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예술칼럼(46)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4
“한국에서 내가 본 작품들 중 가짜는 없었다”
이우환씨는 말한다. “내 가짜 작품이 5백여점 돌고 전문가들이 감정을 피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단언컨대, 한국에서 내가 본 작품들 중 가짜는 없었다. 시장에서 날 제거하고 작품값을 떨어뜨려 이득 보려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우환씨의 위작이 국내외의 미술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상한 게 가짜라면 언론 등에서 도판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데 없지 않으냐. 하도 그런 소문들이 돌아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과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에게 부탁해 시중에 유통되는 작품들을 수거하고 세차례 모여 검토해봤다. 정말 한점도 가짜가 없었다. 내 작품은 내 고유의 호흡으로 그리기에 모방하기가 어렵다…근거 없는 얘기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술 관계자들은1970년대 후반 작품 ‘점으로부터(From Point)’와 ‘선으로부터(From Line)’ 시리즈를 중심으로 최소 150점이 넘는 위작이 최근 2-3년 사이 국내외 시장에서 유통된 것으로 추산한다.
점으로부터(From Point), 이우환, 1974
선으로부터(From Line), 이우환, 1980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등 해외 미술시장에서도 이우환씨 위작이 유통되는 걸 봤다는 화랑 관계자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작과 유통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권 다툼과 갈등으로 급기야 투서를 받게 된 경찰은 지난 6월 이우환씨의 작품을 위조하고 유통시킨 혐의로 관계자 수사에 착수했었다. 그리고 4개월 후인 며칠 전 인사동의 한 화랑을 압수수색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10월 초 김환기 화백의 점화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이우환씨의 작품이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해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도 이우환의 주홍색 ‘선으로부터(1975)’였고, 특히 지난해 11월 소더비 뉴욕경매에서도 1976년작 ‘선으로부터’가 216만5000달러(23억7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선으로부터, 이우환, 1975
그러나, 미술경매시장에서도 정상화 화백(11억1920만원)에 비해, 낙찰총액(7~9월) 기준으로 8억9850만원에 입찰돼 약간 밀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위작시비와 함께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최근 내놓은 단색화 주요 작가(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명단에서 이우환씨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단색화 작가인 정상화, 박서보에게도 밀리게 된 이런 현상을 미술계에서는 위작 소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제미술과학연구소 최명윤 소장은 “이우환 선생님한테 갖다드리는 그림은 당연히 좋은 그림들만 가지고 갈 것이기 때문에 이우환 선생님은 가짜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미술계의 위작 논란은 이미 심각한 문제였다. 올 8월에 돌아가신 천경자씨 작품의 위작 시비는 당시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천경자씨의 ‘미인도’를 “내 그림 아니다”라고 천경자씨가 직접 위작임을 제기했었다.
1987년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집에서 압류된 천경자씨의 ‘미인도’는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었다. 그리고 1991년에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회에 출품이 된 것을 천경자씨가 직접보게 되었다. 끝까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진품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위작시비 사건을 뒤로 하고, 당시 천경자씨는 결국 절필을 선언하고 말았다.
미인도, 천경자, 1977
2005년 국내 최고 인기 작가인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도 또한10년이상 장기 불황의 늪을 헤매고 있는 미술시장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만들어 미술계를 더욱 침체시켰었다. 검찰이 미술계의 위작 제조 및 유통 조직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 붙이고 수사를 착수했을 경우, 사실 그 파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될 수도 있었다.
소, 이중섭
도대체 이런 위작시비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왜 사람들은 작가나 작품을 비난하는 것일까? 자신의 작품이 베껴지고 위작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작가가 과연 있을까?
명품 가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가장 가품이 많은 명품 브랜드 루비이통가방은 소위 ‘3초 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가방을 든 사람들을 거리에서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00년 들어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의 명품 시계 판매가 급증하자 가품 시계도 대량 밀반입되었다. 물론 의류와 시계, 가방, 지갑 등 패션뿐만 아니라, 명품 가구 브랜드의 디자이너 가구, 고가의 위스키 등 주류에도 많은 가품들이 있다.
그렇다면 왜 가품을 사는 것일까?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명품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정품은 가격이 너무 비싸 위조 상품으로 대리만족을 느낄수 밖에 없다”고 이유를 말한다.
한 패션 잡지 대표는 “돌체앤가바나나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트를 입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여력이 안 되는 30대 초·중반의 남자 고객들도 찾아와, 패션 잡지에 소개된 명품 브랜드 의류 사진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인간의 욕망으로 일어난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가품 시장 규모는 지난 6월말 기준 으로 6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의 가품 시장규모도 엄청나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버버리, 롤렉스, 까르띠에 등 올 상반기까지 관세청이 적발한 위조 상품 단속건수는 315건에 6159억원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미술품 위작처럼, 명품의 가품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상황에, 루이비통 등 많은 명품 회사나 명품 자체도 미술계의 작가나 작품처럼 비난받아야 하고, 가격도 또한 하락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명품 가품 시장의 팽창은, 오히려 진품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고 그것의 진가와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명품은 명품이다. 독창적인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이끌어 낸 힘은, 또 다른 개별성으로 다른 보편성을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보편성속에서 일어나는 가품이나 위작같은 다양한 현상들도 그 보편성을 깨기는 커녕, 더욱 퍼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위대한 작가와 훌륭한 작품은 어떠한 위작시비에도 그것의 위상이 변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이우환 미술관? 한국에 내 이름만으로 된 미술관을 허락한 바 없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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