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우리나라의 프랑스 와인 기행 53
프랑스 와인 자습서 제8장 루아르(Loire) – 4
화이트 와인의 천국 앙주-소뮈르(Anjou-Saumur), 이 동네 사람들은 생선에 화이트 와인만으로 연명할까? 그럴 리가 있나! 이 사람들도 가벼운 정봉(Jambon - 프랑스식 햄)부터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그리고 들짐승도 즐겨 먹는다. 이와 잘 어울리는 앙주-소뮈르 지방의 레드 와인과 함께.
우선 앙주-가메(Anjou-Gamay)를 마셔보자. 앙주-가메는 이름대로 보졸레 지역의 특산 품종인 가메를 이용해 앙주에서 만든 와인이다. 딸기 등 붉은 과실 향이 향긋한 가벼운 레드 와인으로 12~14도 정도로 조금 시원하게 해서 주로 짭조름한 정봉, 소시지 등의 안주와 가볍게 마시기 좋다.
앙주-가메를 제외하면 앙주-소뮈르 지역 레드 와인은 카베르네 프랑의 왕국이다.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은 주로 보르도 지역에서 보조 품종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루아르 지역에서는 순전히 카베르네 프랑만 사용하거나 적어도 주품종으로 쓰는 곳이 대부분이다. 카베르네 프랑은 특유의 붉은 과실 향, 스파이시한 허브 향, 카베르네 소비뇽보다는 부드럽지만 메를러보다는 단단한 타닌과 시원한 산도 등이 특징이다. 보르도에서는 카베르네 프랑의 블렌딩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재배하기가 까다롭고, 제대로 숙성된 포도를 얻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잘 익혀서 제대로 양조하면 기가 막힌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타도 치기 어려운 품종이 카베르네 프랑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 보르도에서도 이런데 보르도에 비해 기후가 서늘하고 일조량이 부족한 루아르에서는 어떨까? 상당수의 루아르 카베르네 프랑 와인에서는 덜 익은 피망, 풋내 등 완숙되지 않은 포도에서 오는 향을 찾기 쉽다. 이런 이유로 루아르 레드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특히 한국인 중에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Clos Rougeard, Le Bourg http://chezpim.com/drink/clos-rougeard-f
카베르네 프랑을 주로 쓰는 아뻴라씨옹은 앙주, 앙주-빌라쥬(Anjou Villages), 앙주-빌라쥬 브리삭(Anjou Villages Brissac), 소뮈르(Saumur rouge), 소뮈르 샹피니(Saumur Champigny) 등인데, 대부분은 어릴 때 신선한 맛으로 마시는 단순하고 마시기 편한 와인이다. 하지만 일부 아뻴라씨옹, 특히 소뮈르 샹피니에서는 장기숙성이 가능한 걸작이 나오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와인이 끌로 후자의 르 부흐인데 프랑스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0년 정도 숙성시키면 잘 익은 붉은 과실, 각종 허브의 스파이시함, 숙성에서 오는 시가, 송로버섯 등의 복합적인 향이 깊이 있게 다가오고, 여전히 탄탄하지만 부드러운 타닌, 그리고 우아한 산도와 미네랄리티, 매우 긴 여운이 대단한 조화를 이룬다. 지금까지 루아르 레드 와인을 무시했다면 끌로 후자를 마셔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전식을, 레드 와인과 본식을 먹었으면 이제 후식과 함께 앙주-소뮈를지역의 자랑인 스위트 와인을 마셔보자. 꼬또 뒤 레이옹(Coteaux du Layon), 본느죠(Bonnezeaux), 꼬또 뒤 레이옹 프르미에 크뤼 숌므(Coteaux du Layon Premier Cru Chaume), 캬흐 드 숌므 그랑 크뤼(Quarts de Chaume grand cru) 등 앙주-소뮈르 지역뿐만 아니라 프랑스 최고 수준의 스위트 와인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스위트 와인인 소테른과 비교하면 일반적으로 당도와 복합성은 부족하지만, 배, 복숭아, 아카시아 향과 강한 미네랄리티 등 슈낭 블랑 특유의 매력이 있다. 특히 늦수확, 파스리야쥬(passerillage – 포도를 건조시켜 당도를 높이는 방법), 귀부 등을 이용한 본느죠, 꼬또 뒤 레이옹 프르미에 크뤼 숌므, 캬흐 드 숌므 그랑 크뤼 등은 높은 당도와 복합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특유의 높은 산도가 훌륭한 밸런스를 이룬다.
Chateau de Suronde, Quarts de Chaume http://www.eccevino.com/
앙주-소뮈르의 스위트 와인은 세계 3대 진미지만 ‘기름진’ 푸아 그라와 최고의 궁합인 스위트 와인을 먹고는 싶지만 소테른 와인은 너무 달아서 싫다는 사람에게 아주 훌륭한 대안이다. 그리고 복숭아 또는 살구 타르트와 앙주-소뮈르 스위트 와인을 곁들여보자. 왜 스위트 와인을 디저트 와인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식, 본식, 후식에 어울리는 모든 와인이 있는 앙주-소뮈르. 작지만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