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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태평
저를 포함한 저의 가족 4명의 공통적인 성격은 천하태평이라는 점입니다. 남편은 20여 년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사표 내고 들어온 날 밤, 쿨쿨 잠을 자 저를 감탄하게 했습니다.
큰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 년여를 실업자로 지내면서도 태평하여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요즈음, 매일 입으로는 '죽겠다'를 연발하지만 전혀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매일 지각을 하여 담임선생의 전화 항의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한번은 몸이 아프다는 아이를 차로 학교 앞까지 바래다 주고 우연히 만난 담임선생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는 그 같은 항의를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지요.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너무나 태평한 아이 엄마의 태도에 질렸었나 보다 합니다.
현재는 대학을 그만두고 식당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몇 달 만에 '우수직원상'을 두 번이나 받더니 오늘은 그 상으로 그 식당에 가족 저녁초대를 받았다며 오라고 야단이에요. 내년 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지만 식구들은 모두 그런가 보다 하고 있을 뿐입니다.
실업자 남편을 두고, 혼기를 앞둔 딸이 속절없이 나이 먹어 가는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고, 국내 대학에서도 공부를 못해 중단한 딸이 아르바이트로 여비를 마련해 해외 유학을 가겠다고 까불어도 아무렇지 않은 태평한 제가, 지난번에 다녀간 몇몇 분의 고통이 가슴 깊이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분은 가정불화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인데, 본인들은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가정불화이면 집에 가서 당하면 될 일이지 왜 자나깨나 그 걱정이란 말입니까? 퇴근해서 집에 가면 저녁 먹고 잘 때까지 두세 시간 겪고 쿨쿨 자면 될 일을 왜 24시간 겪느냐는 말입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계속...) Grinee, Lee /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현재 호주 시드니 거주 grinee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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