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어도 100억원을 움직일 수 있는 남자
2014년 한 해 동안 국내 미술 경매시장에서 약 1000억의 돈이 움직였다.김환기(1913-1974), 이우환(1936-) 작가를 중심으로 국내 미술시장이 엄청난 성장을 보인 것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계간 미술 경제지 아트프라이스가 국내 미술품 경매 회사 8곳의 경매를 분석한 결과, 2013년에 비해 총낙찰가가970억7300만 원으로 34.8% 더 올랐다. 경매 낙찰 총액 1위의 김환기 작가 작품은 총 46점이 낙찰됐고, 낙찰 총액은 100억7744만 원이었다. 약 13억원의 차이로 이우환 작가가 2위를 차지했다.
경매 낙찰 순위에서 눈에 띄는 것은, 팝아트의 대왕 앤디 워홀이 71위에서 6위로, 앤디 워홀을 잇는 미국 팝아트(Pop Art)의 거장이다라는 호평과 예술의 권위를 흔드는 키치(kitsch) 미술가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제프쿤스가 순위에도 없었다가9위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 세계 대중 미술의 흐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김환기 작가의 작품에 가장 열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환기는 박수근·이중섭 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하면서 국내 추상미술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이다. 특히, 2000년이후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꽃과 항아리(정물)'는30억5000만원에 낙찰돼 국내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면서 미술시장의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항아리'(9억1000만원), '새와 달'(9억원), '새'(8억원) 등, 현재 서울 인사동 등 화랑가에서 호당(18×14㎝) 4000만~5000만원에 이른다.
그의 작품은 1950년대 정물, 1960년대 초 · 중반의 산월 시리즈, 그리고1963년 도미(渡美) 후 본격화한 점 시리즈로 구분되지만, '나무와 이야기하다' 는 의미의 그의 호 '수화(樹話)' 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화폭에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구현하고자 했다. 특히, 과감한 추상 형식의 화풍 속에 산과 달 등 한국적 소재로 한국적 정서를 가미하여, 다양한 층의 컬렉터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말년 작품 '10만 개의 점' 에는, 원을 이루고 있는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과, 선을 이루고 있는 산, 바다, 해가 보인다. "점 하나가 친구 한 사람이다" ,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이라 말하면서, 그는 점 하나 하나에 한국의 산과 하늘, 그리운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담아내고자 했다.
김환기 <10 만 개의 점>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그 선들이 모여 원을 이루듯, 개별과 보편, 특수와 전체가 통합되는 하나의 울림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작품속에 또 하나 주목한 점은,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라는 그의 말처럼, 평생 '조선의 특색' 을 나타낼 수 있는 그림에 대한 그의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김환기 <달항아리>
무엇보다 우리의 자연과 고유의 전통 속에 숨겨진 놀라운 현대성을 발견하고 이를 서구 모더니즘의 문맥 가운데 풍요롭게 조형화하여 '자연의 서정을 노래한 화가' , 혹은 '자연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한 동양적 추상, 한국적 추상에 도달한 작가' 로 불리운다. 그리고, 그는 한국 근현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여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평생 약 3천여개의 어마어마한 작품들 속에서 한구상, 반추상, 추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 미술계가 양적, 질적으로 풍성해지는 계기를 마련하는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100억을 투자한 첫번째 이유가 될테다.
두번째 이유는 그가 가진 나이브 아티스트(naïve artist) 적 면모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이브 아트(naïve art)란 정규 아카데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예술가들의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은 단순한 표현 방식으로 그려진 작품들을 일컫는 예술이다. 그러나 김환기 작가는 일본, 파리, 뉴욕에서 미술공부를 했기 때문에 나이브아티스트라 하기 힘들다.
하지만, 향수라는 인간의 서정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김환기 작가의 작품이 나이브 아트(naïve art)의 색깔을 가졌다고 할 수는 있다. 즉, 모더니즘 한국 추상작가 김환기는 나이브 아트의 경계선을 걸치고 있는 작가다.
그러니까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이기에는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김환기의 그림속에서 우리는 우리네 정서, 한국적 정취를 느끼고 있다.
김환기 <사슴>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씨는 김환기의 점화 작품에 서구 모더니스트들의 냉랭하고 물질뿐인미니멀아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동양적 서정과 인생이 서려있다고 했다. 점, 선, 면, 색채 들의 유기적인 리듬이 채워짐과 비워짐, 가려짐과 보임, 그리고 사람 사이 움직임의 관계를 고려하는 한국 전통방식과 현대적 세련미의 조화속에서 조형화, 추상화되었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라는 김환기작가의 말처럼 세계 미술사에서 한국미술의 독자성이나 차별성을 모색하기 위해 국제 갤러리 주도하에, 한때 '모노크롬 회화' (monochromatic painting) 라 불리기도 했던 '단색화' (Dansaekhwa 혹은 Tansaekhwa)는 70년대 이후 한국의 서양화가들 사이에서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며 한국 현대미술의 틀을 형성해 온 하나의 미술사조를 형성했다.
단색화는 일체의 구상성을 배제한 순수한 단색의 추상화로서, 대표적 작가로는 1930년대생들을 중심으로 한 전기 단색화 작가들, 김환기를 비롯한 이우환, 박서보, 권영우,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 최병소와 1950-60년생들인 후기 단색화 작가들, 고산금, 노상균, 문범, 남춘모, 천광엽, 장승택이 있다.
우리는 김환기의 단색, 추상화 작품 속에서 지금의 우리의 보편적 미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 미술사에는 어떻게 기록이 될까? 한국의100억원을 움직였던 이 작가가 세계를 녹이는 해법도 될 수 있을지 앞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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