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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영국에 살면서 아이들과 가장 많이 본 만화영화가 있다면 검정 고무신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서재에만 오면 의례히 검정 고무신 한두 편 보는 것을 국민의례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정도이다. 외국에 살면서 조국의 감흥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검정고무신을 보는 아이들의 처음 반응은 재미없다 였다.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서 추억을 가지고 있던 어른들은 옛 이야기를 회상할 수 있다지만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동질의 생각을 입힌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문화에 관련된 것이라면 경험했을 때에야 추억이 되고 재미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지루해 하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어떠하든 검정고무신이 최고의 재미있는 영상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환경을 만들어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강압적인 환경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조국을 잃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한 번은 텔레비전에서 축구가 방영되었다. 아이가 달려오면서 ‘아빠 우리나라가 이겼어요.’ 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봤더니 잉글랜드였다. 남의 나라가 우리나라가 되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들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영국 아이들과 섞여서 생활하다 보니 자신이 마치 본질적으로 영국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희미해져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애를 쓴다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만은 아니다. 때로는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로 인하여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끈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본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의외로 그들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에 기분 나쁠 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한국 젊은이들에게서 애국심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세계화 되는 사고력 때문일 것이다. 이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애국심이라는 강요가 아니라 기성세대들이 자랑스러운 조국을 만들어가야 할 책임의 문제이다. 이제는 애국심 하나만으로 강요해서 조국과 연결된 끈을 이어갈 수 없는 시대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후에 여행객들의 배낭에 대한민국 태극기가 여러 형태의 모양으로 부착되어 있음을 보았다. 국가가 자랑스러울 때는 자신이 조국 대한민국 국민임을 알리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다가 국가적으로 감추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달았던 태극기를 떼어버리는 것은 그 한 사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자랑스러운 조국을 만들어가지 못한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임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자랑스러운 조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서 있다. 어느 나라건 하루아침에 공산품처럼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는 인고의 세월동안 피를 흘리고, 눈물 흘린 결과로 맺혀지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조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보면 잔인한 것이다. 피를 먹어야 마셔야 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인신제사를 받고 나서야 힘겹게 피워내는 꽃이다. 그 시대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결과에만 만족할 뿐이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 나라 국민임을 덩달아 자랑하게 되는 것이요,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의리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 유신정권시대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으로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세계화 되는 시대에는 그러한 단순함으로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없게 된다. 한 나라의 국가관은 세계관과 좋은 측면에서 혼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것이 최고이며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을 때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중심에 있다는 것을 굳게 믿을 수 있었다. 세계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현장에 나가보면 우리나라의 위치는 지극히 작을 뿐 아니라 우리가 중심이 아니라 변방의 한 모퉁이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게 된다. 내가 자라고 성장하고 나를 키워준 뿌리를 생각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눈부시게 발전하는 세계사 속에서 간혹 뿌리를 망각하게 한다. 현대인들에게 그 나라 국민임을 묶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국민 이라는 이름만으로 애국심을 강조할 수 있었는데 현대는 그러하지 못하다. 그 나라 국민임을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운동경기로 알 수 있게 된다. 온 국민의 밤잠을 설쳐가며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스포츠 하나뿐이라는 것이 때론 서글퍼진다. 모든 문화권이 민족주의를 배격하는 시대이다.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 다른 민족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은 대부분이 민족주의자들이다.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사속에 자기 민족만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민족주의자들은 자기 민족만이 탁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적지 않은 위협을 느끼게 된다. 지금 시대는 다문화, 다민족이 혼합하여 서로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하면서 자기 민족에 대한 애국심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특히 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으로 투철한 나라는 아마도 유태인일 것이다. 수천 년간 국가를 잃었을지라도 세계에 흩어져서 온갖 불이익을 온몸으로 당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뿌리가 유태인임을 스스로 천명했다. 독일 나치군은 600만 명의 대 학살을 자행할 때에도 그들은 당당하게 죽음의 길을 회피하지 않았다. 세계 민족사 중에 그들만큼 고난과 고통을 받은 민족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은 36년간의 일제강점기의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데 그들은 수천 년간을 그렇게 학대를 받아 왔다. 웬만한 민족 같았으면 민족적 씨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흔적도 없이 흩어졌을 것이다. 세계사에서 유태민족의 위대함을 연구한 논문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핵심을 놓치고 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원심력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로부터 온 율법 때문이다. 세계사 속에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민족정신은 그 어느 민족도 파괴할 수 없게 된다. 간혹 학자들은 유대인들을 본 받아야 한다고 이론적인 설파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정신을 본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또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가 유태인이 될 수 없고, 그들 또한 우리 민족이 상호간에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우리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살려 전수하면 된다. 이는 국가의 몫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몫이기도 하다. 자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좋지 않은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정말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들이 많다. 그러할 때 어른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여겨진다. 함께 부끄러워하며 돌을 던진다면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조국을 사랑하는 애사심은 사라질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으로 나라가 어려운 것이 아니며, 또한 대통령 한 사람만 잘 한다고 해서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슈퍼맨이 아니라 평민들과 성정이 같은 사람일 뿐이다. 다만 일정 기간 국민으로부터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통수권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른에게 있다면 그 마음은 당연 아이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든 전수되어질 것이다. 어느 한 날 아이들에게 국가를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해서 될 일도 아니다. 가정이든 사회든 속한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국가를 사랑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돌을 던지기 보다는 우리가 함께 위대한 조국을 건설해야 할 사명자임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시,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할 몫이 어른들에게 있지 않나 싶다. 적어도 자기 민족만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적 민족주의자가 되기보다는 타민족을 존중하면서 세계화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세계화된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민족정신을 심어주는 것은 국가의 몫과 개인의 몫이 함께 나란히 걸어가야 할 양발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은 한발로 설 수 없는 양발로 함께 걸어야 하는 우리들의 검정고무신과 같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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