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비운의 화가, 마크 로스코 1
나는 솔직히 나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無限挑戰)>을 보고 나는 뜬금없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 손길을 상상했다.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이 나와 그 때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며 형식 없는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출연자 간에 허물 없는 모습을 여과없이 담아내는 마크 로스코의 방법론을 연상한 것이다.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무한도전' 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접근을 해왔다. 그저 우스운 소재가 아니라 대중들의 문제속에서 대중들의 모습으로 그것에 접근하여 감정이입의 폭을 줄여나가는 시도를 했다.
외모상 능력상 자신들이 보통보다 못한 평균이하라는 컨셉아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즉 보편성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사실은 확실한 '특별성' 과 '개별성' 을 통해 '개성화' 시대의 표본이 된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플라톤의 동굴 밖 진실이 두려워 알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동굴속에 비친 자신의 눈에 보이는 진실이 가려진 아름다운 환상만을 보고 믿고 싶어하는 대중들에게 망가지는 모습을 과감하고 자신있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즉,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대중들에게 그것이 매트릭스 세상이든 아니든 자신있게 지내자라는 메세지를 재미와 감동이라는 매개체로 전달해 주는 듯 하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 그의 그림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점 안에 무려 6점이나 이름을 올릴만큼 인기가 있다. 그러나, 로스코를 일컫는 말로 색면 회화의 거장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은 따로있다.
'무한도전의 거장'
<무한도전>이 동굴 밖으로 나오라든가 동굴 밖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진짜 무모한 도전이었다면 대중들의 거부반응을 불러 일으켰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균이하라고 하지만 실은 평범한 대중들의 모습으로 동굴 밖에 있든 동굴 안에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나는 솔직히 나다!' 라는 것을, 형식없고 그래서 예측할 수 없이 그러나 재미있는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들이댔다.
로스코도 그랬다. 니가 느끼고 싶은대로 느끼고 받아들여라! 그의 '무제(Untitled)' 그림은, 큰 화면에 두 세개의 색면이 수평으로 배열되어 있다. 형식도 없다. 예측도 안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보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터치한다.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열정을, 그리고 때로는 심연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을 체험하게 한다.
Untitled, 1969-1970
로스코는 색으로 느낄 수 있는 신체적 감각을 탐구하며, 색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직접반영할 수 있다 믿었다. 즉, 색을 통해 조용히 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극적인 감정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색으로 비극이나 무아경, 파멸 같은 것을 표현해 세계대전을 통해 상처입은 인류를 위로하기를 원했다.
로스코는 그림을 그리기 전, 캔버스옆에서 늘 잠시 명상을 즐겼다. 명상을 통해 깊은 몰입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듯, 그림을 통해 비극, 환희, 숭고함과 같은 영원한 주제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단순한 색의 표현 속에 자신이 체험한 복잡한 심정을 자신의 방식으로 담아냈다.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대중들에게, 형식과 형태를 벗어나 색으로 과감하게 들이댔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의 무한도전을 몸으로 체험한다.
그의 이 무한도전 정신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그가 선택한 길을 함께 걸어가보면서 그를 제대로 체험해보자.
당시 유대인으로서 늘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그의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되고, 두번의 세계 대전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짖밟히는 일을 겪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 등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예일 대학에 진학하여 노동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미국 역시 인종 차별이 심했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예일대학교 장학생이던 그는 결국 중퇴를 결심했다. 법학을 공부하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여러 일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건너가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미술 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보러 갔다가 뉴욕 아트스튜던츠 리그에서 참여해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화가로서 서서히 유명해지고 이름이 나자 갑자기 죽음을 선택했다.
인종차별과 경제적 어려움 등 고생스런 그의 일생속에서 그가 그토록 비난했던 부르조아의 삶에 자신이 스스로 빠지게 될까 두려워했다. 서서히 불안증, 죄책감에 사로잡혀 엄청난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렇게 긴장감과 신경쇠약에 빠져 버린 로스코는 술과 담배에 찌들며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 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같은 팝아트가 급부상하자, 그는 어느새 거만한 노쇠가 되어 시대에 뒤떨어진 엘리트미술가 되어버렸다.
그는 말했다. "검정과 회색 회화들은 죽음에 관한 것" 이라고. 체험한 삶의 모든 것을 색으로 표현하고자 한 로스코의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제는 번지는 색처럼 무너뜨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동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고,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그는 추상 표현주의 미술의 대가,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킨 미국인 화가로 알려진 거장이다. 그러나 먼저 1인자 날라리 유반장 유재석, 2인자 버럭 민서애비 박명수, 동네 바보형 촛농얼굴 정준하, 미친 존재감 도니 정형돈, 그리고 단신 꼬마 '하이브리드 샘이솟아 리오레이비' 하하와 같은 다를바 없는 보통 인간이다.
이들 모두는 큰 틀의 구조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하나의 개인의 구조속에서 개인의 역사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만들어간다. 탈구조주의시대에 우리가 할 일을 그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과 유명해 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로스코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명예는 그저 낯설음 그 자체였던 것이다. 거만하게 잘난 척을 한 것이 아니라, 강박증, 집착증, 우울증, 불안증 등의 심리적 상태로 낯설음을 가면없이 솔직히 드려냈다.
"이렇게 호화스러운 건물을 찾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제대로 볼 리 없다" 며 이미 완성한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않았던 뉴욕의 '시그램 벽화 사건'은 그의 이런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사건이다. '그저 나는 솔직한 나일뿐이다. 가면을 쓰고 겉치레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근본적인 나를, 그리고 그들을 느낄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세상은 나에게서 시작하고 나에게서 끝난다. 내가 찌질해도 나는 나인 것이다. 판단을 중지하고 주어진 현상을 몸으로 인식하라는 메를로 퐁티의 말처럼, 선입견을 버리고 내 몸으로 체험하여 보고, 그것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로스코는 그것을 몸소 실천했고, 솔직히 우리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솔직한 그의 희, 노, 애, 락을 우리의 삶처럼 체험한다.
잘 생길 필요도 없다,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도 된다, 평균보다 못해도 좋다, 그게 뭐 어떤가?
그냥 나는 솔직히 나한테 최선을 다하는 나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을 통해서, 그리고 또 무한도전의 거장, 마크 로스코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탈구조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것을 나는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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