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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16.10.03 23:16
지중해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땅에서 태동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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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땅에서 태동한 종교 구약성경의 유태교, 신약성경의 예수교, 코란의 회교 지중해변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땅에서 발생한 3대 종교 중 회교를 제외하고 서양의 문화 예술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구약성경의 유태교와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교를 통하여 이 지역의 인간들이 남겨 놓은 작품들을 감상하고자 한다. 신흥 종교가 법정에 서다 피고 예수에 대한 로마 제국 법정의 재판 메소포타미아를 떠난 아랍인들의 일개 부족이었던 노아의 10대 손 아브라함(기원전 2116-1991) 가문이 그들의 역사를 기술하고 새로운 유일신을 찾아 선친때부터의 고향 바빌로니아의 갈대아 우르 땅을 떠나 하란에 정착한다. 아니면 새로운 유일신이 아브라함을 안내하여 고향 친천들을 버리고 자기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자기들의 전지전능하신 신의 이야기와, 신과 함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구약성경이다. 이 기록에 동참한 자들은 유태인의 조상들이다. 그리고 그 유태인들의 조상들이 습관적으로 믿던 신을, 그들의 후손 가운데 예수라는 분이 나와서 제대로 믿어 보라고 당대의 지도자에게 설교한다.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모두 젊은 예수의 바른 소리가 불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새로운 종교의 교주 예수가 사형을 언도 받았다 교회당에서 가르치던 예수가 식민지 이스라엘의 종주국 로마제국의 법정에 섰다. 원고는 제사장들과 장로, 교회의 박사들이다. 피고는 예수, 죄목은 이스라엘의 공공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힌 죄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소크라테스 이후 또 하나의 가장 유명한 재판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종교의 교주인 예수에 대한 재판이다. 재판이 끝나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 가신 후 그의 제자들은 성경의 부록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 기록의 모음집이 신약성경이 된다. 그리고 기존 종교가 자리 잡은 땅에 들어 가는 새로운 종교는 이단 종교가 된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Ecce homo 1540년) 프랑스 이름으로 "띠띠앙"은 148년경 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네체치아 지방에서 태어나 베니치아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날짜까지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는 당대에 명성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인물의 성격묘사를 이끌어내는 터치가 탁월하였다. 중세 이후로 선과 형태에 갇혀 있던 회화를 그 속박에서 해방시켜준 화가로 더 알려졌다. 그는 회화의 무게를 선과 형태보다 색깔에 부여한 화가로 이름을 남긴다. 티치아노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함과 라파엘로의 우아함과 엘레강스 그리고 자연의 순수한 색깔을 연합하여 회화를 한층 올려 놓았다. -루도비코 돌체
티치아노 베첼리오 아뜰리에 (Atelier de Tiziano VECELLIO, 1488/1490 - 1576) 동양과 서양의 종교 지도자의 다른 점 석가와 예수의 차이가 있다면 석가는 족보가 훌륭하여 왕실에서 태어나, 어느 시절, 인생의 문제에 의문이 생겨 궁궐을 나가 유리 방랑하다가 보리수 나무 밑에서 해탈한, 처음부터 끝이 멋지고 환상적인 종교 지도자이다. 부처님은 여러 가지 형편상 현실 정치나 경제, 질병, 가난으로 고통 받는 중생의 삶에 동참하지 않는다. 석가는 사랑과 자비는 있었지만 사회 정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면 다들 부처가 되고 중생이 평안을 얻으면 되는 것을 직접 나서서 행하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하고 각자의 마음이 해결한다. 부처님이 민중을 위하여 민중에 의하여 법정에 설 일은 없다. 하지만 예수는 로마 제국 시대에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 가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에게 다가가 정의와 사랑을 함께 실천하고자 하였다. 예수는 병들고 나약한 인간들을, 그 더럽고 저주 받은 인간들을 직접 만나 만지고 위로하였다. 인간을 사랑했기에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의 못질 당함을 거부하지 않았다. 당대의 제사장이나 장로들 지도자들에게 당당할 수 있었다. 유태인들의 율법의 적용에 대한 순종을 보여 주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빌라도는 병사들에게 예수를 채찍질하게 한다. 병사들은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힌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왕 예수 만세"를 외치며 뺨을 쳐댄다. 로마 병사들에게 잡혀온 가시관을 쓴 예수를 본디오 빌라도가 군중에게 보이고 있다. 본디오 빌라도가 말한다 "보시오 내가 저 사람의 죄를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오." 그 말을 할 때 가시관을 쓰고 자주색 옷을 입고 예수가 밖으로 나왔다. 빌라도가 말한다. "자 이 사람이오" 수석 사제들과 성전의 경비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하고 외쳐댄다. 빌라도는 재판장 자리에 앉아 예수를 군중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위에 히브리, 로마 그리고 헬라말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붙이고 자신은 손을 씻었다. 이 재판은 당시 새로이 부상하는 신흥 종교에 대한 재판이다. 당대 로마 제국이 재판관으로 고발인은 유태인 제사장들이다. 소크라테스의 재판, 예수의 재판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에 대한 재판이라면 예수의 재판은 당시 사회에 반역하고 로마 제국의 종교에 영광을 돌리기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자처한 자로 신성모독죄로 율법에 의하여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하였다. 형 집행은 십자가형으로 내려졌다. 소송의 내용과 절차는 제자들에 의하여 성경에 기록된다. 성경은 역사적인 기록물이 아니다. 역사적인 예수를 추적하는 것은 성경의 역할도 아니다. 이 기록은 신약성경 요한의 글 19장을 그렸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기 직전의 모습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화가 티치아노의 이 작품은 어디에 놓였던 작품인지 모른다. 하지만 원형 그림은 티치아노가 그린 작품 중 드물다.
빌라도가 손을 씻는다 (Pilato si lava le mani, vers 1663), huile sur toile 206 × 184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621호실 바로크 풍의 화가 마띠아 마띠아 프레티(Mattia Pretii 1613 1699)는 나폴리 출생으로 주로 로마와 말타에서 활동하였다. 유럽과 전 세게의 박물관에 그의 작품을 불 수 있다. 마태의 글 27장 24절에 빌라도가 얻는 것도 없이 소요가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사람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너희가 당하라"라고 말한다. "손을 씻는다"는 속어는 나쁜짓에서 손을 빼고 혼자 깨끗하고자 하는 행위나 같은 무리에서 나와 혼자 책임 회피할 때 사용하는 속담으로 이 예수 사건 재판 이후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마티아스 스톰 (Matthias Stom 1589-1590, -16501) 손을 씻는 본디오 빌라도(유화 153x205cm 루브르 박물관) 우트리히트 카라바지오 화풍의 화가로 마티아스 스톰은 홀랜드 황금기의 화가였다. 화가는 예술적 경력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그의 화풍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카라바지오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 주며 인물묘사에서는 심리적인 흔적을 읽어볼 수가 있다. 손을 씻는다는 말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 당시 로마의 지방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Ponce Pilate)의 처신을 두고 하는 말로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아주 위험한 반역자라고 고발하며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를 심문한 연후에 빌라도는 그에게 사형을 시킬 아무런 이유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마침 부활절 축제 때가 되어 빌라도는 죄수 한 명을 사면하여 주는 관습이 있었다. 빌라도의 생각에 군중들이 흉악한 범죄자 바라바와 예수를 사면하도록 선택시킨다면 사람들은 바라바를 선택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군중은 예수를 선택하였다. 군중들이 소요를 일으킬까 두려워 조용히 예수를 군중에게 보내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는 군중 앞에서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와 무관하다." (마태 27-24)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현대에 와서도 모든 책임에서 벗어 날 때 사용하게 된다. 손을 씻기 전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가 "꿈자리가 좋지 않으니 이 의로운 자를 사형에 처하는 일에 협력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간청하였다. 하지만 군중이 소리치고 함성을 지르니 빌라도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을 가져오게 하여 군중 앞에서 손을 씻는 일이 전부였다. 유태인들은 이 예수의 피가 자기의 이름과 후손들에게 다시 떨어질 것의 결과를 예상치 못하고 그 피의 결과를 수용하였다. 빌라도의 이름도 후세에 전해질 때는 예수를 고통스럽게 한 자로 기록으로 남겨진다.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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