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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순서에 대한 발견 (1)



한 해를 보내는 이 맘 때쯤이면 사람들은 많은 생각들을 한다. 올 한 해 나는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가? 나는 2015년보다 더 행복한 한 해를 보냈는가?


이런 생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세상에는 생각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압축한 것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지각들과 정서들로 이루어진 구성물로 하나의 감각 존재이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 스스로 존재한다.

감각들, 지각들, 정서들은 스스로에 의해 가치를 지니며 모든 체험을 넘어서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은 인간의 존재와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다.


누구의 감각도 아닌 감각이 예술 속에 표현된다. 그래서 우리는 감각은 의미와 같이 전개체적이고 익명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익명적인 감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감각은 항상 한 개체에게서 나오고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감각은 경험의 수준에서 한 개체가 신체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생명체는 스스로의 내부에서 현실화의 에너지를 갖고 스스로를 개체화한다. 그래서 감각경험은 개체화의 차원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감각이란 우리의 몸을 넘어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각이 제시하는 것은 다른 개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개체를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능동적, 수동적으로 서로 상호작용하며 구성된 세계의 살(le chair)을 경험하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와 같은 현상학자들의 말처럼, 감각은 세상의 존재 그 자체다.


나는 감각되어지고 동시에 무엇인가가 나의 감각 속에서 일어난다. 감각에 의해 우리는 세계의 신체와 나의 신체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의 존재함은 곧 감각함이자 감각됨이다.

이렇게 감각론의 단초를 제시했던 메를로 퐁티에게서 더 나아가, 들뢰즈는 감각을 발생적인 차원에서 논의했다. 그리고 유기적인 신체만이 아니라 무기적 신체를 상정했다.

세잔은 풍경에 다다르려면 가능한 한 모든 시간적, 공간적, 객관적인 규정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들뢰즈는 여기서, “우리는 세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생성되고 있다. 모든 것은 비전이며 생성이다. 우리는 우주가 되어간다. 철학, 예술이 표현하는 것은 이 전개체적인 생성의 과정 혹은 세계가 발생하는 과정이다. 한 개체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감각을 통해 우리는 타인이, 동물이, 그리고 식물이 되어간다고 했다.




 1. 카오스로부터 솟아나는 한 줄기 공기



Mont Sainte Victoire, Paul Cezanne, 1902.jpg


Mont Sainte Victoire, Paul Cezanne, 1902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와 20세기 초반 입체파를 연결하는 다리를 형성한 후기 인상파의 세잔(Paul Cézanne, 1839–1906)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마티스(Matisse)와 피사로(Picasso)는 세잔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Cézanne is the father of us all)’라고 표현했다.


세잔은 반복적이고 실험적인 붓터치와 색깔을 사용하여 사물을 선으로서가 아니라 면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고 하면서 3차원적 입체의 기하학적 면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잔은 자신의 작품속 지평선은 숨(breath)을 창조하고 직각선으로 그 숨의 깊이(depth)가 표현됐다고 했다.


무엇보다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게 한 이유는, 다각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하나의 그림을 하나의 예술로 창출했다는 점이다.




Still Life with Plaster Cupid, Paul Cezanne,1895.jpg


Still Life with Plaster Cupid, Paul Cezanne,1895




세잔 이전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체계화된 원근법을 통해 화가의 눈을 한 점에 고정시키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그리려는 대상의 상을 카메라로 보는 것처럼 투영하여 화면에 맺힌 상을 그렸다. , 하나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그것을 화면에 담아냈다.

그러나, 세잔은 작가의 다양한 각도의 눈으로 세상을 그려냄으로써 그림을 피상체로부터 분리하여 그 자체로 예술이 되게 했다.



Basket of Apples, Paul Cezanne,1895.jpg


Basket of Apples, Paul Cezanne,1895




또한 르네상스 화가들은 그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면서 자신들의 드로잉을 그 색깔 아래에 숨겼다. 당시 인상주의파 화가들도 두껍고 짧은 붓으로 빛이 어른거리는 듯한 색깔들을 활용하여 윤곽선이 보이지 않게 그렸다.


그러나, 세잔은 오히려 눈에 잘 띄게 근경에다가 그의 스케치 라인들이 투영되어 보이도록 하거나, 거칠게 색칠된 많은 부분들을 마치 완성하지 않은 것처럼 그대로 남겨놓기도 했다.



Mont Sainte Victoire, Paul Cezanne,1903.jpg


Mont Sainte Victoire, Paul Cezanne,1903



특히, 그는 칼라 사용에 있어서, 푸른색(blue)은 공기를 창조하고, 흰노란색과 빨간색은 빛의 놀이를 투영한다고 말하면서, 남부 프랑스의 따스하고 햇살좋은 날씨를 이런 칼라들을 사용하여 표현해 냈다.

그의 대담한 색채는 젊은 작가들을 매료시켰고, 추상주의(abstraction)를 향한 길을 열었다



Mont Sainte Victoire, Paul Cezanne, 1904.jpg


Mont Sainte Victoire, Paul Cezanne, 1904

 


1887년작Mount Sainte-Victoire with a Large Pine 색깔들의 사각형 블록을 사용하면서 푸른색 속에 들판이나 나무 줄기와 같이 뚜렷한 윤곽선 형태를 드러냈고, 그 나무 가지 윤곽선들이 뒤에 있는 산 윤곽선을 통해서 마치 메아리가 울리는 것처럼 표현해냈다.




Mount Sainte-Victoire with a Large Pine, Paul Cezanne,1887.jpg


Mount Sainte-Victoire with a Large Pine, Paul Cezanne,1887



1910년 런던 전시회 ’Manet and the Post-Impressionists에서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로저 프라이(Roger Fry,1866-1934)는 세잔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물체들의 복잡함을 기하학적 단순함으로 변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였줬다라고 했다.

이렇게 세잔은 끊임없이 색과 형태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였고, 그것을 그의 고향 주변을 그린 풍경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구조적으로 평행한 붓터치로 작품 속에 향기를 느끼게 하는 세잔의 풍경은 모더니즘(Modernism)으로의 약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0세기 회화의 참다운 발견자로 칭송되고 있으며, 피카소를 중심으로 하는 큐비즘(cubisme)은 세잔 예술의 직접적인 전개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작품은 세잔의 Farm in Normandy(1882)이다.



Farm in Normandy,Summer, Paul Cezanne,1882.jpg


Farm in Normandy, Summer, Paul Cezanne,1882



이것은 세잔의 패드론, Vict wor Choquet(1821-91)의 농장을 그린 작품으로, 세잔은 처음 이 그림을 완성한 후 여러번 수정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림 앞쪽 두개의 나무 가지를 보면서 전문가들은 세잔이 이 그림을 결국 덜 완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잔은 때때로 의도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이렇게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도록 그렸다.      


세잔이 노르망디 농장에서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명상을 통해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무()가 되는 순간, 우리는 숨쉬는 현재의 나(being)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처럼 이 그림은 세잔의 감각을 통해 그 순간 그 풍경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보여준다.   

세잔이 그의 생을 통해 수백번을 그린 생 빅투아르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세잔 자신이자, 그리고 후기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가 말한 것처럼 세잔의 의식이었다.


빛을 재현한 영광스런 눈의 소유자 모네의 그림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로 표현할 수 있다면, 세잔은 자신의 몸의 직관을 통해 빛을 묘사한 작가다. 그는 빛에 의해 드러나는 사물의 겉모습을 넘어 그 본질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세잔에게 있어서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었다.  

들뢰즈는 작가는 순백의 화폭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캔버스는 이미 사전에 결정된 기존의 구태의연함들로 너무도 빼곡이 뒤덮여 있어서 우선은 그것을 지우고 청산하고 눌러서 두께를 줄이고 심지어는 조각조각 해체시켜야만 비로소 우리에게 비전을 가져다줄 카오스로부터 솟아나는 한 줄기 공기를 흐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즉 화가는 판에 박힌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판에 박힌 것을 극복하고자 한 화가의 노력을 세잔이 남긴 수많은 습작들 속에서 읽어냈다.


2. 감각은 동적인 것이다

   1) 리듬과 파동위의 감각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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