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예술칼럼(44)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2
나는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작가 이우환은 자신을 흔히 ‘중간자’라고 말한다. “늘 쓰라린 지점에 서 있다. 곧 어디에서나 내쳐지고 위험분자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도망자로, 다른 한쪽에서는 침입자로 공동체 밖에 세워져 있다.” 거리의 역학이 오늘날 자신을 만들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관계항-충돌, 이우환, 2009
이런 그의 작품을 이해할려면 먼저 그의 철학적 예술적 기반이 된 ‘중간자(中間者)’적 경계인의 삶, 그리고 그것이 외부와 가지는 관계성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이우환은 화가나 조각가이기도 하지만, 철학자로서 자신의 확고한 자리를 확립한 예술가이다. 그의 독자적인 철학적 사유체계와 예술비평은 재일교포임에도 불구하고, 전환기 일본현대미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고, 일본 고교 교과서에 그의 산문이 실릴 정도로 인정받았다.
이우환은 1933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동양학과 1학년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니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하이데거, 니체, 푸코, 메를로 퐁티 등의 서양 철학과 동양의 퇴계사상이나, 노장사상,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철학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철학을 두루 섭렵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발표된 비평집 <만남을 찾아서>는 이우환의 사유체계와 그의 작품세계가 담겨져 있는, 한마디로 그의 예술적 사유의 산물이자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만남을 찾아서
<만남을 찾아서>의 서두에서 이우환은 데카르트 이래 자연을 대상화한 서구의 근대주체 철학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근 사오백년간 근대미술의 번영과 조락과정은 상(像)의 형상화라는 표상작용의 역사이다. 만든다는 것은 이념의 대상화 즉, 상의 물상적 응결화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물상을 이념적 존재로 변질시킨 결과 근대 공간은 마침내 이념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비판하면서, 그의 ‘만남’에 대한 갈구와 그러한 만남을 가능케 한다는 ‘구조’, 또 만남이 구조가 된다는 ‘장소’ 와, 그의 ‘관계’철학을 드러낸다.
• 자연스러운 세계의 이상적 모습과 순간적으로만났다
이우환은 철학은 “의식이 존재를 결정 한다”는 서구 근대철학의 주객 이원론적 인식론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으며, 신체성에 기반을 둔 현상학적 철학에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두고 있다.
1960년대적 급변하는 시대상황, 예를 들면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적 문명을 반성하는 징후인 히피문화의 출현이라든가, 포스트 모던적 사상이 대두하던 시대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이런 시대를 살고 있었던 이우환도 당시 서양의 반과학적인 사상을 반영한 현상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었다.
하이데거의 ‘세계-속-존재’라는 존재론과, 메를로 퐁티의 이 세계와 인간존재를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정신과 물질, 인간과 현실 등이 혼융된 양면적 존재로 보는 관점에서 그는 말한다. “화가의 비전은 외적인 것에 대한 조망이 아니요, 단순히 세계와의 물리광학적인 관계도 아닐 때, 화가 앞에서 세계는 표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관계항, 이우환, 2007
또한 이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동양사상으로 일본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일본적 풍토적 미학요소를 혼합한다.
일본의 전통적 선사상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는 니시다의 철학은 “참다운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것은 안도 바깥도 없는, 오직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자기를 한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모순을 삶의 본질로 바라본다.
선사상은 일본의 전통적 미학의 핵심으로 일본적 역사와 풍토 속에서 독특한 미학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일본의 풍토성과 전국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생성된 일본 특유의 생사관이 반영된 일본의 미학적 토대이다.
이러한 전통적 미학은 무사와 칼의 일본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피비린내 나는 무사의 삶은 역설적으로 감성적 섬세함을 지향했고, 이것이 일본미학의 특성이 되었다. 즉, 극히 순간적 체험 속에 모든 삶의 궁극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본의 전통적 미학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예를 들면, 돌로 자연을 응축시켜 그 풍취를 즐기는 ‘분석(盆石)’, ‘분재’, ‘꽃꽂이(幻)’ 등은 이러한 일본적 풍토에서 나온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일본의 선사상은 일본의 예술사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남을 찾아서>의 센리큐(千利休, 1522-1591)의 낙엽 이야기를 통해서 이우환의 작품세계의 근거로도 인용되고 있다.
“어느 가을날 센리큐는 정원에 흩어져 있던 낙엽을 감상하고 있던 중, 감동 속에 영감을 얻었다. 그는 정원 전체를 깨끗이 쓴 다음 낙엽 몇 개를 주워 다 다시 그 자리에 뿌려 놓고 마음껏 즐거워했다. 진정한 창조는 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약간 어긋나게 함으로써 세계의 신선함을 드러내 주는 데 있다.”라고 이우환은 말한다.
또한 그는 “비가 내린 길을 걸으면 그곳에는 많은 웅덩이가 있다...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던 보행자는 문득 어느 웅덩이 앞에 돌연히 멈춰 선다. 다른 것과 특별한 차이도 없지만 왠지 가까이 다가가서 그 웅덩이 앞에 움추려 서버린 것이다. 그 웅덩이가 재빠르게 윙크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물웅덩이 어딘가에 자각감관이 반응하기 쉬운 성질을 개시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 물웅덩이의 성감대와 그의 의식 흐름의 어떤 촉수가 마침 적시에 세계와 접촉했다는 것일까? 어찌 됐거나 그때의 그는 확실히 그곳에서 세계의 어떤 선명함을 ‘본’ 것이며, 그렇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세계의 이상적 모습과 순간적으로 ‘만났다’고 느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우환의 이런 형식적 간결함이 서양의 미니멀적 단순성과 일본의 하이쿠 미학, 즉 바쇼의 하이쿠(5,7,5조로 된 일본 고유의 단형식) 미학까지 결합된 것이라면, 그의 예술작품에서 한국적 요소는 없는 것인가?
어릴 때 한국에서의 붓글씨(사군자)를 배운 것, 미니멀리즘, 일본 미학 등을 종합적으로 섞은 것, 즉, 이것이 그가 말하는 ‘비빔밥’ 미학이다. "돌은 자연이고 철판은 문명이다. 이것은 백남준의 TV부처와 같다. TV는 서양이고 부처는 동양이다.
그런 관계항을 만드는 것인데 자연과 문명의 만남, 동양과 서양의 만남, 여기서 유교에서 중시하는 관계망 그리고 불교의 비정형성, 우연성, 비선형성 거기에 비빔밥미학까지 이런 공존공생의 철학이 미적 조형성으로 승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관계항-삼각관계, 이우환, 2009
• 나는 언제나 무언가에 흔들리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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