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예술칼럼(45)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3
나는 언제나 무언가에 흔들리기를 바라고 있다
“텐션과 밸런스의 무언가가 나를 화가이게끔 한다, 나는 가늠하기 어려운 이 떨림(밀고 당김 사이에서 발생하는 텐션)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커다란 공간을 보게 된다” 라고 작가 이우환씨는 말한다.
그는 물아일체, 몰입의 상태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 운동을 일으키며 인위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매우 격렬한 비판을 했다. 즉, 서구 근대주의를 넘어서자는 '근대초극'을 말하면서 일본에서 미술운동 모노하(物派) 를 일으켰다.
모노하 예술 운동
1960년대 후반 히피 운동과 함께 미술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석탄을 화랑 공간에 갖다 놓고 작품이라고 하는가 하면 갤러리에 말을 끌고 와 매놓는 등 캔버스를 벗어나, 관중들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이러한 흐름이 일본에서는 나무, 돌, 철판, 종이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제시한 ‘모노하’라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사실은 모노하, 즉 물파物派(‘모노もの’란 일본어로 물체나 물건을 뜻한다)는 ‘그림도 못 그리면서 그냥 물건만 갖다 놓는 놈들’이란 무시, 멸시가 담겨진 비판에서 생겨난 말이기도 하다.
모노하(物波)란,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일어난 일본의 예술 운동으로 바닥 위에 돌, 철판, 유리판, 전구, 솜 그리고 일본의 전통 종이 등을 있는 그대로 사용해 시공간적 구성을 생생하게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자연 물질과 산업 물질 간의 현상학적 조우를 분석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수행적이고 장소 특징적인 이런 모노하 작품들의 특성상, 이우환씨는 현장에서 작품들을 재창조하면서, 구조와 과정, 영속성과 변화의 개념적 공존을 탐구했다. 그는 1972년 이후 자신의 조각 작품들에 관계항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관계가 있는 사물이나 사건을 의미하는 철학적 용어다. 그는 “하나의 예술 작품은 자체적으로 완전한 독립체라기 보다는 외부와의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관계”라며 “그것은 세계와 더불어 존재하며 그 무엇인 동시에 그 무엇이 아닌 것, 즉 관계항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과 관람자 그리고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의 상호적 관계와 그리고 동서양의 미학을 넘나드는 그의 철학적 지식과 태도는 반 형식주의적 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 상호적 구조나 공간적인 유기성을 도모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개개인이 자신이 마주하는 대상의 실제적인 존재를 맞닥뜨리도록 유도한다.
모노하의 창시자로 흔히 이우환씨를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다만 미술의 순수성에 관한 글을 많이 썼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1971년 제7회 파리비엔날레에 '상황'이란 작품과 '관계항'이란 설치미술로 한국대표로 참석해 세계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철판 위에 놓인 유리판 위에 커다란 바위를 떨어뜨려 유리판이 깨진 모습이 전시됐다. 이것은 문명과 자연의 경계선상에 놓인 인간의 관계를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관계항, 이우환, 1968
시각예술은 늘 즉물적인 현실과 대면하며 특히, 회화나 조각은 그 즉물성으로 표현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이 즉물적인 현실은 우리의 마음과 언어 이전의 세계이기 때문에, 하나의 시각예술 작품이 갖는 울림, 즉 감동의 유발 요소는 실존적 현실을 전제로 하기에 모호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 다양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점 1개에 반응하는 관객과의 대화, 세계로 뻗어가다
1973년 이후 그는 평면 회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시리즈를 제작했다. 찍을 때마다 옅어지는 농담의 변화 속에 시작과 끝, 삶의 변화를 표현한 '점으로부터' 시리즈는 특정 틀에 안료를 찍어 캔버스에 묻혀 나가는 반복적인 작업을 표현한 작품이다. 선으로부터는 물감을 묻혀 그려 내려가면서 안료가 사라지는 반복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점으로부터, 이우환 (2007년 옥션에서 13억5000만원에 낙찰된 작품)
선으로부터, 이우환
1990년대 '바람으로부터'와 '바람과 함께' 시리즈는 정형화되고 철저한 구도와 계산으로 만들어진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시리즈와는 달리 보다 자유로운 필치를 느끼게 한다.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하게 퍼지는 바람의 모습이 담겨있는 듯 하다.
바람과 함께, 이우환
1990년대 말부터 '조응과 대화' 시리즈로 철학적 완숙미를 더했다는 평가와 함께 보다 간결하고 정형화된 모습으로 변모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점 1개에 반응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우환 작품 세계를 대변한다.
조응, 이우환
2005년에 일본의 대표적 미술잡지 「비주츠 테초(美術手帖)」가 '일본 근현대미술사 100년' 특집에서 모노하의 이론정립가이자 작가인 이우환을 첫번째로 기사화했고, 지난 2010년 5월에는 일본 나오시마에 이우환미술관을 건립했다.
2011년 6월에는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백남준과 중국 차이궈창 다음으로 세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무한의 제시'(Marking Infinity)란 타이틀의 그의 전시에 미국언론은 "심오하고 정적인 이우환이 뉴욕에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무한의 제시'(Marking Infinity)' - 구겐하임 박물관 전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말한 노마드처럼 자신을 “영원한 떠돌이”라고 말하며 작가 이우환씨는 “의아하게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은 이쪽도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체가 되지 못하고, 어긋나 있는 몫만큼 상대방이 잘 보인다”라고 하면서 삶을 그리고 이 세계를 관조한다.
그래서, 미니멀리즘 작가 칼 안드레가 현대 조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한 장소성을 이우환씨의 만남의 조각과 회화의 ‘여백의 미’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예술 작품에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추상적 구성적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붓질과 여백은 단지 형식적인 간명함과 단순성으로 느껴진다, 즉 ‘양식화된 제스처’로 보인다, 특히 그의 최근 작품들은 극히 정제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붓질과 여백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자신의 예술세계를 ‘브랜드’화 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비판도 있다.
대개의 작가들의 작품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단순해지는 것은 그저 양식적 세련미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고도로 응집된 차원일수도 있다. 이우환의 최근 회화 작업인 <조응>시리즈의 극도로 간명한 양식적 단순성도, 내면적 마음의 수련과정을 보여주면서 지금까지 그가 해온 발언과 작업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한국에서 내가 본 작품들 중 가짜는 없었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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