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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8.09.30 23:13
화가들은 경험이라는 어려운 시련들을 통해 훈련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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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침내 내게 딱 맞는 곳에 돌아온 느낌이예요" 조지아 오키프를 사로잡은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땅이었다. "뉴욕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자연에서 느끼고 있어요. 마침내 내게 딱 맞는 곳에 돌아온 느낌이예요. 내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좋아요." 개인 대 개인으로의 아모르적 사랑을 조지아는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냈다. 자연과의 소통으로 그녀만의 개인적인 사랑을 나눔으로써 고귀한 정신적 경험을 했다. Georgia O’Keeffe, Light Coming on the Plains II, 1917 조지아에게 그림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한 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피폐해져 그림에 전념할 수 없었을 때, 그녀는 아예 붓에 손을 대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예술가로 점차적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을 때는 누가 뭐라고 하든 동요하지 않고 수없이 오고가는 어떠한 말들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의 이력을 쌓기 시작하던 때에 명확하게 지향했던 자신의 이상을 향해, 그녀는 차분하게 단지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의 평가에도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열정적으로 작업했던 그녀는 "그것이 얼마나 좋은 지, 나쁜 지 이도 저도 아닌지 내가 결정한다. 비평가들은 그 후에 그들 좋을 대로 쓸 수 있는 거다. 나 자신은 이미 결정을 내렸고, 그러니 감언이설이든 비평이든 모든 것은 헛되며,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라고 말했다. Georgia O'Keeffe, Evening Star V, 1917 5. 그녀만의 '다름' 그녀는 자신의 예술 세계가 한층 성숙해지자 자신의 작품이 당시 다른 남자 예술가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남자들의 대열에 합류하기보다는 오히려 점점 더 자신의 그림에 여러가지 색조를 활용함으로써 고유의 차별성을 찾기로 결심했다. 현대 미술에서 꽃은 감상적이거나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한 여성성으로 치부될 수 있는 위험한 소재이다. Georgia O'Keeffe, Red Poppy, 1927 그러나 오키프의 꽃은 특별히 여성적인 강렬함을 지니고 있는데 대개 남성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여성, 특히 그녀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Georgia O'Keeffe, Grey Lines with Black, Blue and Yellow, 1923 그녀는 전혀 감상적이지 않은 도구인 카메라 렌즈에 기대어 꽃들의 명암을 강화하고 구체화했다. 특히 그녀는 꽃이 지닌 본연의 색채에 매료되었다.
Georgia O'Keeffe, Yellow Calla, 1926 모네처럼 그녀는 더 많은 시간을 꽃들의 미묘하고 빛나는 색채를 연구하는데 전념하기 위해 조지호수에서 자주빛 피튜니아 꽃밭을 직접 가꾸며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확대한 꽃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1924년 여름에 자신의 꽃들을 심으면서부터이다. 그녀는 '예쁘다'는 말이 여성의 외모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쁜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쁘다'라는 말을 열등한 것의 범주에 넣어 버리는 남자들의 억측을 전복시키고자 했다. 그녀는 여성이 그들의 예술을 동등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참된 방식은 여성 자신의 감각과 경험, 배경에 따라 다르게 예술을 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바로 그것이 그녀만의 색깔이자, '다름'이다. Georgia O'Keeffe, Hollyhock Pink with Pedernal, 1937 오늘날에도 일부 비평가들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거나 소녀 취향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오키프의 꽃 그림들은 여전히 장르를 서열화하는 진부한 사고를 깨부수는 폭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은 오키프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로 꽃이나 파스텔 색조를 찾으려고 투쟁한 방식은 정확히 남편이었던 스티글리츠가 가장 비아냥 거렸던 미학적 방식이었다. 오키프는 그의 간섭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녀를 비아냥 거리는 남편을 비꼬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 수많은 연상을 한다. 손을 내밀어 만져 보거나 냄새를 맡아보기 위해 몸을 기울인다. 혹은 거의 아무 생각없이 입술을 대보거나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선물을 하기도 한다. Georgia O'Keeffe, Hibiscus with Plumeria, 1939 하지만 정말로 꽃 한 송이를 보기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각각의 꽃들이 내게 어떤 존재인가를 그렸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충분히 크게 그렸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6. 내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달게 견딜 수 있다 화가들은 경험이라는 어려운 시련들을 통해 훈련된 존재들이다. 조지아는 사랑의 경험을 통해 이것이야말로 내 세상이다, 이런 내 인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달게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랑의 개척자들을 두고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그들은 자기 성취의 주인이자 도구가 되고자 했다. 그런 사랑의 깨달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도그마도 정치도 사회가 규정하는 어떤 선의 당대적 개념도 쫓지 않고 오로지 자기 경험으로부터만 지혜를 구하려 했다. 자기 느낌의 경험에서 우러난 사랑으로, 자신의 경험을 지혜의 원천으로 삼아 그녀는 그녀 자신만의 예술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진실되게 듣고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오키프의 양식은 어느 누구의 작품을 연상시키거나 모방한 듯한 것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확실하고 깊은 개인적인 언어를 창조해 냈다. Georgia O'Keeffe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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