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세상과 만나라 2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투사해보려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인간의 욕망에 따른 고통이라는 소용돌이속에서 우리 자신을 풀어놓지 않는다면 그 휘몰아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불교는 인생은 슬픈 것이라고 하는데서 출발한다. 이 고통과 슬픔의 탈출구가 바로 니르바나, 즉 해탈과 같은 심리상태다. 욕망이나 공포나 사회적인 인연에 기면서 살지 않고, 자기 안의 내적 중심에서 평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자도 예술가도 보통 사람들도 모두 가능하다. 깨달음은 우리 잠재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온 가슴을 열고 인간의 영혼의 깨달음을 통해 속세적 욕망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놓는다. 그리고 삶의 존재 자체로서 오는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것과 사귀는 것이다.
인간성의 이면, 야오루이중
“폐허가 된 유적들, 신과 동물의 조각상에 관한 흑백사진들인데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이 배어납니다. 신과 동물의 형상을 만드는 인간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알 수 없는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작가는 말합니다…진실한 영혼이 떠나버린 후 남겨진 신들의 조각상은 인간성 이면에 있던 욕망을 드러낼 뿐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2014)'에서 전시된 야오루이중의 작품 <인간성의 이면>에 관한 배우 박해일씨의 오디오서비스 설명이다.
침묵속에서 비엔날레의 현대적 굿 판은 정점으로 치닫아 갔다.
2층과 3층에 있는 많은 사진들은 한국의 무속신앙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네마다 성황당이 있고 무속인들은 죽은 자의 넋을 달래주며 미래의 흉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무당집이나 철학관을 찾는다. 이것은 한국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한국인들이 본질적으로 샤머니즘에 관련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종교의 사제는 그 종교에서 섬기는 신의 권능으로 의례를 집행하고, 샤먼인 무당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신들로, 즉 심리적 경험에서 그 권위가 비롯된다. 예술가도 이와 같다. 이들 모두 보이지는 않는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각 자를 중심으로 한 원, 즉 산스크리트어로 ‘만다라(mandala)'가 있다. 그 원은 그냥 원이 아니고, 다른 원과 상호 관계하거나 상징적인 문양을 이룸으로써 하나의 우주 질서를 상징한다. 예술가, 사제, 무당의 의례나 의식은 이 만다라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묵묵히 이 굿판을 즐기다보면, 3층에서 60대~80대 제주도 해녀할머니를 소재로 삼은 그리스 작가 미카일 카리키스(M. Karikis)의 작품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굿 페스티발은 클라이막스를 찍는다. 검은 천을 젖히고 들어서면 큰 방석이 놓여있다. 이 방석에 앉으면 거대한 폭풍우 소리가 들려온다.
미카일 카리키스(M. Karikis)의 해녀에 관한 비디오 장면
미카일 카리키스는 제주에 3개월간 머물면서 발굴한 해녀들의 숨비소리, 공포스러운 거대한 바람 소리와 노동요을 활용해 그녀들의 생생한 몸짓과 소리와 현장을 녹음과 영상에 담아냈다. 해녀들에 대한 그의 애틋한 정감이 묻어난다.
박찬경 예술 감독은 할머니를 "귀신과 간첩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은 증인이며 권력에 무력한 존재이나 인내와 연민으로 그 어떤 권력도 윤리적으로 능가하는 능동적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식민 시대에는 위안부(성노예)로, 전쟁이라는 역사적 혼란속에서는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전사로, 또 제주 할머니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에 온몸을 던지고 있었다.
공포스러울만치 거센 바람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녀들은 식구들을 위해서 숨비소리라는 휘바람 같은 소리를 내면서 물질을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웅장하고 거대함속에서 해녀들은 오히려 따스함을 느끼는 듯 하다.
이 곳에서 굿 판은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품어냈다.
굿은 의례이자 상징이지 쇼가 아니다. 무의식의 경험을 현시화하는 것이다. 내재적 무의식의 경험은 사이비나 미신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자 칼융의 말처럼, 무의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자신의 발견과정이자 성장 과정이다.
서울 새남굿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인간은 모두 영적, 심리적 여행을 통해, 즉 내적 성장을 통해 자신의 삶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토 랑크도 <영웅의 탄생 신화>에서 인간은 모두 어머니의 양수속에서 수생동물로 지내다 세상에 태어나 공기를 호흡하는 포유동물로 거듭나는 엄청난 심리적,육체적 변모를 거치는 영웅이라고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영혼의 세 가지 변모'을 통해 의식의 변모, 성장과정을 설명했다. 첫번째는 낙타의 변모, 즉 어린아이와 소년의 변모다. 책임있는 삶을 살기위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과 수업을 받아야 하는 것에 복종하는 것이 낙타가 무릎을 꿇고 짐을 싣는 것을 의미한다.
짐을 실은 낙타는 사막에서 사자로 변한다. 짐이 무거울수록 사자의 힘은 강해진다. 그리고 ‘그대의 미래'라는 용을 죽이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낙타(아이)는 ‘그대의 미래'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사자(청년)는 이것을 벗어던지고 깨달음에 이른다.
그런데, 용이 완전히 제압된 후에 사자는 다시 아이가 된다. 이제 그 아이는 아무런 강제없이 들꽃처럼 자신의 충동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속세의 삶의 가치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2014)'은 현 시대의 샤먼 아티스트들의 많고 다양한 작품들의 이 굿판같은 의례를 통해 우리에게 온갖 가지의 감정을 던져주었다. 엄마의 자궁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려 사투를 벌이는 아기의 불안함, 공포스러움, 탄생 후의 환희까지, 그리고 혼란스러움의 청년기에서 성숙한 성인, 고요한 노인으로의 성장 과정 등을 이 예술적 굿판에서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었다.
주제와 작품의 범위의 개방성이 지나치게 넓어서 일반 대중들에게 혼란함과 어수선함을 느끼게 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문제를 독특한 ‘귀신·간첩·할머니'라는 테마로 예술적 통로와 결합한 시도는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 예술인으로서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훌륭한 노력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 그리고 예술계의 더욱 많은 아름다운 영웅적 도전을 통해 우리가 날마다 세상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기 탄생, 이후 세상과 만나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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