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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1 “신체가 바로 권력이다” 낭만은 연인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하거나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낭만은 우리의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 속에서도 존재한다. 거리에서 사온 붕어빵이나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도 낭만이다. 1. 몸을 통한 낭만 그런데 이 세계에서
느끼는 모든 낭만은 바로 우리의 몸을 통해서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존재하고 공간, 대상 혹은 도구를 맡아 다룬다. 이러한 일은 원초적인 기능에 의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기능을 독점해서 수행하는 장소가 바로 몸이다.
Nice ‘n Easy, John Currin, 1999 이 원초적인 기능을 밝히고 이 몸을 기술하는 작업은 단순히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간을 이해하고, 국가를 이해하고,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는데 필수요건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심지어 “신체가 바로 권력이다”라고 몸이 지니는 의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신체와 국가 또는 민족에 대한 비교 연구가 있어왔다. 소크라테스 시대에는 이 연구가 전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신체는 그 나라의 모든 사회 문화, 정치생활과 윤리 도덕 체계를 보여주는 것이 되었고, 의식에 쓰이는 특수한 도구처럼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수많은 고대 국가의 지도자들은 신체 가운데서도
머리 부분에 비유돼 ‘수령’으로 불렀다. 원시 시대 씨족이나 일부 민족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우두머리’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곁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오른팔’과 ‘왼팔’로 불렀다. 2. “몸은 체화된 의식이다” 그런데, 정신을 절대화시키면 정신의 능력에 의해 이론적으로 구성된 정신 내적인 세계가 우리가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살아가는 바깥의 실제 세계보다 더 참다운 세계가 된다. 이런 정신 위주의 세계관 내지는 인간관이 오랫동안 우리들의 생각을 지배해 왔었다. 구체적인 세계 속에서 거추장스러운 몸을 지니고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이며, 또 급기야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몸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Untitled #92, Cindy
Sherman, 1981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다른 모든 사물들이나 동식물들과는 달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정신을 토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이런 희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주어진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정면으로 삶을 돌파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길이라 여겼다.
The Nude Maja, 프란시스코 고야, 1800년경 이를 위해 메를로-퐁티는 그동안 철학적인 탐구 영역으로 정식화되지 못한 영역, 즉 바로 지각 세계에 관심을 가진다. 그는 우리가 온 몸으로 또는 몸의 각 기관들로써 만나고 체험하는 구체적인 세계를 가장 중요한 철학 탐구의 영역으로 정식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생물종으로서의 독특한 기능과 그에 따라 형성되는 온갖 일들이 발생하는 원천을 밝히고자 했다. 메를로-퐁티가 생각하는 원천은 인간이 '정신-사유-반성'의 기능이 '솟구쳐 오르기' 전, 즉 이러한 기능이 아직 발현되지 않고 몸 속에 '녹아 있을' 바로 그때의 몸이다.
Among Friends, Nan Goldin, 1992 이 몸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온갖 정신적 활동이 말 그대로 '녹아 있는' 혹은 '배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코 단순한 기계적인 물질이 아니다. 이때 몸은 방식만 다를 뿐 흔히 우리가 말하는 정신적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몸이다. 즉,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원래 인간의 몸에는 정신적인 힘 또는 의식적인 힘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몸을 메를로-퐁티는 '체화된 의식'(conscience incarn e)이라고 지칭했다. 아주 어린 시절 자전거
타는 것을 한번 배운 후, 자전거 탈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을 몸으로 기억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자동차 운전을 오래 한 사람들은 심지어 눈으로 보지 않은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을 기가 막히게 모면해 낸 경험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몸이 '생각하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자전거를 탈 때, 수영을 할 때, 악기를 연주할 때 등 우리는 매순간 '어떻게 해야지' 하고 반성해서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한 내용을 몸에다 명령하고 주입해서 동작하도록 하지 않는다. 몸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주어진 환경 세계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우리 몸이 움직인다. 이것이 몸이 생각을 한 것이다. 이같이 정신이 몸에서 융기(隆起)하기 전에 몸이 하는 기능을 메를로-퐁티는 몸의 원초적 기능이라고 했다.
Water Serpents 1, Gustav Klimt , 1904-1907 3. “세계는 거대한 몸이다” “세계는 무진장하다. ‘세계가 있다’ 혹은 오히려 ‘그 세계가 있다’ 라는 명제는 일생 동안 나에게 던져져 있다. 나는 이 명제를 결코 완전히 해명할 수 없다.” – 메를로-퐁티 세계는 지식에 의해 소유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 혹은 이미 거기에 있는 것으로 체험된다. 메를로-퐁티는 이미 존재하는 유일한 로고스는 세계 자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메를로-퐁티는 이토록 세계를 숭배하는 것일까? 메를로-퐁티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을 포함한 세계를 바라본다. 그가 보는 세계는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또 하나의 거대한 몸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가 보는 세계는 몸의 구성 체계와 대응한 구성 체계를 갖는다.
Reclining Nude,
Amerdeo Modigliani, 1917 그는 몸을 물리적 질서, 생명적 질서, 인간적 질서(사회-문화적 질서) 등 세 가지 질서로 나누고, 이 세 가지 질서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하나의 몸을 이룬다고 했다. 즉 이미 이 세 가지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고 그런 뒤에 이 통일된 전체를 바탕으로 각각의 질서가 의미있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세 가지 질서를 갖춘 몸이 세계 속에 있어 세계의 핵심 부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세계와 거리를 가지면서 세계를 향해 가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 쪽에서 보면, 세계가 몸을 포섭해서 몸을 자신의 구성 원리로 삼으면서 동시에 몸을 놓쳐 다시 몸을 포섭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
Primacy of Matter over Thought, Man Ray, 1929 4. "몸이 세계에 거주한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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