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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8.09.17 18:40
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23):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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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감독 : 황동혁 주연 : 이병헌(최명길), 김윤석(김상헌), 박해일(인조) 개봉 : 2017년 10월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 대군이 공격해 오자 임금과 조정이 남한산성을 급하게 피신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물론 영화의 핵심은 ‘김훈’님의 소설을 극화했다. 청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난 그 해에는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성난 파도와 같이 북으로 몰려 내려오는 청의 군대를 피해 백성들은 서둘러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피난을 간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기에 준비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병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 했고 왕이라 할지라도 한두 가지로 차려진 초라한 수라상을 받아야 했고 충신이라 주장하는 대신들 역시 추위로 고통 해야 했다. 영화는 남한산성은 가장 치열했던 47일간의 이야기인 1636년 12월 14일-1637년 1월 30일에 대한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그들은 성 안에 갇혀서 대립으로 각을 세우고 있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이다. 견뎌 후일을 택할 것인가, 싸워 죽음을 택할 것인가? 같은 충심, 다른 신념으로 맞선 두 신하는 역사상 실존의 인물이다. 이조판서 최명길(1586-1647)의 주장은 청나라와의 ‘화의’ 였으며 예조판서 김상헌(1570-1652)의 주장은 ‘척화’였다. 두 신하의 대립에 왕은 선택할 수 없었으며 신하들도 두 신하의 주장에 줄을 서게 된다. 백성들은 정치를 잘 모른다. 어쩌면 정치를 몰라야 행복하다. 백성들 입에서 정치에 대해 화제가 되어 오르내리면 그 정치는 이미 백성들을 잘 섬기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국가가 백성들을 잘 품고 있음이 증명되어져야 국가를 향한 존귀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백성들 입에서 정치인들의 화자 된다는 것은 그들은 이미 바른 정치를 하고 있지 않음일 것이다. 왕이 피신해온 남한산성에 대장장이 ‘서날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충직한 조선의 백성이었다. 평민의 눈에 대신들인 정치인들이 행동이 옮아 보이지 않게 비춰진다. 정치란 무엇인가? 과연 백성들에게 정치가 필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인물은 왕이나 그 나라의 핵심 신하들이 아니다. 대장장이의 이름 없는 평민이었으며 강을 건너는 일에 도움을 주었던 이름 없는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 ‘마루’였다. 정치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런 평민이 뱉어내는 고백 속에서 담겨 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나루터 노인에 안내를 받아 얼음길을 건넌다. 상헌은 노인에게 말한다. 나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가면 노인과 손녀를 책임지고 돌봐 주겠다는 약조를 한다. 그러나 노인은 상헌대감에게 말한다. ‘소인은 소인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노인을 단칼에 베어 버린다. 그것은 백성들이 정치인을 믿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2003년 5월 1일, 취임 두 달을 맞은 고 전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백분토론에 나와 당시로써는 가장 뜨거운 질문을 받았다. 이라크 파병에 관한 질문이었다. 강대국의 힘에 밀려 우리의 자식들을 전쟁터로 내 보내야만 했는가,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를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온 대통령의 답이 바로 남한산성의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이었다. 강대국을 상대로 맺는 강제 계약과 또 강대국과 다툼 없이 사이좋게 지내는 ‘화의’와 ‘척화’, 그 두 개의 노선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의 형식을 띤 답변이었다. 그로부터 17일 뒤,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미국관이 바뀐 것 아니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고사를 인용하여 답변 했다. “한신도 무뢰한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03년 5월 18일 연설 중에서) 이 의미는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지금의 수모는 견딜 수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민족은 언제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문제는 그 강대국들의 힘의 이동에 있다. 조선은 명나라를 섬기는 신하의 나라였다. 오랑캐로 불리는 청나라는 명의 힘을 누르고 신진 세력이 되어 조선을 압박해 온다. 명나라를 섬기는 것을 멈추고 청을 섬기라는 군사적 압박이었다. 신하들은 결정해야 했다. 명나라와의 대의명분을 지킬 것인가? 살기 위해서 명을 버리고 신진세력으로 부강 하는 청을 섬길 것인가? 두 신하의 대립은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즉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에 관함이었다. 청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성문을 스스로 열어 준다면 비록 살아 있으나 마음은 죽은 것이라는 주장과 성문을 잠그고 끝까지 청과와 싸운다면 비록은 몸은 죽을 수 있으나 정신을 살아 있음을 주장하는 대립이다. 조선시대나 현실의 정치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국가가 해결해야 할 급박한 문제에 있어서 신하들은 언제나 나뉘게 된다. 즉 명분과 실리를 따질 것인가, 신념과 원칙을 따질 것인가. 청에게 항복함으로 앞날을 도모하자는 실리 쪽을 택한 최명길은 주장한다.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옵니다. 전하가 딛고 걸어야 할 길입니다.”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 발밑을 기어서라도 백성의 살길을 여는 것이 임금이 아니옵니까?” 그러나 김상헌은 청에게 굴복한다는 것은 명나라를 섬겼던 신념과 원칙을 깨는 것이라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역사는 바꿀 수 없다. 남한산성의 치욕스런 고통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은 역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가의 문제로 남아 있게 된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서로 견지하여 대립하는 인물로 비춰지지만 둘은 서로를 존중하였다. 그들의 행실은 오늘날 여당과 야당으로 나눠진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정신이다. 국가의 발전,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각자의 의견을 소신껏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상대의 의견뿐 아니라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시대가 인물을 만들어 낸다. 큰 인물은 결국 이름 없는 백성을 귀하게 섬기는 사람이다. 강대국 틈새에서 치욕을 당할지라도 백성들을 생각하여 그들의 가랑이 밑을 기어서라도 백성을 보호하려는 권력자의 의지를 백성들은 기억하게 된다. 영화는 김상헌 대감의 행보를 담아냄으로 막을 내린다. 그가 죽였던 나룻배 노인의 손녀인 ‘나루’를 대장장이인 ‘서날쇠’에게 맡긴다. 그러면서 평민인 날쇠에게 큰 절을 올린다. 신분의 차이가 있던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개인이 개인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책임졌던 정치인이 백성 앞에 절을 올리는 숭고한 행위였다. 결코 백성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정치는 실패한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한산성에서 보여줬던 두 신하의 행보는 시대를 관통하여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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