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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18.10.10 01:25
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프로방스 깊숙히 시간이 정지된 아름다운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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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프로방스 깊숙히 시간이 정지된 아름다운 흔적들 옥시따니가 낳은 인물들 연극인 장 빌라르 Jean Vilar, 화가 후레데릭 바질 Frédéric Basille, 알렉상드르 까바넬Alexandre Cabanel, 이야쎙뜨 리고Hyacinthe Rigaud , 삐에르 술라쥐 Pierre Soulage, 삐에르 쉬블레라 Pierre Subleyras, 조각가로 아리스티드 마이욜 Aristide Maillol 이 있다. 옥시따니아 지방의 역사 인류의 조상이 당당히 두 발로 걷으며 예술 작품을 남기던 땅 옥시따니, 이 곳 옥시따니에서 인류의 조상들이 동굴에서 예술 작품을 남기고 13만년 전 네안델탈인이 걸어 다녔다. 그 조상들의 유골 턱뼈가 발견되었고, 라스코 동굴 벽화는 인류 조상의 예술에 대한 유전자를 확인 시켜준 놀라운 발견이었다. 옥시따니아 땅은 로마 제국 이전 이미 여러 부족 공동체의 연합형태를 갖고 있었다. 골르 족 시대 이 지방은 지중해 켈트에 속한 지역이다. 켈트족의 일파인 볼크족이 론강에서 갸론느 강까지, 세벤느 산에서 피레네까지 자기 지역으로 삼았다. 그들의 수도는 뚤루즈와 님므였다. 그리스와 교역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아그드 항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기원전 2세기 경부터 모든 골르족은 로마에 정복당한다. 나르본느는 로마 갈리아의 수도가 된다. 갈리아 로마 문명은 갸르 지방에 뽕듀갸르 유적을 남기며, 님므의 아레나, 다이아나 신전, 아우구스투스 문, 고작의 로마 온천장 등의 유적을, 퇴폐와 폐허를 남기고 사라졌다. 미래 로마의 황제가 될 크라우디우스가 님므에서 태어났다. 5세기 초엽 반달족이 침입하고 몇 년 후에는 비지고트 족이 정복하였다. 418년 로마는 이들에게 이 지방을 양도한다. 비지고트 왕국Le royaume wisigoth 418년부터 711년까지 서 초기 중세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골르 남부 지역과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며 수도를 뚤루즈로 한다. 현재의 프랑스 남부를 포함한 국가로 뚤루즈를 수도로 발전하였다. 507년 부이예 전투bataille de Vouillé에서 끌로비스 왕에게 패하여 프랑스 남부 옥시따니 지방을 남기고 남으로 물러났다. 이탈리야 지방의 오스트로고트족의 도움으로 프로방스 일부를 소유하였다. 508년 뚤루즈를 빼앗겨 수도로 톨레도로 옮겼다. 575년 포르투갈 북부 수에비 왕국과 갈리시아를 정복하였다. 그리고 711년 회교도들에게 정복당하여 왕국은 문을 닫았다.
옥시따니는 중세 말엽 13세기 이단으로 몰린 카타르cathares의 중심이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교회 통일과 정상화 작업으로, 순수를 되찾고 초대 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카타르 이단에 대한 십자군 원정을 선포한다. 교회 권력에 의하여 시작된 이단 전쟁은 프랑스왕국에 영토 확장을 위한 훌륭한 핑계거리가 되었다. 프랑스 왕은 교회를 등에 업고 무력으로 이단을 척결하고 정통 신앙의 가치를 수호하며 1224년 이 지방을 왕국에 편입시켰다. 알비를 중심으로 한 카타르 척결 원정 이후 까르까손느의 트랑까발 기문이 멸문당하고 뚤루즈 백작들이 몰락하면서 1271년에는 지역이 프랑스 왕국이 직접 지배하는 영토가 되었다. 1277년 알비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1562-1598신구 종교전쟁 당시 이 지역은 종교적인 이유로 또 다시 전쟁의 참화에 휘말린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싸움에 몽또방Montauban, 까스트르Castres, 미요Millau, 몽뻴리에는 신교도 편이 되었다. 1621-1629년 위그노의 반란이 진압되면서 왕권이 강화된다. 이어서 이 지방 행정에 왕국이 직접 개입한다. 루씨용 지역은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스페인에서 프랑스 왕국으로 넘어왔다. 1666년부터 22년의 대운하 공사로 1688년 삐에르 리께Pierre-Paul Riquet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대운하의 물길을 열었다. 뚤루즈 Toulouse 삐레네 지방 오뜨 가론느도의 뚤루즈는 인구 47만명(2017년)으로 프랑스 빠리,마르쎄이.리용에 이어 4번째 큰 도시로 프랑스 남서부의 문화, 산업, 대학의 중심지이다. 활기 넘치는 도로를 따라 유수한 소장품을 자랑하는 박물관, 독특한 양식의 종교건축물, 화려한 옛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럭비가 가장 사랑 받는 스포츠이다.
항공산업의 본산지로 꽁꼬르드Concorde, 에어버스Airbus, 아리안느Ariane 위성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또한 카타르 이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왕국에서 신앙적으로 확고한 이론을 전승시키기 위하여 1229년 설립된 뚤루즈 대학 11 만명 학생들로 고도의 분위기는 매우 활기차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식도락의 명소로 갸론느강 굽이에 자리잡은 <장미빛 도시>다. <다음 호에 계속>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Email: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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