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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18.10.15 01:17
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프로방스 깊숙히 시간이 정지된 아름다운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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뚤루즈 Toulouse 도시를 건축한 벽돌의 색깔로 핑크 빛 도시라고 부른다. 이 평야 지대는 나무가 부족하고 돌이 거의 없다. 대신 가론느강의 알뤼비알 평원에 진흙이 풍부하여 붉은 벽돌을 만들었다. 갈리아 로마시절부터 만든 벽돌은 15세기까지 교회와 영주의 성을 짓는데 사용하였다. 이 포란 이라고 부르는 벅돌은 돌보다 강하다. 이 벽돌로 툴루즈의 고딕을 건축할 수 있었다. 1463년 뚤루즈 대화재로 도시 중심이 다 타버린 후 도시 건축에 이 벽돌 사용을 의무화시켰다. 예술사에서 파스텔을 많이 생산한 도시로 파스텔 식물에서 짙은 푸른색을 추출하여 북부의 아미엥과 더불어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으며 경제적인 부를 이룬 가문이 많이 생겨났다. 도시는 로마의 점령으로 고도가 생긴 이래 갸론느강 우안에 도시 확장을 거듭하며 5세기에 비지고트 왕국Wisigoths의 수도로 자리 잡았다. 643년 베르덩 조약으로 뚤루즈 백작령은 프랑스 왕국의 지방이 된다. 하지만 뚤루즈 백작이 프랑스 왕에게 바치는 존경이나 공물은 거의 무시할 정도였다. 언어도 갸르강 동부 프로방스의 사투리 프로방살과 이웃한 오크어 langue d’oc를 사용하며 북부의 오일어langue d’oïl와는 구분되었다. 프랑스 남부와 북부는 공존의 세월을 잘 보냈다. 13세기에 이르러 남북 통일의 기운이 싹튼다. 하지만 이 지방은 남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프랑스 왕국과 프랑스 서부의 새로운 주인이 된 영국 두 나라가 관심을 갖는다. 바로 이 시기에 서방 교회 내부에 강력한 이단의 종파로 카타리즘이 이 땅에 넓게 퍼져 나간다.오일 지역인 북부에는 종교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오크 지방의 종교는 심각하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기성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순수주의자들이 카타르 라는 이름으로 종교적인 힘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알비를 중심으로 한 카타르에 대항하는 강한 십자군이 결성된다, 이단 알비파들을 척결하라. 프랑스 왕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꺼렸다. 북부의 영주들에게 명이 떨어 졌다. 시몽 드 몽포르가 앞장선다. 이단을 척결하면 올바른 믿음을 보여 줄 수 있다. 더구나 재산과 권력을 한 번에 쥘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1229년 1차 알비 십자군은 프랑스에 유리한 조약을 맺으며 막을 내렸다. 뚤루즈 백작령은 왕국과 독립작인 체제를 유지하며 왕국의 지방으로 남는다. 뚤루즈 백작 레몽7세는 아들이 없었다. 아버지를 계승할 수 없는 그이 딸 쟌느는 1229년 빠리 조약에 의해 9세의 나이에 성 루이의 동생 알퐁스 드 쁘와띠에와 결혼하여야 했다. 혼인 계약서에 부부에게 자식이 없으면 남부 지방 전체가 프랑스 왕실로 귀속된다고. 명시되었다. 1271년 알퐁스 드 쁘와띠에는 후손 없이 죽음을 맞는다. 백작령은 프랑스 왕국으로 귀속되고 영지의 수입은 프랑스 까뻬 왕국으로 들어간다. 1420년 샤흘르7세가 창설한 고등법원으로 뚤루즈는 프랑스 왕국 정치 권력의 심장이 되었다. 16-18세기에 파스텔 염료와 곡물거래로 부유해진 상인들이 수많은 저택을 축조, 현재 옛 지역인 우안의 꺄삐똘광장, 8세기 노트르담 드 라 도라드 바지리카 성당, 16세기 노트르담 드 라 달바드 교회에 이르는 구역에 이들 저택들이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남북간 주도로인 알자스 로렌 거리와 동서간 주도로인 메츠 거리는 19세기 말 빠리의 도시 계획을 새롭게 한 오스만의 발상을 본 딴 도로들이다. 1993년 초현대식 지하철이 개통되어 28km의 노선이 도심과 외곽을 잇고 있다 꺄삐똘 광장 place du Capitole 주변 꺄삐똘 광장은 뚤루즈의 활기가 샘솟는 곳이다. 유명한 까페, 식당, 책방이 몰려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옛 도시 산책을 즐기면 된다. 꺄삐똘은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capitulum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 뚤루즈의 행정관들인 꺄삐뚤capitouls이 사용한 의회였다. 정면 화사드는 17세기 중반 건축가 기욤 깜마Guillaume Cammas의 작품이다. 망루(1525-1529)와 내부정원(16-17세기)이 있다. 유명인사 살롱salle des Illustres은 뚤루즈 역사실로 내부장식은 19세기말 남 프랑스, 뚤루즈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노트르담 뒤 또르성당 (église Notre-Dame-du-Taur) 남 프랑스 고딕양식 14세기 교회로 정면에 남 프랑스 특유의 방어용 종루벽이 솟아있다. <또르>는 쎄르넹 성인saint Sernin이 <또로 taureau 황소>에 받혀 순교한 탓에 붙여졌다. 레 쟈꼬벵 Les Jacobins 레 쟈꼬벵 도미니크 수도원은 1216년 성자 도미니크가 카타르cathares 이단에 대항하기 위해 직접 건축하였고 1385년 완공된다. 1294년의 종탑은 뚤루즈 고딕양식의 대표작이다. 내부는 특이한 2중 본당이다. 후진에 <야자수형 궁륭>이라는 22개의 궁륭이 솟아있다. 땅또넹 예배소(chapelle Saint-Antonin)에 계시록의 내용을 그린 14세기 벽화와 성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골함이 있다. 아쎄자 저택 Hôtel d'Assézat 1555 르네상스기 저택으로 정면에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식 열주가 늘어서 있다. 현재 남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보존, 창달하는 협회인 죄 플로로 아카데미Académie des Jeux floraux가 자리잡고 있다.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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