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칼럼 (50)
새로운 경제적 가치로 급부상한 미학, 그러나 한국엔 미학이 없다!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2
대기 환경과학과 3학년 신모 학생
종교개혁으로 인해 유럽 전역이 카톨릭과 신교로 나누어진 후, 예술에 있어 신교 사회에서는 포교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가가 필요했다. 대표적인 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는 카톨릭 국가들의 바로크 양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만의 수수하고 절제된 양식으로 번창하였다.
주로 건축이나 초상화, 풍경화을 통해서, 당당하지만 단순한 건물들, 따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전문화된 정물화에서 다른 나라들의 종교적 엄숙함과는 다른 친근함,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라는 변화에 있어 매너리즘 시대는 과도기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항상 무엇인가 변화하는 시기가 중요하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시대가 변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어떠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매우 불안정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성전 정화, 엘그레코, 1600
그 불안함을 개인, 더 나아가 사회가 어떻게 흡수하고 행동하냐에 따라 향후10년, 100년 후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매너리즘 시대에 르네상스의 '완벽함'과 같은 벽을 깨고 나와 새로운 방식에 도전한 화가들이 있었기에 후에 카라바조같은 찬란한 바로크양식을 이끈 화가들 또한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카라바조, 1600-1601
미학, 미술사 수업을 받기 이전에는 나는 사실 '역사적 변화'에 대해서 둔감한 편이었다. 그저 세상은 당연히 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너리즘'을 공부하면서 보편적 흐름에 묻어가지 않고 개별성을 드러낸 화가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현실의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화가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나'와 너무 비교되면서 큰 울림을 주었다. 궁극적으로, 나는 부모님의 그늘 안에서 지내던 십대에서 벗어나 독립을 해야하는 내 인생의 과도기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시각디자인학과 3학년 박모 학생
예술의 정점을 찍었다고 묘사되는 르네상스를 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같은 위대한 미술가들의 기법을 모사하는 예술가들이 늘어났던 매너리즘 시기. 하지만 모든 예술가가 단순히 이들의 스타일만을 완벽하게 따라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의 주체적인 노력, 개성들이 점차적으로 그림에 표현되기 시작했고, 기술보다는 새로운 표현 방법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한 예술가들이 있었다. 영국에는 한스 홀바인이라는 작가가 초대되어 영국 미술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네덜란드에는 풍속화genre painting를 대표하는 피터 브뤼겔이라는 작가가 있었다.
대사들, 한스홀바인,1533
농가의 결혼식,피터브뤼겔,1568
카라치와 니콜라 푸생처럼 라파엘로의 이념을 그대로 따른 화가들도 있었지만, 그에 반하여 자연을 충실히 모사한 카라바조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타파하고 강렬한 그만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플랑드르 출신의 루벤스의 그림은 자유롭고 소재들이 한데 어울려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반 다이크의 그림은 영국의 귀족적인 태도와 세련된 궁정적인 분위기로 인기를 끌었다. 점차 미술가 개인의 개성과 스타일이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때인 것 같다.
오레이티아를 납치하는 보레아스,피터 폴 루벤스,1615
카라바조에게 감명을 받은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그 당시 그림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창의적이고 독특한 구도와 인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생애의 자화상을 그려온 램브란트의 초상화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고,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는 일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크는 르네상스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것 같다. 르네상스의 신에로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같은 그림에서 인간적인 면, 감정, 분위기 등이 조금 더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그림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조화롭고 균형 잡혀 있다기 보다는 역동적이고 불안정한 구도를 통해 보다 극적인 느낌이 강해졌다. 벨라스케스나 렘브란트 그림에서 보여지듯이 자화상이 등장하고, 풍경화나 정물화가 전문화되어 미술가의 관심과 시각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스물 네살의 자화상, 디에고 벨라스케스, 1623
미술가들이 전보다 자신, 개인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그것을 그림에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그들에 의한 그림의 변화를 살펴보는 나조차도 어떤 속박에서 함께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당시 라파엘로 같은 거장의 까마득하게 높은 벽 앞에 봉착한 것 같은 예술가들의 심정이 공감이 갔다. 거의 미술의 정점을 찍었다고 할 정도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두고 그 이상을 할 수 있을까, 천재가 아닌 삶은 의미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법 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거장들의 그림자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길,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끊임없이 애썼다. 그리고 그들이 그 해결방법을 자기만의 개성, 독창성에서 찾은 것 같다. 이러한 여러가지 시도와 자신의 취향이나 관점을 반영하여 미술사는 또 한걸음 전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매너리즘 시기가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듯이 단순히 똑같은 것들의 반복에 질린 상태가 아닌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생명력있고 긍정적인 시기로 느껴진다. 매너리즘을 공부하면서 나의 시각, 나의 관점을 이들처럼 새로운 취향으로 보편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나는 나에게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거대한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은 상태에 봉착하게 될 때, 나는 매너리즘의 예술가들을 생각하며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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