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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나리의 개발도상국 뉴스
2016.04.23 22:44
세르비아 (Serbia)
조회 수 3322 추천 수 0 댓글 0
세르비아 (Serbia) 현대 세르비아의 국기는 범 슬라브(Slav)색인 빨강, 하양, 파랑색 줄무늬를 바탕으로 세르비아왕국 시대에 사용되었던 쌍두독수리 국장이 새겨져 있다. 2016년 2월 현재 ATP(Association of Tennis Professionals) 에 따른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1위인 노박 조코비치 (Novak Đoković) 의 조국으로 잘 알려진 세르비아는 2014년 기준 GDP 약$439억 (출처: 세계 은행) 의 세계 89위의 경제 규모의 신흥 개발도상국이다. 구 유고연방을 이루었던 발칸 국가 중 가장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730만명) 이기도 한 세르비아는 남슬라브 계통의 세르비아인이 인구의 83%이상을 차지하며 그 밖에 헝가리인, 보스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동쪽 발칸반도의 중간부분에 위치하며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코소보, 불가리아, 루마니아 및 헝가리로 둘러쌓인 내륙국가이다. (출처: UN) 세르비아인들은 독일, 체코, 폴란드 부근이라고 추정되는 화이트 세르비아(White Serbia) 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약 6 -7세기 경 발칸 반도로 이주해왔다고 전해진다. 9세기경에 최초의 세르비아 왕국이 세워지고14세기 중엽에 세르비아 왕이었던 스테판 두샨 (Stefan Dušan, 재위1346-55)이 발칸 지역에서 세력을 떨쳤으나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터키의 오스만 제국에게 패하여 오랜 기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세르비아 독립군들의 해골로 이루어진 해골탑 (출처: 니스 관광청http://www.visitnis.com) 그러나 19세기부터 세르비아 내에 범슬라브 민족 및 독립운동이 격렬해지면서 1817년에서야 비로소 자치권을 인정받게 된다. 초기 세르비아 독립운동의 어려움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1809년에 세워진 해골탑 (Skull Tower) 유적이다. 해골탑은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인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공포심으로 조장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본래 세르비아 독립군952명의 두개골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박해가 약해진 틈을 타 유족들이 두개골을 거두어 가면서 현재는 58개의 두개골만이 해골탑에 남아있지만 여전히 세르비아인들의 독립정신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로 매년 3만-5만명 관광객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다. 온전한 독립을 갈망하던 세르비아는 1878년 러시아와 함께 '제12차 러시아 - 터키 전쟁'에 참전하고 러시아가 승리를 거두면서 세르비아라는 국호로 국제사회로부터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후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1885년), 발칸 전쟁(1912-1913년) 등으로 주변국들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1914년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세르비아와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을 현재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하게 된다. 이 사라예보 사건 (Assassi-nation of Sarajevo)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최후통첩 끝에 세르비아를 침공하게 되고 이로서 비극적인 제 1차 세계 대전 (1914-1918)이 발발한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동맹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과 연합국 (세르비아, 러시아 제국, 대영 제국, 프랑스로 이루어진) 간의 유럽전역에 걸친 대규모 전쟁으로 병사와 민간인을 포함 약 1700만명 이상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처절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4년 3개월의 긴 전쟁 끝에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주축이 되었던 동맹국이 패전하면서 연합국 진영에 속해 있던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토를 일부 확보하고 주변 발칸 국가와 통합하여 1920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건국한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왕국은1941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하고 나치의 지원을 받은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정권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지면서 이로 인해 약 30-70만의 세르비아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 소련군의 지원과 파르티잔 (partisan, 한국어로 빨치산이라고도 한다) 활동을 통해1942년 영토를 되찾은 세르비아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를 국가원수로 하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편입된다. 그러나 티토 사망 후 연방 내의 분열, 동독일 및 소련의 사회주의 붕괴와 민족주의로 인해 1991년 이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당시 세르비아의 대통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Slobodan Milošević) 는 연방 붕괴를 저지하고자 독립 선포국들을 상대로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시작한다. 2016년1월에 열린 호주 오픈에서 역대 최다 6번째 우승을 달성한 노박 조코비치 (출처: novakdjokovic.com)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세르비아는 슬로베니아 전쟁 (1991년), 크로아티아 전쟁(1991년-1995년), 보스니아 전쟁 (1992-1995년), 코소보 전쟁 (1999년) 등으로 불리는 전쟁들을 일으키며 인종청소를 비롯한 민간인 대량학살, 집단강간, 약탈, 방화, 생매장, 고문, 수용소 감금 등의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결국 반인륜적인 범죄를 막기 위해 북대서양 조약 기구인 나토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가 군사 개입을 통해 세르비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하게 되고 결국 코소보 전쟁을 끝으로 세르비아가 일으킨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막을 내린다. (공식적으로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일부로 간주되는 마케도니아 전쟁 (2001)의 종결로 전쟁이 끝이 나지만 세르비아는 관여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잔혹한 전쟁이라고 알려진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근본 원인에 대해 보스니아 전쟁을 마무리 지은 데이튼 협정(Dayton agreement, 1995년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맺어지고 파리에서 공식 서명된 평화 협정)을 이끈 미국 외교관 리처드 홀부르크 (Richard Holbrooke)는 “개인적이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인종적 갈등을 부추긴 악질적이고 범죄적인 정치지도자들의 산물 (the product of bad, even criminal, political leaders who encouraged ethnic confrontation for personal, political, and financial gain)”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출처: Yugoslavia Unraveled: Sovereignty, Self-Determination, Intervention) 유고슬라비아 전쟁 이후 수많은 전쟁과 국제 사회의 경제적 제재와 고립에 신물이 난 세르비아 국민들 사이에서 반(反) 밀로셰비치 운동이 벌어지게 되면서 결국 밀로셰비치는 2000년 13년간의 권좌에서 물러나 발칸 반도에서 벌어진 66건의 전쟁 및 반인륜범죄 협의로 기소된다. 이 후 어지러운 정세 속에 2006년 5월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고 2008년 코소보 또한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을 하게 된다. 왼쪽부터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크로아티아의 프란죠 투즈만 지도자들이 1995년 11월 21일 데이튼 협약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Corbis Sygma) 2009년 세르비아는EU가입을 신청하였고 2012년에 멤버 후보자 자격을 얻었지만 주변국인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와 달리 아직 승인은 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EU가입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과 발전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세르비아 정부는2020년을 최종 가입 목표연도로 정하고 가입 조건에 부합하기 위한 입법 체계 구축, 개혁 경제 프로그램 계획 수립 및 실행,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사안과 전범처리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EU와의 협상이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현재 EU와 대립관계에 있으나 세르비아와는 우호관계인 러시아 역시 세르비아의 EU가입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는 입장이다 (러시아로서는 EU에 친(親)러시아 성향의 국가를 들여 놓는다는 이점이 있을 수 있다). 세르비아는 2015년부터 국제통화기금 (IMF)으로부터 재정 적자 감소, 금융 부문의 안정성 및 일자리 창출 등을 조건으로 12억 유로 규모의 차관을 지원받아 IMF 3개년 경제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는데 2015년도의 결과가 비교적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2016년 경제 성장률은2% 수준으로 예상된다. 또한 실업률(‘12년25.5%→‘15년17.9%, 출처: 세계 은행), 국가위험도 EMBI (Emerging Market Bond Index) 지수 (‘12년408bp →‘16년 282bp 출처: 세르비아 중앙은행)등의 경제 지표들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고 최근 동유럽 투자에 관심을 갖는 중국으로부터 에너지, 도로 건설 프로젝트에만 2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점차 증가 추세에 있는 세르비아의 총 수출액 (‘12년 €87.38억 →‘14년€111.5억 출처: 세르비아 통계청) 가운데 대부분은 자동차 관련으로 수출품은 2008년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사 FIAT가 대규모 생산 시설에 투자한 이래 자동차 관련 부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생산 부품들은 한국의 기아차 등에게 납품되기도 하지만90%는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범죄자의 혐의로 국제 형사 재판소에 체포되어 재판받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던 그는 2006년 64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숨졌다. (출처: www.telegraph.co.uk) 2000년대 이후 민주화와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현재 발칸반도에서 비교적 안정된 나라로 인정받고 있는 세르비아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늘어나고 있는 네델란드, 스위스, 중국, 러시아, 헝가리 등의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시켜 기업들이 사업을 확장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동유럽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지리적인 이점을 잘 살리기 위한 철도와 고속도로와 같은 인프라 시설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세르비아 정부는 주변 발칸 국가들과 함께 유럽횡단도로 및 고속철도 등을 건설 중에 있고 발전소 건설 사업에 주력할 예정이어서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현재와 같은 강도 높은 경제 개혁 작업을 통해 재정적자 (2015년 11월 기준 정부 부채 €251억, GDP의 76.2% 출처: 세르비아 중앙 은행) 를 통제한다면 경기부양과 건실한 재정안정을 균형 있게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빈나리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런던 소재 국제금융기구 유럽개발부흥은행 (EBRD) 근무 - 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EBRD의 26개 개발도상국 관련 업무 담당 - 미국 코넬 대학 졸업 - 일본 와세다 국제 관계학 석사 MA (일본 정부 장학생) 및 영국 캠브리지 경영학 MBA (영국 정부 장학생)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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