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혜의 런던 아트 나우(London Art Now #16)
런던 아트씬의 인사이드 아웃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와 뱅크시(Banksy)
[런던 곳곳에 위치한 뱅크시의 작품들을 표시한 뱅크시맵. 실제로 런던에는 뱅크시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는 뱅크시 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미술은 끊임없이 과거의 형식에 변화를 부여하며, 과거의 형식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었다. 예술가들의 이러한 도전 정신은 근대 이후 새로운 모습의 예술을 만들어갔다. 특히 1900년 이후에는 기존의 상식에 도전하는 아방가르드의 시도가 있었으며, 그것이 확고한 미술 형식으로서 자리 잡기 전에 또 다른 전위그룹의 도전을 받아왔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면서 독창성에 대한 요구와 새로움에의 갈망은 가속화되었다. 20세기 미술의 변화는 과학의 발전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인식의 전환과 고정관념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해왔다. 예술가들이 실험 정신은 기존 형식의 파괴를 통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 시도였다. 20세기를 통하여 타 장르 간의 접목, 예술 개념의 확대는 더욱 다양하고 복합적인 양상으로 나타나 더 이상 순수한 양식적 분류는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또한 그것이 ‘예술이냐 아니냐’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빈번하게 충돌이 일어났고, 예술작품이 지니는 가치와 역할에 대한 옹호와 비판에서도 격심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난과 찬양을 동시에 받았던 중요한 과거의 예술가들이 남긴 성과는 그 이후의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며,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시도를 통하여 현대의 예술은 변화와 함께 새로운 의미를 확립해왔다.
스트리트 아트
동시대 예술의 한 장르가 된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는 영국의 현대 미술씬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흐름을 만들어 낸 변화 중 하나 이다. 스트리트 아트는 장소 특정적인 일상의 ‘길거리(Street)’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예술의 형식을 포함한다. 스트리트 아트는 대표적 표현방식인 그래피티(Graffiti)를 시작으로 포스터 아트(Poster Art), 스티커 아트(Sticker Art), 페인팅, 설치, 퍼포먼스 등을 혼용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다양한 형식의 범주에 걸쳐져 있는 자유롭고 느슨한 개념이다. 그리고 시각적 유희의 상태로 남기도 하지만 정치적이거나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양상을 띄기도 한다. 또한 하층문화에서 출발한 대중적 전달방식으로 여전히 사회적으로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에, 반정부적이고 공인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1960년대 그래피티를 시작으로 스트리트 아트로서 자리매김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익명의 혹은 유명의 작가가 많지만, 누구에게나 예술가로 인정받게 되는 키스 해링(Keith Haring)이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의 경우도 초기의 그래피티 작업들은 공식적인 예술의 범주에 속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피티를 통하여 자신을 알릴 수 있었고, 공식적 예술의 범주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트리트 아트는 ‘길거리’라는 장소 특정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며, 관객과의 원활한 접근성을 통해 도시인에게 활력을 주는 동시에 시각적 메시지로도 역할을 한다.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공감대 형성은 스트리트 아트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중들로부터의 공감은 주류에 있던 예술 관계자들을 통하여 비주류 예술 취급을 받던 스트리트 아트를 갤러리와 대형 미술관의 길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뱅크시(Banksy)
스트리트 아티스트 중 대표적인 영국의 젊은 작가인 뱅크시(Banksy)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그래피티 혹은 스트리트 아트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그가 받은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대중적 관심은 스트리트 아트의 형식적 범위를 다양하게 넓히며 개념을 선명하게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뱅크시의 스트리트 아트는 전문 미술계가 아닌 길거리를 지나는 다수의 일반대중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나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마크 퀸(Marc Quinn)등 ‘YBA(Young British Artists)’로 통칭되는 영국의 젊은 작가들 이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한 사람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뱅크시의 작업은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온라인의 빠른 전파와 그가 직접 제작한 스트리트 아트를 주제로 한 영화를 통해 많은 관객을 확보하게 되었다.
[런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뱅크시의 작품들]
뱅크시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그래피티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자신의 고향인 브리스톨에서 클럽 등의 공연 홍보를 위한 그래피티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점점 그 영역을 확장해 브리스톨 지역의 세인트 폴 페스티벌(St Paul’s Carnival)과 웰 온 파이어(Walls on Fire) 등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2000년에 들어서 뱅크시는 여전히 브리스톨의 곳곳 그리고 축제와 같은 대형 행사에 초대되어 활동하고, 작은 개인전들을 열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과 작은 샵에서 이루어진 개인전에서 그는 캔버스에 페인팅과 스탠실한 작 업을 전시했으며, 작품은 거의 모두 판매하였다.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는 점차 더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형식적으로 구애되지 않으면서 다양 한 방식으로 그래피티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스프레이와 페인팅만을 사용하던 방식에서 기존의 예술가들이 사용하였던 미술의 여러 가지 기법들을 작 업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갤러리 전시와 함께 캔버스와 유화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설치작품도 제작되어 거리 위에 혹은 특정한 장소에 설치되기 도 하였다. 또한 이 시점에 그래피티는 그만의 새로운 방식의 기법들을 포함하게 된다.
[런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뱅크시의 작품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전 유럽의 포스트-그래피티로서 정점을 달한 전시는 2008년 5월초, 전 세계 40인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작업하는 <캔스 페스티벌(Cans Festival)>이라는 타이틀의 대형사건을 벌였을 때이다. 뱅크시는 유로스타(Eurostar)측으로부터 전시 후 100% 원상 복구 하는 조건으로 200미터 길이의 비어있는 터널을 빌린다. 10년 전 고 향 브리스톨에서 개최한 그래피티 잼과는 달리 강렬한 색채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그래피티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된 스트리트 아트가 전시된다. 찌그러진 채 엉켜 있는 자동차, 불탄 자동차에서 자라난 나무에 마치 열매처럼 감시카메라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설치작업, 낙서투성이의 어린이 놀이터, 군복 무늬를 한 스프레이 캔을 들고 있는 비너스까지 매우 다양한 표현 기법을 사용한 대형전시였다. 페스티벌의 전 시기간은 단 3일간 이루어질 계획이었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향후 6개월간 작품이 보존되었다. 전 세계의 그래피터들이 모인 이 페스티벌 은 미국에서 넘어온 그래피티가 스트리트 아트로서 포스트-그래피티로 성 장한 결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전시였다.
[런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뱅크시의 작품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관심 속에서도 뱅크시의 작업은 매우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를 전형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 단순한 기회주의자로서, 패러디를 일삼는 디자인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작업이 일상에 지루함을 더할 뿐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그의 팬들은 그가 미디어 의존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개인의 권리를 분명히 주장한다고 말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러한 상반된 의견들 속에서도 그가 의도한 여러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다수의 사람이 뱅크시의 작품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예술이 메시지를 담고 관객과 소통할 때 가지는 의미와 기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