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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8.08.26 22:49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조회 수 6924 추천 수 0 댓글 0
유로저널 177 -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여러번씩 거울을 본다. 오늘 내 얼굴은 어떤지, 옷매무새는 어떤지를 체크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울 앞에
선다. 그런데 라깡에게 있어서, 거울은 나르시시즘의 시작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상처와 불안을 자신이 투사해 놓은 이상적인 자아를 통해 위안 받고자 한다.
Norman Rockwell, Girl at the Mirror, 1953 라캉에 의하면 어린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은 완벽한 나르시즘 그 자체라고
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정신적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깡의 말처럼, 우리 자신의 욕망을 타자의
욕망에 두게 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꿈꾸는 지금 나의 욕망도 내가
생각해 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전에 어느 누군가의 꿈, 어느 누군가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우리의 욕망을 누르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거울앞에 선 자화상, 1882-83 2. 근원적 나르시즘 자크 라캉(Jaques
Lacan)은 주체의 문제,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 그리고 인간과 언어와의
관계에 대해 프로이트를 재해석한 철학자다. 프로이트는 아동발달의
초기 단계에서는 주체와 객체, 자신과 외계 간에 뚜렷한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상태를 라캉은 상상계(The
Imaginary)라고 지칭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거울
단계를 통해 자기인식을 하게 되지만 타자 속에서 주체를 경험하게 되므로 소외의 길을 걷게 된다. 인간이 개별성을 획득하는
장소는 상징계이다. 그러나 상징계로의 이행은
주체의 분열을 초래한다. 또한 언어에 의해 중개된
주체는 분열되어 자기 자신을 기표로 표현하게 된다. 라캉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세 범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라캉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어린 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거울단계(mirror stage)를 거치면서, 처음에는 사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자신과 같이 서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잘 구분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거울 속의
이미지가 바로 자신의 것이며 다른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껏 파편적인 형태로 여겨졌던 자신의 신체가 거울 속에서는 완전한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이다.
나와 거울 속의 나 그러나 사실 아이가
‘나’라고 규정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 이미지는 자신을 실제 모습보다 작게, 그리고 거꾸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있어서 그
이미지는 자신의 완벽한 모습임과 동시에 자신을 돌봐주는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정신분석 용어로 이상적 자아로 불리며 타자에 의해 보여짐을 인식하지 못하는 ‘객관화되기 전의 나’에 해당된다. 보여짐을 모르고 바라봄만
있는 이 단계는 이미지를 이상화하기에 상상계라고도 불린다. 이 단계, 즉 거울단계이자 상상계가
바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는
가설 가운데서도 나르시시즘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는 무의식이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유아기에 아기가 갖는 최초의 자아의식을 ‘근원적 나르시시즘’이라 불렀다.
나르시즘 3. 에고와 주체 아이가 거울단계에서
최초로 ‘나’라고 인식하는 존재를 라깡은 ‘에고(ego)’라고 불렀다. 이는 결여가 없는 정체성을
지닌 ‘나’를 만드는 허구적인 자기규정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환상인 것이다.
아니쉬 카푸어, 비정형(트위스트), 2008 마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인 비정형의 매끈한 거울상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보이는 납작하게 짜부라진 자신의 모습, 이리저리 뒤틀린 상의 각도로 비쳐지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에, 정작 우리 자신의 실체가
보이지는 않는 느낌처럼, 허구의 에고는 우리인
체를 하며 우리 삶속에서 우리 행세를 한다. 이 에고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 결코 벗어버릴 수 없는 단단한 갑옷처럼 우리들과 함께 존재한다. 라깡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아개념인 이 에고가 상징계(The
Symbolic)에 의해서 주체(subject)로 바뀌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거울단계에서
자신과 자신의 이미지를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낸 것이 에고라면, 주체는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나’에 대한 개념이다. 주체는 언어에 의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즉 사회 속에서 규정된
‘나’이다.
Maurice Guibert, Henri de Toulouse-Lautrec as
Artist and Model, 1900경 다시 말해 에고는 상상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면에, 주체는 상징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한 에고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주체의 본질은 분열이다. 주체의 분열은 자아의
의식적 담화와 행위, 그리고 문화 사이의
분열을 나타낸다. 이런 분열은 주체의
내부에 숨겨진 구조, 즉 무의식을 형성한다. 분열은 담화나 상징계가
주체들을 중개하여 진실로부터 멀어지도록 함으로써 발생한다. 중개에 의해 주체를
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주체는 자신의 본질적인 부분을 박탈당하게 된다. 개별성을 보증하는 상징계로의
편입이 주체의 소외를 야기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는
사회와 문화, 조직, 그리고 언어를 받아들게
된다. 어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것들에 맞추어 오로지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정신병인 신경증 현상을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 4. 오이디푸스 현상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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