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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7.06.25 23:28
태양처럼 빛나다 - 피카소 3
조회 수 2182 추천 수 0 댓글 0
태양처럼
빛나다 피카소
3 마리나 피카소는 피카소가 첫번째 부인인 올가 호흘로바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인 파울로의 딸이다. 사실 세계 미술 시장을 들썩이게 하면서 그녀가 할아버지의 작품을 대거 팔려고 하는 데는 그녀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마리나의 아버지 파울로는 할아버지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돈을 구걸하면서 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뒤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할아버지 피카소는 손녀인 그녀와 오빠인 파블리토에게 무관심했다. 피카소가 숨졌을 때 피카소의 두번째 부인인 자클린 로크는 파블리토가 피카소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막았다. 이에 파블리토는 장례식에 결국 참석하지 못했고, 그 후 자살을 하고 말았다. 마리나도 오빠의 죽음 등으로 15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유산으로 받은 할아버지의 작품들은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 때문에 한 때 작품을 모두 벽 쪽으로 돌려놓기도 했었다. 2013년 그녀는 소더비 경매에서
'회색 옷을 입고 앉아있는
여인'을 680만달러(약 75억원)에 팔았다. 당시 그녀는 이것이
자선 사업 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기에 더 비싼 가격으로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기대에 못 미쳐 실망했다고 하면서, 그녀는 "다음부터는 경매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인 루트로 작품을 팔겠다"고 말했다.
즉 작품들을 경매나 공개 미술 시장등을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필요에 따라 내다 팔겠다는 것이다. 피카소 작품에 대한 전문 사이트를 운영하는 미국 텍사스의 샘 휴스턴 스테이트 대학의 엔리케 말렌 교수는 “피카소의 작품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피카소 작품 판매에 속도를 내는 이는 마리나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첫번 째로 팔 작품으로 피카소의 1935년작 ‘라 파밀리’(가족)를 꼽았다. 그녀는 “나는 대가족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나의 가족은 가족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본 적이 매우 드물었고, 나에게 할아버지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Pablo Picasso - La
Famille Soler, 1903 미술 시장은 가장 영향력있는
몇몇의 작품에도 가격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정도로 일종의 도박같은 측면이 있다. 그래서 사실 좋은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피카소 작품의 전반적인 가격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걱정과 우려가 일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경우로, 2012년 앤디 워홀 재단이
기부 활동 수익금을 창출하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던 워홀 유작 2만 여점을 경매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미술 시장은 이런 대량 공급에 따른 가격의 대폭 하락을 걱정했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4. 태양처럼 빛나다 별빛을 가리는 태양처럼 피카소라는 인물 자체가 너무 강렬하다. 그의 압도적인 천재성은 그 밖에 모든 것, 심지어 그의 작품까지 빛바래게 만들 정도로 찬란했다.
Pablo Picasso 미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피카소의 다부진 몸매와 동물적 감각으로 빛나는 눈동자, 캔버스 앞에서의 신들린 몸놀림 등을 보면 그가 천재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말그대로 피카소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현재의 ‘아이돌’처럼,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는 말보다 먼저 그림을 배웠고, 그리고 처음 내 뱉은 말조차 연필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그는 스스로 자신이 아홉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데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과장이 아닌 사실이었다. 화가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화풍을 얻기 위한 고독한 과정을 경험한다. 그러나 피카소에게는 이런 습작의 시기가 없어 보인다.
Study of a Torso, Pablo
Picasso, 1895 (피카소가 만 14세였을 때 그린 작품) 그는 그 자신의 말처럼 아홉 살에 이미 대가의 솜씨로 그림을 그렸다. 바르셀로나 예술학교 시절에 남들이 한달 정도 준비하는 과제를 단 하루 만에 완성하여 1등을 차지한 적도 있다. 입학 시험을 봤을 때도 남들이 일주일 걸리는 과제를 몇 시간 만에 완수해, 당시 교사를 큰 충격에 빠뜨렸고, 그는 월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미술 학교에서도, 그리고 2년 후 입학한 마드리드 왕립 아카데미 미술학부에서도
피카소는 배울 것이 거의 없다고 느꼈다. 사실 피카소의 아버지가 그를 바르셀로나 예술학교와 마드리드 예술학교에 보내서 미술을 배우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그림 연습을 하는 게 더 나겠다고 결심하고 결국 집을 나왔다.
Matador, Pablo Picasso,1897 (피카소가 만 16세일 때 그린 작품)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의 데생 솜씨에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 호세 피카소(1838-1913)는 경악한 나머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피카소가 자신이 시킨 새에 다리 그려넣기를 해온 것을 보고 “니가 화가가 되어 나의 꿈을 대신 이루어다오”라고 피카소의 아버지는 말했다. 20살이 되기 전에 피카소의 회화 실력은 고전주의를 이미 자신의 스타일로 마스터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스로 12살 때 라파엘로만큼 그렸다고 말했던 그는 한편으로는 평생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그림을 부러워했었다.
Young man praying (detail), Pablo Picasso,1898 타의 추종의 불허하는 천재적인 그였지만, 그의 입체파 그림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림인가? 특히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대했던 그의 아버지조차 결국 죽을 때까지 그의 입체파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반목하다 죽었다고 한다.
Factory, Horta de Ebbo, Pablo Picasso, 1909 5. 불을 뿜기 위해 석유를 들이마시는 광대처럼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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