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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인들의 얼굴을 보자기로 싸버렸는걸까?
르네 마그리트 3
초현실주의는 1924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브르통의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되어,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들은 주로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담배 파이프 등 우리 생활 속에게 친숙한 대상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기도 했다. 그가 주로 선보였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법이 바로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이다. 
 
르네 마그리트, 장농속의 철학, 1945.jpg
르네 마그리트, 장농속의 철학, 1945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과 같이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하는 ‘이미지의 중첩’, 그리고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한조각의 치즈이다, 1936.jpg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한조각의 치즈이다, 1936

이 작품을 보면, 치즈 한 조각의 그림이 대리석 플레이트에 올려져 있고 유리 뚜껑으로 덮여져 있다. 작품 제목과 달리 그것은 실제 치즈가 아니라, 액자에 그려져 있는 한 조각의 치즈 “그림”이다. 
작품명과 함께 언뜻 보기에는 치즈 한 조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다시 자세히 보면 그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이와 같이 당연히 느끼는 일상성에 파동을 일으켜 의문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실제의 불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뿐만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대표되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과,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의 2차원 공간 간의 모순을 다룬 ‘인간의 조건’ 등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2, 1928.jpg
르네 마그리트, 연인2, 1928

르네는 왜 연인들의 얼굴을 보자기로 싸버렸는걸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코도 입도 가려져 있어서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하면 콩깍지가 씌인다는 말처럼 사랑에 빠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님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일까?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왜 나를 몰라 주는 걸까? 실제로 절망하고 실망하면서 사랑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연인들이 많다. 좌절해 있는 연인들은 사실은 자신의 욕망이 성취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강렬한 이미지로 사랑이라는 것과 연인이라는 의미에 화두를 던지고 있는 르네는 사실 어릴 적 엄마를 잃었다. 
그의 엄마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강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그 익사체가 흰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연인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무섭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떨쳐내고도 싶고 다가가고 싶기도 했던 첫사랑 엄마에 대한 감정과 비슷했을 지도 모른다. 
가정사가 불행한 경우가 많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잃은 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고,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덕분에 르네는 정서가 안정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어릴 적 충격적 경험이 침묵 속에서 발현된 이미지가 바로 이 ‘연인’이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중에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압도적인 면모이다. 
 
르네 마그리트, 사랑스런 원근법, 1935.jpg
르네 마그리트, 사랑스런 원근법, 1935

그러나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이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보다 집중하고 있었을 때에 마그리트는 좀 더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진 작품들을 완성해 냈다.  
 
Rene Magritte, Unexpected Answer, 1933.jpg
Rene Magritte, Unexpected Answer, 1933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며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철학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르네 마그리트, The castle in the pyrenees, 1959.jpg
르네 마그리트, The castle in the pyrenees, 1959

이 작품은 요새 모양의 성이 육중한 바위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위는 해변 위에 무중력 상태로 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바위가 갖는 속성인 무거움, 육중함을 공중부양의 이미지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이후 이것은 일본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jpg
하울의 움직이는 성
 
르네 마그리트, L'invention Collective, 1934.jpg
르네 마그리트, L'invention Collective, 1934

권오강 감독의 영화 ‘돌연변이’의 모티프가 된 이 작품에서는 ‘인어’가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반대로 상체가 물고기이고 하체가 인간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집단적 발명’이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실제로 존재할 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인어의 모습을 우리는 집단적으로 암암리에 하체가 물고기이고 상체가 인간인 모습으로 상상해 왔다. 그러나 르네는 그것이 집단적 인간들이 만든 발명, 상상인 만큼, 또 다른 방식의 상상적 모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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