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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7.08.14 22:44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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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다 인류사에 주어진 큰 울타리는 시간을 느끼고, 시간을 알고, 주어진 시간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을 딛고 살 수 있는 시간의 길이는 다를 수 있으나 주어진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무한대의 시간 같으나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내 인생이 존경하는 선생님은 월, 화, 수, 목, 금, 금, 금........처럼 일주일을 사용하신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을 초월해서 살 수 없다.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삶을 짓누르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언제나 시간에 쫓기게 된다. 아침 출근 시간, 주어진 과업을 완성해야 할 시간에 쫓기는 것은 낯설지 않다. 과거에는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일주일, 일 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과거의 시간도 24시간이었고, 현대 문명의 하루 시간도 24시간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현대와 과거의 시간의 길이는 다르게 느껴진다. 옛 어른들의 경험적 증언은 한 달이 하루 지나는 것보다 짧다 하였다. 젊었을 때는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말을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물어봐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한다. 인간은 현실에 살고 있지만 실상은 현실에 거할 수 없다.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기 때문일 뿐 아니라 인간은 시간을 잡아 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의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 과정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들어 있게 된다. 밥숟가락을 듦과 동시에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은 과거와 밀착하여 맞물려 있게 된다. 과거로 흘러간 시간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에 있었던 사건들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현실의 세계와 미래의 세계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조절할 수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현실은 마치 바늘 끝에 서 있는 것과도 같다. 시간의 최소 단위인 일초도 현실에 잡아 둘 수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활용할 뿐이다. 그러면서 현실에 주어진 시간은 즉시로 과거가 된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활용한 후에 역사로 남겨지게 된다. 그래서 개인이든 국가적이든 역사란 인간이 사용한 시간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은 마치 콩나물시루에 뿌려지는 물과 같다. 날마다 물을 주지만 물은 남아 있지 않다. 뿌려지는 순간에 아래로 빠져 버리게 된다. 그럴지라도 콩나물은 그 흐르는 물을 공급받아 자란다. 인간이 몸담은 시간이라는 물의 흐름도 그와 같다. 일초의 시간도 현실에 잡아 둘 수 없지만 인간은 그 시간이 있기 때문에 성장하게 되고 더 깊은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였느냐에 따라서 그가 누릴 수 있는 지경은 넓어지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면 밟아야 할 땅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30분만 일찍 투자를 하면 여유롭게 출근하고, 여유롭게 차를 탈 수 있는데 아침시간의 30분을 다스릴 수 없어서 늘 허덕이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리도 채 말리기도 전에, 화장도 끝내기도 전에 달려야 하고, 그러다 보니 몸은 와 있는데 마음과 정신은 혼미한 가운데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시간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데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아침 시간과 저녁시간은 더더욱 다르게 느껴진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은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은 짧은 시간은 귀중하지만 저녁 시간에는 한 시간이라 할지라도 큰 지장이 없게 된다.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과거를 끌어 오는 힘이요, 지혜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시간을 조절하여 다스린 사람이다. 시간을 자기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시간은 현실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과거를 끌어와서 그 짧은 현실 세계를 넓게 사용한 사람들이다. 아이들에게 같은 금액으로 용돈을 주면 어떤 아이는 순간에 그 돈이 안개와 같이 사라진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그것을 규모 있게 사용한다. 큰돈이 아니고 작은 돈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필요한 만큼 여유를 누리기도 하고, 늘 쪼들리는 아이들이 있다. 인류사에 언제나 돈은 부족했다. 그것은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같이 느껴진다. 마치 돈은 시간과도 같다.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금액, 그것이 작아도 정해진 금액 안에서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작은 용돈이지만 그것을 절약하여서 꼭 필요한 것을 사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그것을 아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일에 귀한 선물하기도 한다. 물질이 늘 쪼들리는 것처럼 시간도 늘 쪼들리게 되는 것을 개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는 물질과 주어진 시간의 상태로는 해결 될 수 없다. 물질을 사용하고, 시간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 쪼들림에서 자유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조물주로부터 받은 신의 선물이다.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그 시간을 허비하여 탕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되며, 또 어떤 이는 그것을 규모 있게 사용하여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된다. 자기 인생 홀로 살기에 버거운 세상이라 한탄하지 않는다. 나를 희생시켜서라도 세상에 거룩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시간 앞에 당당할 수 없는 동등함을 가지고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현실은 누구에게나 비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거를 끌어 와야 한다. 아니, 과거가 되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활용한 자가 미래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과거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참 많다.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래에 대해 부푼 꿈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현실에 대한 부정적 안목을 가지고 있다. 정치도 그러하고, 경제도 그러하고, 종교도 그러하고,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모든 것이 자기를 향해 등을 돌린다며 반항적 생각을 하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는 시간 앞에 교만한 자요, 흘러가는 시간을 활용할 지혜를 상실한 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통하여 그의 미래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과거가 되는 시간을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통하여 그의 미래를 진단할 수 있게 된다. 결코 인간은 말로써 자신의 선한 삶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간 관리를 통하여 미래를 측정할 수 있다. 잠시 비뚤어진 생각으로 표현된 말로 그의 미래를 판단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다려 주고, 조금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준다면 현실의 삶을 비뚤게 보는 아이들일지라도 자기 인생을 볼 수 있게 된다. 로마의 피사의 사탑(Leaning Tower of Pisa)이 있다. 기울어진 것을 정상이라 한다면 세상의 모든 건물은 피사의 사탑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공공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주어진 시간은 내 임의로 사용할 수 있지만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은 인생이 져야 한다. 피사의 사탑처럼 홀로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켜야 할 공동의 준칙을 따라야 한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그 기준을 관통한 공통분모는 있다. 시간 활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다. 같은 시대에 살면서 역사의 심판을 받는 정치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못 활용한 것에 대한 심판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러하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지만 그것이 모여 역사라는 바다가 되고 인생을 완성해 간다. 시간 앞에 자유할 있는 자는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겸손하게 사용하여 역사에 저장시킨다. 때론 그 역사 속에 묻힌 시간의 흔적을 끄집어내어 자기 삶을 돌이켜 보기도 하고 미지의 세계를 갈 수 있는 등불을 삼기도 한다. 시간은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 된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박심원 문학세계 -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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