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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8.05.21 02:57
감자 바구니가 아니라 죽은 아기의 관입니다
조회 수 2649 추천 수 0 댓글 0
유로저널 165 – 감자 바구니가 아니라 죽은 아기의 관입니다
밀레, 만종, 1857-59
밀레는 이 작품을 그렸던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만종’은 내가 옛날의 일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라네. 옛날에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 저녁종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면 그렇게 우리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일손을 멈추게 하고는 삼종기도를 올리게 하셨는지 모르겠어. 그럼 우리는 모자를 손에 꼭 쥐고서 아주 경건하게 고인이 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했지." - 즈느비에브 라캉브로
외, [밀레-창해 출판] 중에서
밀레를 포함해서 바르비종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자연을 동경한 화가들을 ‘바르비종파’ 화가라고 부른다. 그들은 자연의 위대함과
경외감, 그리고 그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을 다루는 위대한 농부들을 그렸다. 이것은 그들에게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삶 자체이자 그들의
전부였다.
밀레, 이삭줍는 여인들, 1857 그런데, 이런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화가인 밀레의 ‘만종’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 갈라와 밀레의 만종, 1933
바로 달리다. 그는 ‘만종’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에서 고독한
황혼 녘 죽음을 암시하는 배경은 시의 텍스트에서 수술대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지평선에서는 생명이 꺼져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언제나 인류를
의미해 왔던 경작지이자 살아 있는 실체적 살에 건초 쇠스랑까지 꽂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쇠스랑이 생산력에 대한 왕성한 욕망을 가지고, 정교한 메스가 절개하는
것과도 같은 특유한 자세로 스스로 박혀 있다는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 만종, 1932
또한 "그림 속의 그 남자는 발기한 자신의 상태를 감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지만 창피하고 의심스러운 모자의 위치를 고려하면 오히려 그것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그와 마주 선 재봉틀, 누구나 알아볼 만큼 심하게 특성화된 여성의 상징인 재봉틀은 심지어 더 나아가 자기 재봉틀 바늘의 치명적인 카니발리즘적 속성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라고 말했다. -살바도르 달리, [밀레의 만종에 대한 편집증적 비평에 대한 해석-1933년 미노타우로스] 중에서
살바도르 달리, 건축학적 밀레의 만종, 1933
이렇게 ‘만종’의 환영들은 달리에게
존재했었던 그 어떤 그림보다도 슬픔과 불안함을 느끼게 했다. 크레우스 곶을 거닐며 그는 종종 공상에 잠기곤 했었다. 거기서 진정한 지질학적
황홀경을 느끼게 하는 바위의 풍경을 즐기면서, 그는 ‘만종’에 나오는 두 인물이
제일 높은 절벽에 새겨져 있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고 말했다.
살바도르 달리, 하프위에서의 명상, 1934
“공간의 구성은 원작
그대로지만 몸 전체에 깊게 균열이 나 있고 침식돼서 많은 부분이 닳아 있는데, 그것이 오래된 원작을 바위 그 자체만으로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남자의 형상이 더 닳게
되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고 윤곽이 모호해지면서 놀랍고 무서운 느낌까지 준다." - 살바도르 달리, [밀레, 만종의 비극적 신화-1963년 발간] 중에서
달리와 ‘만종’사이에는 이외에도 또
다른 유명한 논란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바닥에 놓여진 바구니가 감자를 담고 있는 바구니가 아니라, 죽은 아이의 관이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출처가
달리라는 것이다. 그가 만종에 대해 슬픔과
불안, 성적인 편집적 해석에
대한 의견을 내비쳤는 것은 위에서 이미 확인했다. 그러나 그가 아기 시체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밀레, 만종의 비극적 신화-1963년 발간] 서문에서 루브르 조사를
통해 다른 밑그림 흔적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일부 훼손된 ‘만종’의 그림을 복원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서 1963년 자외선 조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초벌 그림에서
상자로 보이는 희미한 밑그림인 스케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만종의
바구니가 아기 시체가 있는 나무관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로
죽은 아기였다는 기록은 없다. 비록 자외선 조사를
했다고는 하나 아기의 시체를 담은 관으로 특정 지을 수 있을 만큼 그 밑그림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또 유화의 특성상 전체적인 구도를 잡기 위해 스케치 형태의 초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다반사이기 때문에 그런 형태의 밑그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아기 시체가 있는 나무관이라는 설을 뒷받침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달리가 엉뚱하게 ‘만종’에서 두 부부 사이에
놓여진 감자 바구니가 마치 관처럼 느껴진다고 주장했다는 말과 함께 아예 죽은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고 단정지어진 이야기가 돌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진실의 여부를 떠나, 달리가 작품 ‘만종’에 대해 진정으로 각별한
애증을 보였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살바도르 달리,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 1935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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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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