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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6.07.17 22:30
과거를 통한 미래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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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통한 미래의 성찰 인류가 시작된 이래 과거와 현대의 차이점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하여 왔다. 인간 세계는 처음을 유추해 낼 수 없을 만큼 발전하여 왔지만 짐승의 세계는 시작할 때와 현대와 생활양식은 별반 다르지 않다. 천 년 전의 까치집이나 21세기 현대에 지어지는 까치집은 동일하다. 다만 나무와 전봇대라는 인간이 만든 환경에 의해 달라졌을 뿐이다. 사자들의 먹이는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사냥하는 방법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사자가 이 땅에 창조된 이래 변화된 것은 없다. 런던의 도심에서 여우를 본다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길고양이를 보는 것 보다 더 잦을 것이다. 오히려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숲으로 가면 여우를 볼 수 없다. 여우 역시 과거나 현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 발전시키는 문명에 의해 생활 터전을 빼앗겨 도심의 쓰레기통을 뒤질 뿐이지 생활하는 방식은 여전하다. 그러나 인류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과거에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했다. 북에서 파송된 공작원이 비밀스럽게 무기를 감추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깊이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 그곳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만이 훈련 받은 특별한 지도 기입 법으로 표시해 두었고 그 지도 역시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을만한 공간에 숨겨 두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에게 지령이 내려왔다. 그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선 숨겨둔 비밀 물건이 필요했다. 그 물건을 어디에 보관해 두었냐며 동료들이 물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잘 숨겨 두었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물건을 찾기 위해 지도를 꺼내고 삽을 들고 지도에 표시된 산을 찾았다. 그런데 그 산은 온데 간데없고 그곳엔 신형도시인 아파트촌을 만들기 위해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관계자를 찾아 큰 산이 어디로 갔느냐 묻자 산이 없어진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공작원은 왜 이리 자주 변하냐며 투정부릴 때 그의 미리위로 까마귀가 날아간다. 바로 2012년에 개봉된 우민호 감독, 김명민 주연의 영화 '간첩'의 한 장면이다. 현대의 십 년이면 과거의 백 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과학문명은 발전하게 된다. 인디언들이 여행을 할 때면 한동안 걸음을 멈추어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속도가 빠르면 자기 영혼이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늦게 오는 영혼을 기다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길 안내를 겸해 짐을 옮겨주는 원주민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기다려야 한다. 인간이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성찰의 의미가 있다. 짐승 세계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물론 짐승도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사자 몇 마리에 쫓기는 버팔로 떼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게 된다. 숫자적으로나 그들이 가진 가공할만한 집단의 힘을 이용하면 몇 마리 정도의 사자는 능히 이기고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제히 공격을 한다면 사자는 도망할 것이 분명한데 사자를 향해 대항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짐승은 초원의 법칙인 약육강식이라는 본능적 구조로만 살기 때문일 것이다. 짐승은 자신들이 실패한 원인, 다른 종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이유를 분석하지 않는다. 동료 짐승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볼 뿐이다. 그래서 천 년 전의 짐승이나 천 년 후의 짐승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먹이 사슬이 끊기게 되면 멸종하게 되는 것이 본능으로 살아가는 동물 세계의 미래인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회는 끊임없이 과거를 성찰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역사의식이라 한다. 이는 지난날에 대해 후회하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역사를 기록하고 그것을 심도 있게 공부한다. 인류사에서 역사의식을 갖는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 중엽에서야 역사의식을 정립한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역사를 고찰하여 더 나은 인류사회를 위해 많은 생각과 고민, 나름대로 시대에 걸맞은 역사철학을 내 놓았다. 인류사회에 큰 획을 그을만한 역사의식은 대체적으로 두 개의 큰 기둥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나는 17세기 후반에 영국과 독일에서 시작되어 18세기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이룬 계몽사상(enlightenment)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모든 해석을 신과 더불어 했으며, 신에게로 종속되어야 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을 신의 진노함이라는 해석을 내 놓았다. 인류가 질병에 노출되는 것도 그러하며, 나라와 민족 간의 전쟁도 신의 개입으로 해석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몽주의 사상은 어떻게 보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자유 하겠다는 독립사상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식에 또 하나의 획은 19세기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의 모태를 이룬 개성적 인간관의 근간을 이룬 개인주의 역사의식이다. 신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 발전한 개인주의 철학이다. 개인주의는 현대를 지탱하는 문화와 문명의 중심축이 된다. 인간의 역사는 개인에서 씨족 중심으로 발전하다 그것이 민족주의 형태인 국가로 발전하여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과거에 배운 사상은 백의민족으로서 단일민족 사상이었다. 현대는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는 교육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류역사 이래 단일 민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씨족 사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이라면 모를까 현대 문명의 숲에서 단일 민족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다. 정치인들은 한 때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시켜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도 했지만 현대 문명에서 민족주의는 신앙으로 뭉쳐진 몇몇 국가 외에는 찾을 수 없게 된다. 과거를 알아야 하는 것은 과거 속에 인류의 미래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강조했다. 옛 것을 알면서 새 것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역사의식이 없다면 미래 의식도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 낼 수 있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이 과거 역사에 숨겨있으며 인류사회의 미래는 원시 문명사회라 불리는 과거에 숨겨 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웨일즈의 수도인 카디프에 밀레니엄 공연장 앞에 특별한 방식의 인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아이버 노벨로'(Ivor Novello, 1893-1951, Actor) 동상이다. 특별한 이유는 대부분의 인물 동상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반면 노벨로의 동상은 의자에 앉은 자세에서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버 노벨로’ (Ivor Novello, 1893 – 1951, Actor) 동상, 카디프> 자기에게 주어진 분야에서 시대의 획을 긋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최정상이라는 성공의 자리에서 얻어지는 영광을 자신만을 위해 누리지 않겠다는 것은 성공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자신의 희생을 발판 삼아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더 나은 인류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성공의 정상에 선 사람들이 스스로 그 정상을 내려와 낮은 자리에서의 섬김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성공이라는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성장에 선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정상이 영원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아이버 노벨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정상에 있는 사람도 끄집어내려야 하는 야속한 개인주의 시대가 염려 되어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그의 철학을 반영하여 동상을 제작했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는 그의 모습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 인류를 향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성찰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과거의 문명은 느리게 걷기라면 현대 문명은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이다. 모든 성공은 속도와 비례한다. 십년동안 공부해서 무엇인가를 얻은 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십대에 이미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는 사실,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무엇인가를 완성했다는 속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과거 영국은 느리게 걷는 일에 익숙했다. 도로 공사를 하더라도 정시에 출근하여 정시 퇴근을 했다. 주말이면 공사를 하지 않았다. 작은 공사일지라도 오래 걸린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현대 영국도 느린 걸음에서 탈피하여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 공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토요일, 주일이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는데 이제는 모든 가게들이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전 세계가 지구촌 공동체를 이루며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에 한 나라만이 천천히 걷게 된다면 심각한 경제 위기를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것은 자명할 것이다. 그래서 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그러나 속도전 문명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속도는 인류를 긴장하게 할 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이다. 달리는 만큼 인간성은 파괴된다. 고속주행을 하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순 있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환경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에 장애가 된다. 오직 달리는 것에만 몰두하게 된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어떤 사상적 가르침이 아니라 성숙한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행동이어야 한다. 과거를 통한 미래의 성찰이 있어야 만이 과거 보단 현재가, 현재 보단 미래 사회가 물질과 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이 존귀한 존재임임을 깨닫고 실현하는 탄탄한 인류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http://jvcc.org -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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