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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6.09.12 21:27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조회 수 2208 추천 수 0 댓글 0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민족에게 가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은 한가위일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 달은 모든 민족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지만 우리 민족에겐 집 앞에 떠 있는 놀이기구이며 친구와 같은 존재다. 그것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녹아져 있다. 가을을 일컬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칭한다.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풍류가 담겨 있다. 하늘이 높은 것과 말이 살이 찌는 것을 연관시킨 것은 우리 민족만이 가지는 문학적 소질일 것이다. 가을이 무르익는 것은 한가위부터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중추절을 지내 왔다. 하늘과 말을 연관시키는 것 보다 달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매체가 바로 한가위 중추절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달나라에 거대한 토끼 한 마리를 키워왔다. 홀로 있기 외롭다 느껴 절구통을 가져다 놓고 토끼로 하여금 방아를 찧게 했다. 기상천외한 유머가 아닐 수 없다. 지구촌에 존재하는 문화에 이런 위트는 없을 것이다. 서방문화는 합리적인 생각을 할 때 우리 조상들은 합리적인 생각을 넘어 인문학적인 상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어디 이뿐인가? 푸른 하늘 은하수에 하얀 돛단배를 띄운다. 그 배는 특이하다. 삿대도 없고 돛대도 없는데 서쪽 나라로 잘도 간다. 노랫말에 나오는 서쪽 나라는 어떤 곳일까? 현실 세계에는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나라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은하수를 나타내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은하수의 적은 태양이다. 태양이 비출 땐 은하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는 곳은 서쪽이다. 태양이 져야 만이 비로소 은하수는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전 인류의 문화를 통틀어 은하수에 돛단배를 띄울 수 있는 민족은 우리 민족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상천외한 상상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 민족을 한의 민족이라 부르기도 하고 흥이 많은 민족이라 표현한다. 한이 많으면 흥이 깨지는 법이고, 흥이 많으면 한이 없게 되는 서로 상충되는 표현이다. 둘 다 공존하는 것은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이며 어둠과 빛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한과 흥을 한 공간에 가두었다. 우리 민족만큼 한이 많은 민족은 없을 것이다. 국가 형태가 만들어진 이후 937회나 외세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 많은 침략 중에 가장 고통을 안겨 주었던 것은 36년간의 일제강점기였을 것이다. 고통은 한으로 남겨지게 된다. 그 한을 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문학적 기질이 아닐 수 없다. 한이 흥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은 민족의 탁월함을 넘어 위대함일 것이다. 서구 문명은 오랜 시간이 농축된 장구한 역사가 건물에 남겨져 있다. 천년이 넘은 건축물들이 현대 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을 보면서 때론 우리 역사가 작아질 때가 있게 된다. 서구문명은 돌 문화라고 한다면 우리 민족은 나무 문화다. 나무와 돌은 엄연한 차이가 있게 된다. 천 번에 가까운 외세 침입에서 외부의 적들에 짓밟힌 것은 민족성 뿐 아니라 건축 역사가 불타버린 것이다. 나무로 세워진 건축물들은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불앞에는 위태로운 촛불과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 성장한 지역이 강원도다. 중학교 무렵에 본가인 경상도 군위와 외가인 안동을 장기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문화충격을 받은 것은 길가에 심겨진 가로수들이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완행버스 사이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가로수들이었다. 강원도에서는 그런 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 돌아와서 평소에 말을 한 마디 안하는 성격이었지만 일 년에 몇 차례 질문을 하곤 했다. 질문 할 때 마다 그 질문이 엉뚱한 질문이었기에 엉덩이를 맞거나 손바닥을 맞기도 했다. 장교 출신의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질문에 역사적인 고증을 들어 친절하게 답을 해 주셨다. 경상도 지역에는 가로수가 많고 강원도에는 가로수가 없는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워낙 많은 폭격이 있었기에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선생님의 훈시에는 반드시 지뢰와 불발탄 폭발물을 조심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기억하기로는 일 년이면 몇 차례 논과 밭이나 시냇가에서 폭발물을 잘못 건드려 목숨을 잃거나 손발을 다치는 사람들은 흔한 사건이었다. 가로수가 남아 남지 않을 만큼 폭격을 받았다면 건물은 당연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서 천년이 넘는 건축물에도 간혹 총탄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건물이 돌로 지어졌기에 견뎌냈을 것이다. 만약 서구 문명도 나무로 지어졌다면 불에 타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전쟁을 겪었다는 것은 그만큼 맺힌 한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장례 문화에서 그 한을 느낄 수 있다. 영국에서의 장례식은 기절할 만큼 통곡하지 않는다. 슬픔은 있지만 적당한 슬픔, 예를 갖춘 슬픔으로 장례를 치른다. 고풍스런 음악이 있고 말끔하게 차려 입은 신사 숙녀들의 당당함에 슬픔 보다는 절제된 기쁨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장례는 일단 울어야 한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실신할 만큼 통곡하며 울어야 한다. 음악도 슬프다. 의상은 일반적으로 입을 수 없는 수의와 같은 재질로 된 옷을 입고 가장 슬퍼하는 죄인의 모습이 고인에 대한 예인 것이다. 한이 많기에 우리 민족에게만 유난이 많은 것이 화병이다. 가슴에서 불이 탄다는 의미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다. 화가 많기에 그것을 다스리는 것은 오히려 찬 음식이 아니라 더운 음식으로 다스렸다. 몇날 며칠을 끓여 만든 탕으로 속에서 타오는 화를 다스렸다. 화는 한이 되고 한은 육체에 고통을 안겨준다. 그것을 우리 조상들은 흥이라는 지혜로 다스렸다. 가을이 되면 동네 마다 풍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거의 동네 마다 농악패들이 있어서 가을걷이가 끝난 후 집집마다 돌면서 흥이 나는 풍악 놀이를 즐겼다. 그러면서 희망하는 것은 보름달과 같은 삶을 원했던 것이다. 보름달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이 없는 중심철학인 것이다. 기쁨도 질서 안에서, 슬픔 또한 적당 선에서 끝을 맺어야 한다. 한과 흥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보름달과 같은 삶을 추구했던 문화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어느 지역에 갖다 놓아도 살아갈 수 있는 자생 할 수 있는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 사막에 놓였다 할지라도 그곳을 개간하여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암흑의 동굴에 놓였다 할지라도 그곳을 대낮과 같은 밝은 곳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변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고생을 많이 했다는 증거가 된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게 된다. 모르면 배워서라도 할 수 있다. 그 배움의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하는 ‘우사인 볼트’ (Usain Bolt, 자메이카 육상선수) 보다 빠를 것이다. 런던에서 만난 많은 한국인들 중에 한국에서 공부하고 가지고 있던 직업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며칠만 지나면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몇 달이 지나면 영국인들이 하지 못할 만큼 완벽할 뿐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 민족의 소망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이웃과 더불어 화목한 것을 제일 덕목으로 삼았다. 자식에게 남겨주는 제일 원칙은 세계를 정복하고 큰 기업을 이루라는 것이 아니다. 형제자매가 화목하게 살라는 것이다. 달을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하기 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앞산에 달을 띄워 놓고 그곳에 토끼 한 마리를 키우는 정적이며 소박한 삶을 원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에는 배 한 척 띄워놓고 잡히지 않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낮잠을 즐기는 서정적이며 몽환적인 삶을 추구해 왔다. 우리 조상들은 결코 외세를 침략한 족적을 남기지 않았다. 침략을 받을지언정 먼저 남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한 정신은 조폭의 황제라 불렸던 김두환에게 전해졌다. 결투를 해서 지면 물러나는 것이다. 결투 역시 주먹 외에 다른 무기를 든다는 것은 수치로 여겼다. 뒤에서 엄습하여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고 정해진 시간에 공개적인 결투를 했다. 가슴에 맺힌 한을 예술적 감각인 흥으로 승화시킨 민족의 정신은 현대에 와서 어떻게 보면 고인 물이 되어 부패 할 수 있다. 아무리 깨끗하고 정결한 생수라 할지라도 그것이 한곳에 고여 있게 되면 가장 오염된 물이 된다. 한 시대의 발전을 일으켰던 원동력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혁신을 하지 않게 되면 다음 세대에 발목을 잡는 악습이 되는 것은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된다. 한가위라는 말에는 단순한 달 이야기가 아니라 조상들의 한과 흥, 지혜가 담긴 우리 민족의 DNA와 같은 것이다. 평소에는 단합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큰일이 발생하게 되면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것은 핏속에 흐르는 애족적 혈통 때문일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은 세상을 꿈꾸는 것은 다른 문화를 침략하여 빼앗는 정복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을 꿈꾸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공동체의 소박한 소망이다. <사진 : 완전체 보름달, dongA.com 뉴스 이미지 인용>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http://jvcc.org -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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