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유럽의 맛 찾기
진짜 치즈가 먹고 싶다!! 해외파, 유학파, 소위 ‘외국물’ 좀 마셨다는 이들, 특히 유럽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유럽에서는 별로 맛있지도 않았던 음식과 와인이 굉장히 생각난다는 것이다. 특히, 미식가의 경우, TV 등에서 유럽의 맛있는 음식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 음식을 먹으러 현지로 날아가고픈 욕구가 불쑥불쑥 들 정도다. 와인과 미식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도 그렇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성인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그래서 국내에서 ‘진짜’ 찾기에 나섰다. ‘둘마트’, ‘코스땡코’ 등 국내외 대형마트를 둘러봤지만, 생각보다 치즈 종류가 많지 않았다. 결국, 백화점 식품관을 뒤져서 치즈 몇 종류를 샀다. 아! 쉽지 않다. 먼저 현지에서 먹던 것보다 굉장히 비싼 가격이 지갑을 압박해 온다. 식품의 특성상 냉장 유통이 필수이다 보니 운송비와 세금이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백화점은 이러나저러나 비싸다. 현지에서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편하게 사 먹던 친근한 제품이 한국에서는 백화점의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사진1. 제대로 된 치즈와 햄. 이런 냉장고 있으면 좋겠다.
게다가 더 속상한 것은 비싼 돈 내고 먹어봤더니 현지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치즈를 덩어리 채 수입해 잘라서 파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량으로 포장되어 수입된 것은 아무래도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치즈 소비 스타일도 차이가 있다. 국내 소비자의 경우 맛이 진하고 향이 강한 숙성 치즈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굉장히 어리고 풍미가 부드러운 치즈가 대부분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 친구의 경우 한국에서 치즈를 사면 너무 싱겁다고 한다. 그래서 백화점 치즈 판매 직원이 너무 숙성되어 안 팔리는 치즈가 생기면 이 친구에게 연락해서 반값에 준다고 한다. 윈윈 파트너를 찾은 좋은 케이스다.
사진2. 치즈와 햄 외에도 각종 고급 수입 식자재가 가득하다.
이렇게 치즈를 찾던 차에 단골 와인바 사장님이 안주로 판매할 치즈를 구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한남동으로 갔다. 탤런트 김민준의 단골집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 치즈, 소시지 등 수입 식재료 전문점 ‘Hansel & Gretel’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20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윤명균 사장님이 인사를 했다. 덩어리로 수입한 각종 치즈와 스페인 이베리코산 하몽, 이탈리아 프로슈토 등 치즈와 햄 종류 외에도 프랑스산 푸아그라, 달팽이, 이탈리아산 안초비, 파스타면, 올리브 오일, 트러플 오일, 발사믹 소스, 등 각종 고급 식재료가 매장에 가득했다. ‘여기 비싸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즈 좀 사러 왔다고 하니 어떤 종류를 원하는지 간단히 상담 한 후 먹어보라며 치즈를 조금씩 잘라주기 시작했다.
사진3. 이렇게 주는 걸 먹다 보면 양손 가득 치즈와 햄을 구입한 자신을 발견할 수도…
20년째 한남동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사관 고위직 직원, 호텔 레스토랑 쉐프 등의 단골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이야 여러 직종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20년 전에는 다들 신입사원이고, 주방보조였다고 한다. 신입사원과 주방보조에게도 친절하게 잘 대했더니 이제는 그들이 큰 고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음식이 맛있는 것은 기본이고.
듣다 보니 자랑? 하지만 쉽게 이해가 갔다. 10 종류 이상의 치즈와 햄 등을 쉴새 없이 맛보여 주는데 하나같이 맛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달라고 하다 보니 어느새 양손에 꽤 묵직한 봉다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갑을 열었는데, 그 가격이 묵직한 봉다리에 비해 많이 가벼웠다.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 신입사원도 단골이 될 수 있는 이유인 듯하다.
강산이 두 번은 변할 시간 동안 한우물만 판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가게를 보면 뭔가 고맙다. 계속 있어 줘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있어 주길 바란다. 한국에서도 현지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프랑스 유로저널 박우리나라 기자 eurojournal29@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