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예술칼럼(46)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5
“이우환 미술관?
한국에 내 이름만으로 된 미술관을 허락한 바 없다”
“이우환 미술관? 한국에 내 이름만으로 된 미술관을 허락한 바 없다. 부산, 대구시 등과 언론이 이우환 미술관 짓는다고 퍼뜨리고 다닌다.” 이우환씨는 말했다.
대구시가 2012년에 이우환씨와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을 추진하면서 부산과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막대한 건립비용과 작품 기증을 둘러싼 충돌로 대구시가 사업을 접었고, 결국 국내 최초의 이우환 전시관은 부산에서 설립되게 되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김연준 학예사는 “이우환 공간 개관은 존재감이 없었던 지역미술관의 전시콘텐츠를 한국 미술의 대표 브랜드로 특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다”라고 하면서, 작가의 명성과 위상에 걸맞는 전시 컨텐츠의 개발과 지속적인 작가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은 부산시립미술관 뜰 안의 이우환 갤러리는 광주 때문에 생겨났다고 이우환씨는 말한다. 이우환씨의 작품을 기증받은 광주시립미술관이 그것으로 미술관을 추진하니 뒤늦게 부산 쪽이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부산에서 학교(경남중)를 다녔으니 연고가 있지 않으냐’며 부산시는 사정을 했고, 이우환씨는 고민 끝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작은 전시공간을 설계해주기로 했다. 광주도 미술관을 짓겠다고 해서 제발 재고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개인미술관 좋아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걱정을 했다.
이렇게 해서, 단순 직육면체 모양의 미니멀한 외관인 ‘이우환 공간’이 지난해 3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1년여 만에 부산 해운대 시립미술관 뜰에 자리잡게 되었다. 건물 설계와 전시 컨셉트 일체를 이우환씨가 직접 도맡아서 만든,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에 걸쳐 연면적 420여평 규모로 지어진 유리벽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부산 '이우환 공간' 전경
2010년 일본 나오시마에 건축거장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지어진 이우환 미술관 다음으로 두번째 개인 미술관이며, 건축형태 자체가 그가 추구해온 점·선의 미학적 개념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관 전부터 화제를 모아었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2015년 작품 등 지금까지 작업해온 평면, 설치, 조각 등 작품 총 20여점을 감상할 수 있어, 전시 컬렉션도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나오시마 미술관 못지 않다. 사실은 이우환 갤러리란 명칭을 쓰려 했으나 상업화랑을 연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작가의 요청에 따라 ‘공간’이란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1층 전시관은 ‘관계항’ 등의 조각작품 중심으로, 돌과 철판이 마주보거나 깨진 유리판 위에 돌덩이를 올려 놓은 설치작품 연작들과 철조각들이 있고, 야외 전시관에는 겹쳐진 철판 모퉁이에 돌덩이들을 놓은 설치조각 ‘회의, 2013’이 놓여있다.
'이우환 공간' 1층에서 작품설명하고 있는 이우환
2층 전시관은 ‘대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등, 60년대 일본에서 전위운동 모노하를 주창할 당시 초기 회화부터 큰 점의 울림을 담은 근작 ‘대화’까지 평면 그림 10여점이 있다.
'이우환 공간' 2층 전경
특히 설치와 회화 사이의 경계에 놓인 작품으로 바닥면과 벽면에 작가가 최근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벽화들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대화, 이우환, 2015
부산시립미술관은 미술계의 세계적 거장 이우환의 작품을 부산에서 상설로 만날 수 있게 돼 부산이 문화적으로 세계적 도시로 더 도약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2층 회화 전시 공간의 일부를 활용해 1년 중 2차례는 기획전시를 하기로 작가와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한다.
• “예술가는 뻔히 보이는 것, 뻔히 아는 걸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관람객들은 ‘별로 볼 게 없네요. 점하나 찍힌 저런 것도 예술인가요? 나도 할 수 있겠네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작품은 침과 파스로 통증을 이겨가며 허리를 90도로 꺾은 모습으로 붓끝에 에너지를 실어서 작업한 결과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붓을 내리고, 작은 실수라도 하게되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 밀리미터 단위로 측량을 거듭하며, 티끌 같은 점을 찍은 작품을 11번이나 실패한 뒤 결국 하나가 완성된다. 이것이 조응 시리즈다.
“회화에서 점과 선은 미술의 출발점이다. 삼라만상은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끝난다…나의 모든 예술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암시'다. 점은 그림이 아니라 그려지지 않은 여백을 인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표식일 뿐이다.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 여백이 아니고, 그려진 것과 공간(그려지지 않은 것), 그 전체를 포함하고 그 주변까지 포함한 것의 상호작용에 의한 바이브레이션이 '여백 현상'이다…여백은 '존재의 개념'이 아니고 '생성의 개념'이다"라고 설명한다.
1970년대에 걸쳐 이우환은 조각의 재료들을 철판과 돌로 한정시켜 이들을 상호 관련된 대립체로 개념화시켰다. “돌과 철은 자연과 산업사회를 의미하고 이 시간을 연결해보는 작업이다”, 그에게 자연 그대로의 돌은 미지의 외부 세계 혹은 자아 너머의 존재하는 다른 무언가에 속한 것이다.
철판과 돌을 서로 붙여 놓거나, 벽에 기대어 놓는, 혹은 바닥에 뉘이는 식의 정확한 관계를 성립시킨 관계항 작품은 관객과 작품, 주변 공간 사이의 시공간적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는 미술관의 관람객들에게 당부한다. “작품과 공간이 어울려 나오는 울림을 발견하고 공간 안을 걸어 다닐 때 받는 느낌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모든 작품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알쏭달쏭한 느낌 정도만 가지면 됩니다”고 덧붙였다.
'이우환 공간' 개관기념 4월 8일 작가 기자회견
그는 "예술가는 뻔히 보이는 것, 뻔히 아는 걸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르는 부분과 접촉하고 그걸 표현해야 한다.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할 거리를 줘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같은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예술가는 수지가 맞지 않는 삶이니 얼른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한다.
미술대학 교수 시절에 "빨리 다른 직업을 궁리하고 미술은 취미로 하라"고 신입생들에게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길을 꿋꿋이 가겠다고 주장하는 제자가 있으면 중국 고전에 나오는 '붓을 들기 전에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만감을 느끼고 만 리 길을 가보라'는 말을 해준다고 한다.
옴(AUM)… 전우주의 정수(精髓)를 신비롭게 구현하는 소리로, 힌두교에서 부르는 '깨닫는 소리'다. 힌두인들은 기도·찬송·명상을 할 때 시작과 끝에서 이 음절을 왼다. 불교도나 자이나교도들도 의례에서 이것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a-u-m의 3가지 소리로 이루어진 '옴'이라는 음절은 하늘·땅·대기의 삼계(三界)를, 그리고 힌두의 삼신(三神)인 브라마·비슈누·시바, 베다, 삼전(三典)인 리그·야주르·사마 등 3가지 중요한 것들을 의미한다.
우주와 자연의 틈새를 이야기하는 곳, 시간인지도 공간인지도 헤아릴 수 없는 곳, 언제나 서로의 등을 보이며 서로 그리워하는 인간이란 존재를 느끼게 하는 곳, 이곳이 바로 ‘이우환 공간’이다.
• 예술엔 정답이 없다
그는 일본에서 20년, 유럽과 미국에서 40년간 작품활동을 하면서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독일 베를린 국립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그룹전을 열었다. 그리고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 ‘이우환: 무한의 제시’를,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대규모 조각전시회를 개최했다. 2013년에는 문화예술가로서는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최근의 그의 패턴화된 붓질과 여백이 중국 청대의 일부 수묵화가들이 필묵유희에 빠져 말폐를 드러내었듯이 동양권 예술가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의 최근작품에서 언제나 원점에서 예술의 가치를 되물음으로서 우리의 삶을 확장해왔던 현대미술가로서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비판속에서 이우환씨는 오히려 이렇게 되받는다. “세계 무대에서 생존하려면 밑바닥에 어떤 전통의 뿌리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중국은 천자사상이 있어서 작은 접시도 완전무결한 미감이 있다. 우린 그런 게 없다. 우리 미술사가들은 서구 근대사고에 얽매여 우리 것도 완벽하다고만 하는데 그렇지 않다. 숱한 전란과 왕조 교체 속에서 우리 미술은 가변성, 유연성을 갖게 됐다. 중국·일본 미술에 없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주체 중심의 근대적 가치가 깨지고 타자에 대한 포용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는 한국 미술이 세계로 약진할 기회다.”
아놀드 토인비가 그의 『도전과 응전』에서 일본을 중국과 별도로 하나의 단일 문명권으로 다루었을 정도로 서구에서 일본의 위상은 두드러진다. 서구(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인상파에 일본 미술이 영향을 준 이래 일본이 갖는 문명적 차원에서의 위상은 이미 일본이 수십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던가,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와 같은 세계적인 선(禪)사상가 등의 존재에 의해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특히 유럽에서 높아져 있었다.
따라서 이런 배경 때문에라도 일본의 한 현대미술작가로서 이우환의 위치는 이미 미술사적 의의를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삶과 예술세계가 현대 사회의 탈구조주의 노마드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즉 경계인적 다중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예술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진정성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중국의 팔대산인의 부드러움속에 있는 폭발적인 필획이 그의 비통한 삶속에서 묻어난 초연함인 것처럼, 작가들은 자신들의 삶의 과정을 풀어 헤쳐나간다.
그는 말한다. “조금씩 다가간다. 내일 조금 더…” 존재에 다가가는 그의 진정성, 그것으로 이우환씨는 자신의 삶을 풀어 헤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