현실로 지각하게 하는 긍정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현실은 인류가 저항하게 마련인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지젝이 지적한 '매트릭스' 의 또다른 모순은 죽음과 관련된 것이다. 매트릭스가 지배하는 가상현실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것인가? 매트릭스는가상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최고의 개념도구를 제공했던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 1638-1715)의 우인론적인 신에 가깝다. 말브랑슈는 육체와 영혼은 전적으로 독립적이므로 유일한 해법은 제3의 진정한 실체, 즉 신이 연속성의 외관을 유지하면서 둘 사이을 끊임없이 조정하고 중개해야한고 했다. ‘매트릭스’의 마지막 모순은 네오가 선언하는 인류 해방의 모호한 지위와 관련된 것이다. 영화에서 네오의 개입으로 시스템의 오류가 발생하고, 네오는 사람들에게 매트릭스의 속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매트릭스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진짜 신분은 여전히 매트릭스의 노예인 것이다. 그렇다면 매트릭스를 빠져나와 진짜 현실로 들어가는 것은 어떠한가? 진짜 현실 속의 우리는 파괴된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불쌍한 존재들인 것이다. 독일의 사회 철학자이자 음악가인 아도르노(Theodor W. Adorno,1903-1969)식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모순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실의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가 도래하여 역사의 끝과 디지털화 된 기억 속에서 과거를 완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되고, 우리가 무시간의 유토피아를 일상적이고 관념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면서, 유토피아는 역사 자체의 현실성에 대한 갈망, 기억에 대한 갈망, 진짜 과거의 흔적들에 대한 갈망이 되었다. '매트릭스' 는 유토피아와 티스토피아(결함 사회)를 결합시키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매트릭스가 상연하는 무시간의 유토피아는, 사실은 우리를 매트릭스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동적인 상태의 살아 있는 건전지로 전락시키는 곳이다. 그래서, 이 매트릭스 속의 우리는 양수와 비슷한 액체에 담긴 태아 수준의 유기체에 불과하고, 이러한 수동성은 능동적이고 자기 단정적인 주체로서 자기의식을 지탱하기 위해 배제되는 환상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매트릭스의 주이상스(Jouissance:라캉의 용어로 자신을 고통으로 몰고 가면서까지 쾌락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노릇을 하는 도구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상황에 눈뜨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지젝은 이것이 사실 그 정반대라는 것이다. 즉, 그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환상이라는 것이다. 지젝은 ‘매트릭스’는 인류가 세계에 지나치게 개입한 대 대한 대가를 치르는 공상의 각본이라고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지젝의 날카롭고 풍부한 지식의 물결속에서 나는 접영을 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수면위를 나와서 답답함이 풀리려 하는데, 다시 물속에 들어가 크게 발길질을 해야하고, 다시 힘있게 차 올라와 수면위로 나오며, 다시 들어가야 하고, 이것을 계속 반복하면서, 결국 나는 헤겔의 정반합의 기분으로 지젝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젝이나 슬로터데예크가 말했듯이, 인간은 끊임없는 고통속에서만 인지하고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러한 고통이 없다면 고통을 만들어서라도 고통을 겪고 주이상스를 느끼게 된다. 한번의 정반합의 과정이 아니라, 정이 생기면 반이 생겨서 합이 생기고, 다시 그 합에 반하는 반이 생기고 다시 합을 이루는 과정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사람들이 일자 네오를 통해 대타자인 매트릭스를 빠져나와 현실에 돌아와도, 인간은 또 다른 대타자 매트릭스를 만들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결론은 무엇인가? 매트릭스의 매트릭스, 또 다른 매트릭스, 이런 연결고리의 끝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최지혜, 미술컨설턴트, 유로저널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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