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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와인과 영국과의 관계



보르도와인은 중세부터 지속되어 오는 영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빼고는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영국의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1066년의 영국의 정복자 윌리엄은 노르망디공국의 계승자 였지요. 쉽게 말하면 프랑스 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엔 영국이니 프랑스니 하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잉글란드에는 앵글족, 색슨족 등의 원주민이 있었고 웨일즈와 스콧틀란드에는 켈트족의 원주민이 있었죠.


그런데 이 노르망디지방에 살던 원주민은 원래가 프랑스토종이라고 하기 보다는 북쪽, 즉 바이킹의 후예들의 피가 많이 섞인 키큰 금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랑스 원주민이라고 할수 있는 골(Gall)족은  머리가 갈색의 키작은 사람들, 지금도 프랑스의 중부지방엔 키 큰 금발보다는 이렇게 키작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현대의 잣대로 중세시대를 영국이니 프랑스니 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는 얘기입니다.

 

보르도와인의 역사는 보통 천년이라고 하는데 노르망디공의 영국정복과 같은 시기부터 발전했다고 보면 됩니다. 이 시기의 보르도지방은 가스콩 (Gascon) 이라 불렸습니다. 영주는 Duc de Gascon 이라 불렸죠. 이 가스콩지역엔 현재의 프랑스 스페인국경지대인 피레네 산악지대와 보르도와 포아티에가 있는 아키텐지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가스콩지역의 듀크에겐 Alienor d’Aquitaine, 영어로는Elinor of Aquitaine 이라고 불리는 대단한 딸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얘기는 이 딸에서 시작됩니다.

 

이 알리에노르라는 여인은 대단히 똑똑하고 대담한 여자였던것 같습니다.   남쪽나라에서 자란 그녀는 시와 문학, 라틴어와 음악, 거기다 승마와 사냥까지 즐기는 아주 개방적인  영 레이디 였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결혼이 그랬듯, 그녀의 아버지 , Duc de Gascon 10살도 되지 않은 딸을 미래의 프랑스 왕 앙리 7세와 약혼을 시킵니다. 이 알리에노르가 14세가 되던 해, 이 막강한 공국을 계승할 예정이었던 오빠가 죽어 버리고 얼마 가지않아 곧 그 아버지도 사망ㅡ 그리하여 아키텐이란 거대한 영토를 지참금으로해서 알리에노르는 파리에 있는 프랑스 왕실로 시집을 갑니다.


그때 시인들과 악사들을 대량으로 이끌고 디자이너까지 끌고가서 프랑스왕실의   어두컴컴한 실내장식을 고치기도 하고  가슴이 패이는 대담한 옷도 입고 해서 신앙심이니 십자군원정이니 해서 경건한 분위기를 생각하던 일부 귀족들의 눈에 꼴 사납게 보인건 사실입니다. 한편 알리에노르 또한 이런 북쪽의 어두운 분위기가 재미 없었겠죠.

 

일설에는 프랑스 왕 앙리 7세가  승려처럼 재미없는 사람, 섹시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때는 십자군 원정시대, 남편 앙리7세는 제2차 십자군 원정길에 오르고 알리에노르는 그 남편을 따라 갔는데 그것도 전쟁에 참여하는 무사들 뿐만 아니고 지휘관들의 부인과 가족등을 대동원해서 전쟁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행군이 길고, 늦어지는 건 뻔 하지요. 게다가 전투기획을 잘못해서 연달아 전투에 패배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이 알리에노르가 원정에 참가한 자신의 삼촌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 남편의 행군방향을 따르지 않고 삼촌의 행군방향에 동행할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평론가들의 의견이 약간 갈리는 부분은 있지만, 이미 알리에노르가 남편한테 정이 없어져서 헤어질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데는 견해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는 이혼이라는 것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혼이란 말이 없고, 혼인관계의 해소는 교회의 « 결혼 무효 » 판정으로 성립되었습니다.


당시 결혼무효 소송을 청구하는 것은 여자쪽에선 전무한 일. 그런데 알리에노르는 당당하게 « 근친결혼 » 이란 명목으로 무효선언을 청구하고 그것을 또 인정 받았습니다.

남편과의 사이는  5촌정도 되었던 것같습니다만, 당시의 귀족사회에서는 5촌정도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St Andrée Cathedrale.JPG


앙리 7세와의 사이에 딸 둘을 두고 자원해서 이혼한 알리에노르는,  몇달도 채 기다리지 않고 미래의 영국왕 헨리2세가 될 노르망디공의 장남한테  칙사를 보내어 결혼을 요청합니다. 그녀의 나이는 이때 30세 정도, 미래의 남편감은 만 19세의, 아버지와 함께 영토확장을 위해 전쟁터를 다니는 육체파 미남청년이었죠.

그녀는 그 전 전해에 아버지와 동행한 이 청년을 보고 이미 은근히 눈독을 들인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젊은 헨리도 야심있는 청년이라, 프랑스왕과 이혼한 이 여자가 지참금으로 갖고 올 막강한 영토를 생각하고 언뜻 수락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는 한 번 준 지참금도 이혼시에는 도로 뺐어와서 재혼한 남편한테 줄수 있덨던 모양입니다. 여자의 입장에선 신나는 제도로군요.^^


Cathedral St Andrée.JPG


이 두사람은 1152년 보르도의 대성당 Cathedrale St Andre  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보르도와인은 이 시기를 계기로 대단한 도약의 발판을 구축 했습니다.

이미 1100년 경부터 카톨릭교구의 재산으로서 경작면적을 넓혀나가고평화시의 귀족의 음료로서, 또 전쟁시의 필수품으로서 수요가 증대하고 있던 보르도와인은 보르도지역이 영국령, 아니 노르망디공국, 앙쥬공국의 영토가 되면서부터 독점적인 위치를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군원정 및, 프랑스내의 정치와 관련한 여러가지 전쟁에 돈이 필요했던 영국왕은 보르도와인에 파격적인 우대권을 주면서, 대신 관세를 징수합니다. 이 관세를 오크통에 든 와인으로 몇십톤 몇백톤씩 받았는데,당시 이 관세를 coutumes 이라 불렀습니다. 불어로 « 관행 » 이란 뜻입니다. 현재 영어의 customs 란 단어는 아직도 관세를 의미하지요. 현대의 불어에서는 관세는 Douane 이라고 씁니다.


이 발랄한 알리에노르 여왕이 프랑스왕과 이혼하지 않고, 영국왕이 될 남자와 재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보르도와인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

 

그러나 보르도와 영국과의 밀월관계는 1337년경에 영국왕과 프랑스왕 사이에 백년전쟁이 터지면서 파란의 역사를 겪게 됩니다. 잠시 평화협정을 맺는 동안은 와인생산도 충실하고, 페스트등의 질병이나 전쟁이 재발할 경우에는 농토가 피폐하고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꾸준히 이쪽저쪽 눈치를 봐 가면서 와인판매에 유리한 쪽으로 편을 들고 농토를 꾸준히 일구어 오늘의 번영에 이러렀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시대, 즉 양국의 중세 역사는 너무나 얼키고 설켜 있어서 간단히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국가의 개념이 없고 영토확장에, 귀족간의 패권겨루기에 여념이 없던 시대이지요. 그러나 시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고 그 발전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인물들이 있어서  먼 미래의 우리가 읽으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존재합니다.


오늘의 Brexit 는 미래의 후손들이 어떤 감흥을 가지고 이 장면을 읽어줄까요 ?



신 옥전

주소 : 4 rue de Bouliac 33100 Bordeaux

Mail : okjeonshin@gmail.com

Tel : 06-8266 7396

 

약력

2002년 보르도대학 양조학부의 DUAD테이스팅 과정을 거쳐,

Diplôme Universitaire d’Aptitude de Dégustation 학위취득.

 

1998년에서 2003년까지 월간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 의 프랑스 통신원으로 프랑스생활와인기사등을 정기적으로 기고.

2012년부터 현재까지 보르도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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