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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독 / 각본 이창동 주연 윤정희(양미자),이다윗 (종욱) 개봉 : 2010 인간의 삶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삶을 임의로 시작할 능력자가 없으며, 또한 주어진 삶을 스스로 정리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한부적 존재다. 죽을병에 걸려서 시한부적인 인생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그 끝이 있다는 의미이다. 인생의 시작은 곧 끝을 향해 달음질 하는 것이다. 인생은 무한대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난 이후 요람에서부터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인생이지만 삶은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주어진 하늘의 선물이다. 인생의 폭과 넓이 깊이는 그 선물을 어떻게 관리하였는가에 따라 결정 되는 것이다. 죽음은 다른 의미에서 다른 생명의 시작이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지만 그 죽음은 생명을 잇는 거룩한 연결 고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인 것이어서 인간 임의로 파괴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한 소녀의 자살을 그리고 있다. 죽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려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동일하다. 그것은 생명을 상징하는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 물가엔 희망을 상징하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생명의 물에 생명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소녀의 죽음이 한 아이의 눈에 비춰진다. 영화의 마지막도 물은 흐르고 있다. 그 물은 흘러 관객의 마음과 생각에 잠긴다. 인생은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삶임을 말하고 있다. 시는 그의 인생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인생을 압축하여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시를 다룬다는 것 역시 인생이 무엇인가를 논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람들은 시가 어렵다 말들을 한다.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생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어려울 뿐이다. 시를 이해할 뿐 아니라 쓰는 것도 어렵다 한다. 그러나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주인공은 노년의 삶을 시를 배우는데 매진한다. 시를 배운다는 것은 그의 삶이 시인으로서 등단하는 개념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함일 것이다. 시를 배우는 주인공에게 손자가 한 명 있다. 어느 날 생의 끈을 놓고 싶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병원을 다녀오면서 손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의 자살,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어머니의 통곡을 접한다. 그런데 그 여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 손자가 그중 한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 영화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손자로 인하여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소녀를 시로써 위로하고 싶어 했다. 주인공은 선택한다. 영화에서는 감춰져 있지만 소녀를 위한 시를 한편 완성하고 소녀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녀가 완성한 시는 “아네스의 노래” 이다. 아네스는 프랑스 말로 순진한 처녀이다. 손자를 포함하여 여섯 명의 동료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 소녀, 그녀의 생을 주인공 미자는 자신의 죽음을 찍어 쓴 시로써 빚을 갚으려 했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세상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통계를 낼 뿐이다. 물론 눈물은 흘린다. 그 죽음에 대해 보상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상한들, 혹은 한 편의 시로써 그의 영혼을 달랜다 한들, 그를 위로하기 위해 죽음의 강물에 뛰어 들었다 한들 그 죽음에 대한 보상이 될까? 한사람의 인생이란 작은 톱니바퀴와 같다. 그것이 모이고 모여 수백 개, 수십만 개, 수억 만개 지구촌으로 구성된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빠진다 한들 세상은 아무런 멈춤 없이 생의 바퀴를 돌고 있다. 죽음은 당시에 안타까움을 안겨줄 뿐 시간의 굴레 속에 휩싸이면 잊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은 그 자체만으로 존귀한 것인데 생의 덧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슬픔을 슬픔으로, 기쁨을 기쁨으로, 행복을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대 문명은 기계적 인간을 낳는다. 주인공 미자가 죽음을 택한 것은 한 소녀의 죽음의 값을 3천만 원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을 여섯 명의 남학생 부모들이 오백만원씩 지불해야 하는 처절함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생명의 가치를 인간의 화폐 단위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 주인공은 말없는 고민을 하며 시를 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네 인생의 자화상이다. 마음은 거부하는데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들이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상실케 한다. 인간의 삶이 비록 처절할지라도 그것은 생명을 위한 것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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