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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6.07.25 21:50
돌과 속삭인 인생노트
조회 수 1690 추천 수 0 댓글 0
돌과 속삭인 인생노트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환경에서는 어울리지 않을뿐 아니라 통용되지 않는 단어일 것이다. 영국에서는 북한에서 이주해오신 동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된다. 몇 해 전 북한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다 부모를 따라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정착한 청소년을 만나 교류한 적이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만나 가볍게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영국의 유명 명소들을 방문하며 삶을 나누었다. 한국에서 유신정권과 제5공화국 시대에 교육을 받았다면 저 깊은 생각 속에는 북한 출신의 사람들을 형제나 자매로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것은 싶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북에서 온 친구들 역시 그러했다. 몇 해를 만났을 때서야 그들의 진짜 생일을 알려 주었다. 처음에는 감사하다는 표현, 행복하다는 말을 거부했다. 그들의 솔직한 표현은 그런 말들이 역겹다고 했다. 물론 그런 표현도 좀 친해지고 서로를 신뢰했을 때 한 말이다. 몇 년이 지나서야 차를 태워주면 고맙다고 표현하고, 만나면 포옹을 하며 덕담을 하는 것도 낯설지 않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의 삶의 환경은 완벽하게 바뀌었다. 북한을 잘 알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삶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오죽 했으면 목숨을 걸고 탈출을 했을까? 그렇게 주어진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얽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강원도 삼척 지방에 "너와집"이 있다. 지금은 '중요민속문화재'에 속하여 그 아름답게 보이는 집들을 보존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첩첩산골에서 집을 지을 재료가 마땅치 않아 나무껍질을 벗겨 지붕을 만들고 속나무는 두꺼운 널빤지를 만들어 벽을 만들었다. 깊은 산자락 끝에 지어진 너와집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아름답게 보일뿐이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처절한 삶의 투쟁의 장소였을 것이다. 현대에 보존되고 있는 집을 보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름답게 보이는 곳에 사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반면 아파트 밀집촌을 보면 답답해 보이지만 살기에는 편하다. 잠시 잠깐 아름다움을 택할 것이냐, 편리한 삶을 택할 것인가? 현대인들은 편리함을 택한다. 편리함에 아름다움을 겸하면 좋으련만 인생은 그렇게 양쪽 모두를 취할 수는 없는가 보다. 아름다운 절경에 사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감상할 겨를이 없다. 세계 절경 중 하나인 중국의 화산은 그 빼어난 절경을 세계의 으뜸이라 자랑한다. 화산은 태산, 황산, 형산, 숭산과 더불어 오대 악산 중 하나로 불린다.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주변의 경제가 살아난다. 높이는 2,437미터 험준한 바위산으로 이뤄졌다. 정상 절벽 위에는 불심을 자랑할 만한 사찰이 몇 군데 세워져 있다. 죽기 전에 한 번 가 봐야 한다는 절경이다. 그곳을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화산의 짐꾼이다. 관광객들은 가파른 절경을 오르면서 쉬기도 하고 물을 마시며 빼어난 절경을 감상하지만 짐꾼은 60 - 70 kg나 되는 물건을 걸머 메고 악산을 매일 올라야 한다. 쉰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잠시 짐을 바위에 걸쳐놓고 호흡을 정비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위태롭게 땀 흘려 벌어들인 돈은 한 달에 약 2천 위안(40만 원정도)이다. 화산을 오르는 길을 '찰이애'(擦耳崖)라 부른다고 한다. 좁은 길을 지나갈 때 귀가 절벽에 거의 붙다시피 걸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힘든 바위산 길을 맨 몸으로 오르는 것도 힘겨울텐데 자기 몸무게 보다 무거운 짐을 메고 오른다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절경을 매일 오르면서도 짐꾼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은 삶의 무게를 짓누르는 고통일뿐이다.
삶은 아름다움만 모여진 것이 아니다. 버려지면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쓰레기를 포함하고 있다. 버리지 않아서 소중할뿐이지 대문 밖을 벗어나 길가에 버려진다면 그날로 인생은 쓰레기 더미에 불가할 수 있다. 골목길에 내놓은 이삿짐은 초라해 보인다. 소중하게 사용하던 물건이 짐짝처럼 쌓아 놓게 되면 마치 버려진 물건과 같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새집에서 적용적소에 정리정돈 되면 골목길에 놓여 있을 때 느낄 수 없는 안정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영원할 수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면 풀은 말리고 꽃이 떨어져 그 아름다운 모양은 없어지게 마련이다. '이해인' 님의 시 "1%의 행복"에 이런 시구가 있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행복과 불행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 1%차이라는 표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긍정적인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 존재한다. 한 공간이란 같은 사건을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름다움도 그러하다. 런던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유명한 곳은 편하게 걸을 수 없을 만큼 관광객들로 붐빈다.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 삼삼오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명 하거나 작은 표시 봉 하나 들고 안내하는 사람이 있게 된다. 먼발치에서 보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돈을 내고 여행을 하는 사람과 일정한 수고비를 받고 여행지에 있는 사람이 있게 된다. 아름다운 곳에 돈을 내고 있는 것 보다 돈을 받고 있는 것이 보람되고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이다. 오래전 이스라엘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 팀을 안내했던 젊은 친구에게 부러움이 담긴 칭찬을 해 주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거액을 들여 여행오지만 매번 올 때 마다 돈을 받고 오니 얼마나 좋겠냐는 거였다. 대답의 의외였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 생각이라는 거였다. 아름다운 곳에 묻혀 사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볼 수 없으며 또한 느낄 수 없게 된다. 먼발치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고, 그 아름다움이 그리운 법인가 보다. 고통의 땅에서 벗어나 자유의 땅에서 살아가면 행복에 겨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게 된다. 죽기 전에 봐야 한다는 절경을 오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그의 어깨에 메어 있는 짐 때문일 것이다. 성지순례의 특별한 장소에서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것 역시 삶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많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환호하고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말을 할 때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일 것이다. 크로이던(Croydon)의 한 고급 아파트(Tennyson Apartments) 정문에 커다란 돌로 장식을 해 놓았다. 멀리서 보면 돌덩이에 불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분명해 보인다. 말없이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도, 어두움이 세상을 지배할 때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곳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일뿐인데 돌과 더불어 말을 나누다 보니 인생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일명 돌과 속삭인 인생 인생노트다.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도 초월하고 행복이나 불행도 초월한 도인 같은 큰 바위 얼굴을 하고 서 있다.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Tennyson Apartments in Croydon 과연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새로운 정의가 필요치 않을까 한다.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을 아름다움이 아닐 것이다. 행복의 숲에서 부대끼며 살아갈지라도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행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의 시작, 행복의 시작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어야 그것이 참 아름다움과 행복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서 시작된 씨앗을 환경에 짓눌리지 않고 극복하며 키워 가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느끼는 것이다. 카메라에 담고 싶은 아름다움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환경이 비록 척박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갈지라도 그곳이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며, 그 터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환경을 극복하게 하는 그 사람의 마음크기이며 깊이일 것이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http://jvcc.org -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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