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비운의 화가, 마크 로스코 2
모두 왜 어떻게 우리가 로스코의 그림으로 치유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에는 관심이 없다" , 마크 로스코는 말했다. 죽은 지 45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는 곳마다 화제를 일으키는 남자 로스코, 그는 그냥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며 숨을 쉬고 싶었을 뿐이다.
그의 숨결, 워싱턴내셔널 갤러리 소장 작품 50점이 서울에 온다. 이미 네덜란드 헤이그 시립 미술관에서 첫 주에 1만 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룬 순회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뉴스 TV에서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로스코' 특집 4부작을 방영하는 등, 전시회에 앞서 다양한 방법으로 로스코에 대한 이목을 집중시키는 노력들이 대단하다.
한 출판사는 "지금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라고 말하는 소위 대중 철학자 강신주를 저자로 전시회에 맞춰 로스코에 대한 책 출간을 기획하고 있다. 사회가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울지라도,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사랑을 가지고 꿈을 꾸고 끝까지 열심히 노력하여 그 꿈을 이루자고 주장했던 그야말로 '대세' 의 인기를 누렸던 철학자 강신주가 직접 소개하는 로스코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고통에 공감하는 힘을 가진 그의 작품들이 관람객의 감정을 치유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강신주, 그는 궁극적으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한국 사회를 더 나은 세계로 만들 것이라 여긴다.
강신주뿐만 아니라, 로스코전시회를 앞두고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이 앞다투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신주의 상투적인 힐링하고 마크 로스크가 짊어지고 가야했던 삶의 길은 일치되지 않는다. 그는 후기구조주의시대의 철학적 접근 방법인 분석과 분열을 피하고 봉합과 화합, 일치라는 전근대적 방법으로 대중들을 현혹시켜 왔었다.
이에 반해 로스코는 20세기의 온갖 모순과 불합리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끈질긴 싸움을 했고, 그의 작품들은 이 진통을 반영한 것들이다. 강신주의 그 봉합적 힐링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
우리가 로스코에게 다가서는 방법은 봉합이 아니라 째고 벌거벗는 길 뿐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 즐기며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모두 왜 어떻게 우리가 로스코의 그림으로 치유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탈구조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다양한 구조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나만의 구조를 형성하고 살아가야한다. 그러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막상 나만의 색깔을 찾지 못해서 두려워하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그래서 그저 낡은 혹은 남의 기존 구조속에서 안주하거나 묻혀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탈구조주의 사회일지라도 아무도 우리에게 반드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지만, 우리는 남들과 다르고 싶다. 그런데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갈팡질팡하다가 급기야 혼돈속에 빠지고 만다.
이 혼돈을 즐기지 못하고 나만의 구조를 만들지 말지, 또는 만들 수 있을 지 없을지를 고민하다가 힘들게 지쳐간다. 이런 상황속에서 누군가가 '힐링' 이라는 말로 위로를 하고, '사랑' 이라는 말로 감동을 준다. 또 '소통' 이라는 것으로 희망을 보낸다.
철학자 강신주도 '사랑' 을 강조했다. "가면을 벗어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이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이고, 경쟁이 있는 사회는 나쁜 사회이다… 영원을 멀리해야 성숙한 어른이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은 없고 따라서 모든 것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고 말한다.
이 강신주가 로스코의 그림이 담긴 해설집을 통해 "나는 로스코를 '추상표현주의' 보다는 '소통표현주의' 화가라고 부르고 싶다" 라고 하며, 이번에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강신주가 말하는 사랑과 소통은 냉혹한 경쟁이 있는 우리의 현실에 따뜻함을 전하는 힐링의 단어다. 하지만, 힐링이든 사랑이든, 그리고 소통이 되었든간에, 그것을 받을려고만 한다면 안타깝게도 생각하고 바라는 그 어떤 것도 결코 얻을 수 없다.
탈구조주의 사회를 살면서 나만의 구조를 만들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힐링' 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는 '사랑' 으로 감동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물론 '소통' 으로 단순히 해결되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해결책인가?
'힐링' 이든 '사랑' 이든 '소통' 이든, 이 모든 것은 사실은 나에게서 출발한다. 진정한 내가 없다면 진정한 힐링, 사랑, 소통도 존재할 수 없다.
가면을 쓰고 벗는 것은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과 같다. 그래서 진정한 가면, 진정한 나를 알게 되면 그것을 벗을 지 말지를 그 때 결정하면 된다.
물론 이 때 진정한 사랑도 소통도 가능하다. 따라서, 무작정 가면을 벗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가면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개인이 본래 지니고 있는 정신을 온전히 발휘하여, 무의식에 잠재된 정신활동의 무한한 가능성의 실현을 통해 한 개인의 개성이 발현된다고 했다. 이러한 자기실현 또는 개성화(자기 인식)과정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가 아니라 먼저 '원래 무엇이었는가' 에 대한 물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로스코, 무제, 1970년
융은 '자기 자신이 되는 길' , 즉 개성화 과정속에서 밝음과 어두움, 존재와 갈등을 삶의 본연으로 철저하게 체험해 나감으로써, 우리가 자기를 인식하고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로스코가 그랬다.
그는 '로스코'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을 걸어갔다. 1970년 그의 마지막 붉은 색 작품은 그가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대면한 장면이다.
융은 "무의식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의식은 그 가운데 떠 있는 자그마한 섬과 같다" 고 했다.
로스코의 큰 작품은 우리의 무의식과 같다. 그 작품을 대면하고 서 있는 우리는 의식과 같은 섬이다. 우리는 그저 자신의 숨을 인식하고 깨닫는 로스코의 자기 인식과정을 그의 작품을 통해 느끼고, 그와 함께 우리를 인식하는 과정의 길로 나아간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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