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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의 ARTNOW
2017.09.18 01:47
영국 현대 미술시장의 대부, 제임스 메이어(James May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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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대 미술시장의 대부, 제임스 메이어(James Mayor)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세기 초. 전 세계를 호령하던 유럽의 예술가들이 전쟁의 폐허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현대미술의 중심은 뉴욕으로 빠르게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과 역사에 유별스러운 만큼의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영국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미술이 시작된 이후에도 주로 이집트, 페르시아 등 고대 문화부터 르네상스와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문화에 입각한 미술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때문에 영국은 현대미술에 있어서 거의 변방에 가까운 양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영국의 미술은 yBa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80년 대 말이 되어서야 다시 세계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yBa는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yBa를 뉴욕에 소개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데에 찰스 사치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대로, yBa와 영국의 대중들이 이러한 뉴욕의 새로운 미술의 움직임들을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데에는 누가 있었을까? 바로 제임스 메이어(James Mayor)라는 딜러가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단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뉴욕의 새로운 미술들은 제임스 메이어의 메이어 갤러리(Mayor Gallery) 통해 영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메이어 갤러리는 1925년, 제임스 메이어의 부친인 프레드 메이어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프레드가 죽으면서 아들인 제임스 메이어가 갤러리를 이어받아 1973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제임스 메이어가 바톤을 이어받은 이후, 메이어 갤러리는 본격적으로 로이 리히텐슈타인, 아그네스 마틴, 클레스 올덴버그, 싸이 톰블리, 앤디 워홀 등 팝아트와 개념미술, 추상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국 미술을 선도적으로 런던에 소개하며 영국 최고의 갤러리로 자리 매김하기 시작했다. 영국 현대미술 최초의 상업갤러리이며, 현대미술갤러리인 메이어 갤러리. 영국현대미술의 전설과도 같은 제임스 메이어를 만나 살아있는 영국미술의 현주소를 추적해보았다. 제임스 메이어 오지혜(이후 오) : 당신의 배경과 어떻게 갤러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십시요. 제임스 메이어(이후 메이어) :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예술가였습니다. 나의 아버지 역시 그를 따라 예술가가 되고 싶어했지요. 당시 옆집에 살았던 아서 래컴(Arthur Rachham, 영국의 유명한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받은 나의 아버지는 그림을 그만두었고, 대신 예술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나이 21살에 처음 갤러리를 오픈했지요. 그는 전후 아방가르드 미술에 있어서 주요 딜러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의 배경은 매우 예술지향적이었습니다. 1967년 나는 학교를 떠나 프랑스의 유명한 갤러리 중 하나인 Galerie Louise Leiris에서 6개월 간의 인턴을 하기 위해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1968년 가을에는 뉴욕의 Perls Galleries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나는 런던의 Sotheby’s에서 일을 시작했고 뉴욕지점에 파견되면서 다시 뉴욕으로 건너갔습니다. 소더비 뉴욕의 현대미술파트에서 일하고 있을 1972년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갤러리를 이어받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어 갤러리의 창업자인 프레디 메이어 오: 유명 아트 딜러의 아들이라는 것은 당신이 갤러리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명성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을 것 같구요. 메이어 : 물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73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750 파운드를 물려받았고 그 돈으로 아버지의 갤러리를 인수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한 적은 없기 때문에 다른 아트딜러 가족들이 자주 겪을 수 있는 갈등에 직면할 일은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일을 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고 이전 세대와 새로운 세대는 서로의 방식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요. 그런 점에 있어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제 아버지의 업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가길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메이어 갤러리가 지난 92년 동안 해왔던 모든 일들이 잊혀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메이어와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이 처음 영국에 소개된 것도 메이어 갤러리를 통해서였다 오: 그렇다면 당신이 갤러리를 시작할 당시의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메이어 : 제가 3년 넘게 뉴욕에서 일을 하면서 나의 취향은 매우 미국중심적이었습니다. 나는 당시 뉴욕 미술의 슈퍼스타들이었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라우센버그, 로젠퀴스트등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영국에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나의 계획은 영국에서 그 동안 소개된 적이 없지만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뉴욕의 유망한 예술가들의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는 나는 이러한 기본적인 신념을 가지고 주목할 만한 예술가나 예술사조를 추적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메이어와 톰 웨슬만. 톰 웨스만의 영국 첫 개인전이 열린 메이어 갤러리에서의 전시 오프닝 <제임스 메이어와의 인터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칼럼니스트 오지혜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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