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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8.09.24 01:28
“내가 비롯한 곳, 그 대지가 모든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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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욕망 구조 주체와 욕망의 문제를 다뤘던 20세기 후반부 라캉의 이론은 현재와서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20세기 후반부 세계문화의 흐름 가운데 가장 큰 한 가지 특징은 모더니즘의 건조하고 메마른 추상적 엘리트주의로부터 탈출하여 인간과 역사를 보는 시각에 일상과 감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이다. 여기에서 욕망, 권력, 담론, 지식, 주체의 문제가 부상되고 특히 에로티시즘이 부활하게 되었다. 광기-권력-담론-인식 등의 변화 과정을 추적한 미셀 푸코, 구조주의를 마르크스에 적용했던 루이 알튀세르, 현상은 서로 달라도 원리는 하나라는 구조 인류학을 탄생시킨 레비 스트로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에 내재한 욕망구조를 통해 욕망-이미지를 연구한 들뢰즈, 프로이트를 구조적으로 재해석하여 무의식과 언어의 관계를 파고들었던 쟈크 라캉과 에로티시즘의 부활을 이끌어낸 바타이유 등도 당시 큰 흐름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이렇게 20세기 후반부에서는 욕망과 욕망의 주체가 주요한 지적 동기가 되었다. 특히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면서 라깡은 무의식에 언어체계를 끌어들임으로써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부상시켰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정치, 사회, 문화예술의 분야로 확대했다. 무의식과 똑같은 원리로 그는 욕망 역시 표층으로 올라오게 했다. 그에 따르면, 욕망은 환유이자 기표이다.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 고리와 같다. 주체의 욕망을 충족시킬 것처럼 보이는 대상, 즉 대체가 가능하리라 믿는 단계, 이것이 압축이요, 은유이다. 그러나 충족시키지 못하고 다시 그 다음 대상으로 자리를 바꾸는 전치, 이것이 환유이다. 그러므로 욕망 역시 언어처럼, 무의식처럼, 은유와 환유로 구조되어 있다고 그는 말했다. 2. 욕망 분열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자신의 내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심리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자화상과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행하면서 균열되고 쪼개진 관계로 상처받은 자신의 병적 광기와 자아의 분열을 통해 그는 인간의 욕망을 묘사했다. 에곤 실레 '이중 자화상'에서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분열된 그 자신의 자아와 타자가 한 자아속에서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세기말과 전쟁에 의한 혼란과 불안도 그의 분열되고 소외된 모습의 자화상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에곤실레, 이중자화상, 1915 3. 욕망 이미지 라캉은 주체를 결핍으로 보고 욕망을 환유로 보았다. 이것은 주체를 대상에 대한 왜곡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오인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타자의식’을 갖게 한다. 이 타자의식이 라캉의 이론이 지닌 미덕이요, 그의 이론이 문학, 정치, 사회,여성이론으로 확장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자기답게 사는데 있어서 여성과 남성 모두 원래 타고난 원형과 사회문화적 압력의 영향을 받는다. 삶의 국면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이 원형은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즉, 중요한 타인, 이 타자에 대한 의식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큰 힘을 행사한다. "내가 비롯한 곳, 그 대지가 모든 것을 뜻한다."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 Keeffe, 1887-1986) 의 말이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조지아 오키프의 사진(1918) 그녀는 자연에서 많은 생각을 찾아내기로 유명했다. 그녀가 자신의 경력을 통하여 창조한 꽃의 사물화는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Georgia O'Keeffe, Red Canna, 1924 Georgia O'Keefe, Pink Sweet Peas 2, 1927 그녀는 또한 동물의 유골과 사막의 풍경을 주제로 한 그림들로도 유명해졌다. Georgia O'Keeffe, Ram's Head White Hollyhock and Little Hills, 1935 대부분의 그녀의 작품들은 강하고 선명한 색으로 형상은 육욕적이고 부드럽고 간단했다. 조지아 오키프, Lake George Reflection, 1921-22 조지아는 어릴 때부터 웅장한 공간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것은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밑걸음이 되었다. "생은 그 대지에 달려 있다." 조지아는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외도로 고통스럽고 외로울 때마다, 그리고 여자로서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그저 성적인 대상으로만 주목을 받을 때마다 늘 자연에서 위안을 얻었다. Georgia O'Keeffe, Taos Mountain, New Mexico, 1930 사랑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 나만의 세상을 하나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나의 인생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지옥의 불도 마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조지아는 그녀의 남편과 육체적으로 정신으로 에로틱한 사랑은 했었지만, 자신을 살아있게 만들어 줄 아모르적 사랑은 하지 못했다. Georgia O'Keeffe, Abstraction White Rose, 1927 그래서 그녀는 자연과 사랑에 빠지면서 아가페적 사랑으로 자신의 삶의 충동을 이끌어냈다. 어릴 적 조지아는 날마다 반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오후 산책을 즐겼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에게 충분한 안식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안개 자욱한 블루리지 산맥의 유혹에 이끌려, 학교에서 금지한 하이킹을 하기 위해 반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몰래 빠져나가기도 했다. "하이킹은 그 시절 내게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학교가 정말 싫었다.” 이후 그녀는 바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해변에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기도 했고,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즐기기도 했다. 특히 그녀는 바다로 향한 넓은 산책로를 달리는 것을 무척 사랑했다. Georgia O'Keeffe, Sun Water Maine, 1922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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