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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37)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3


나는 조선의 진짜배기 소만을 그릴 테다


그의 불꽃같은 삶을 대변하는 듯한 힘찬 소, 통영에 살던 시절 제작된 <황소>는 이중섭의 생애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주제로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지내야 했던 비극적인 현실에 대한 자신의 실존을 반영하고 있다. 이산과 가난으로 인한 좌절, 그 서글픈 삶으로 인한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을 울부짖는 듯한 황소의 모습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황소, 이중섭, 1954년.jpg

황소, 이중섭, 1954년



이중섭 그림에 있는 서명 ‘ㅈㅜㅇㅅㅓㅂ’은 중섭을 풀어 쓴 한글이다. 당시 한글이름을 일본 이름으로 바꿔야 했던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서명을 한글로 표기한다는 것은 이중섭의 강한 정체성을 느끼게 한다. 
이중섭은 들판에 풀을 뜯는 황소를 하루 종일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소를 좋아해 소와 입맞춤한 아이라고 소문이 날 만큼 어린 시절부터 사물을 관찰하는 것에 유달리 애착이 강했다. 그리하여 이미 보통학교 4학년 시절부터 회화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이런 이중섭에게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의식을 키우게 해준 곳이 바로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의 요람이었던 오산중학이다.
중학생에 불과한 이중섭은 후배 김창복에게, “나는 조선의 진짜배기 소만을 그릴 테다. 그리고 조선 언문을 남겨줄 테다. 너도 네 그림에 조선 냄새를 담아보아라” 라고 말했다.
오산학교에서 그는 그의 첫 스승인 임용련과 백남순을 만났다. 이것이 그의 인생의 두번째 중요한 시기이다. 임용련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조선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정말 드문 인물이었다.
이후 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견문을 쌓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던 중 프랑스에서 미술 유학을 와 있던 백남순을 만나 그곳에서 결혼했다.
그들은 파리의 살롱 도톤느에 출품하여 부부가 나란히 입섭할 정도로 프랑스 화단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귀국한 뒤 오산학교의 미술교사로 부임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중섭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다.
 


임용련, 백남순 부부.jpg

임용련, 백남순 부부



당시 회화에 뜻을 품고 있었던 이중섭에게 이런 임용련, 백남순 부부와의 만남은 그의 일생을 바꾼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한 예술가란 없는 것이다


이중섭은 1935년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文化)학원 미술학부 양화과에 입학해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미술수업을 받았다.
당시 이중섭은 분카학원 2년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를 평생의 반려자로 만나게 된다. 마사코는 미쓰이 그룹의 일본창고주식회사 사장의 딸로 개방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이중섭은 1940년 태평양전쟁이 심해지자 원산으로 돌아와 도쿄에 있는 마사코에게  꽃이 피고 물고기가 파도를 거슬러 오르고, 아이들이 물고기를 안고 있는 아담과 이브의 창세기 풍경과 당나귀, 말, 소와 여인이 함께 유희하는 신화적 풍경을 그린 엽서를  보냈었다. 


가끔 기하학적 추상무늬와 조형의 이미지도 그렸다. 이것은 이중섭을 비롯하여 나혜석, 구본웅, 장욱진, 김환기 등 도쿄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큐비즘, 그리고 근대 조형에 영향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중섭은 기존의 흐름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인물의 풍부한 동작으로 자신의 내면을 펼쳐보였고, 게, 물고기, 복숭아, 새, 황소 등으로 분화해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1947년과 49년 태현과 태성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집이 폭격을 당하는 등 갖은 고난과 시련의 시기를 겪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통영으로, 대구로, 서울로, 친구 집을 떠돌며 그는 오직 그림 그리는 데만 몰두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림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어도 연필이나 못으로 그림을 그렸다. 먹을 것이 없어도, 외로워도 슬퍼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
 


섶 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이중섭,1951년.jpg

섶 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이중섭,1951년



그러나 아무리 그림에만 몰두해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어린 아이들과 아내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헤어져 살아야 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환을 그림으로 달래보려해도 이중섭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이중섭은 서울과 대구에서 몇 번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전쟁 후 좋지 않는 경제 사정으로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작품전이 물거품이 되자 “나는 그림을 그린답시고 세상을 속였어. 놀면서 공밥만 얻어먹고 뒷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 남들은 저렇게 세상을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 혼자 그림만 신주처럼 모시고 다니고…”라며 스스로 자책하고 실망했다. 그 후 폭음과 영양결핍까지 겹치며 극도의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의 끝자락의 그림 ‘나무와 달과 하얀 새’는 그의 그림 황소에서 보이는 힘차고 대담한 터치와 탄력적인 원색의 선명함이 서서히 무르익어, 예술은 비극을 먹고 태어나는 희극임을 나타내는 듯 하다.
 


나무와 달과 하얀 새, 이중섭, 1955.jpg

나무와 달과 하얀 새, 이중섭, 1955



그의 작품들은 향토성이 강하고, 동화적인 동시에 가족에 대한 정감이 잘 나타나 있어 사람 내면을 담아내는 인간적인 냄새를 풍긴다. 숱한 에피소드와 강렬한 개성을 풍겼던 그의 예술성은 1970년대 이후 평전과 연극·영화로 기려지고 있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곱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이중섭 <소의 말>



석가가 “인생은 슬픈 것이다”라고 했듯이, 우리의 삶은 상실하고 또 상실하고 또 상실하여 그것으로 인한 슬픔이 개입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대로의 삶을 훌륭하다고 긍정함으로써 즐겁게 살 수 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이중섭의 예술적 감수성과 인간적 순수함은 어쩌면 나이먹어 처자식을 먹여살여야 하는 한 가장으로서는 욕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40세 죽을 때까지 잃지 않은 그의 이와같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그래도 나는 이 삶에 내 방식대로 참여하겠다!”라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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