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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18.12.10 00:44
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 옥시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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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 옥시따니 므와싹 Moissac 도시는 갸론느 강과 따른 강의 합류 지점 주변에 위치하며 갸론느 운하가 지나고 있다. 므와싹 성 베드로 수도원 L'abbaye Saint-Pierre의 클로이스터 옛 수도원 교회인 성 베드로 교회는 1130년 건립된 입구문과 더불어 로마네스크 양식 조각의 걸작품이다. 11세기 건축물로 방어의 목적으로 건축된 거대한 종탑은 마지막 층은 고딕의 시대를 보여 준다. 11세기 말에 건축된 수도원 정원은 서양 크리스챤 문화재 중 가장 잘 보존된 예를 보여준다. 성베드로 수도원과 클로이스터는 1840년 메리메의 분류로 역사적인 문화재료 분류 되었고 1998년 “프랑스 산티아고 가는 길”로 유네스코 인류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갸론느 운하는 므와싹 동쪽 길이 356 m 의 까꼬르 운하 다리 le pont-canal du Cacor를 통과하며 따른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면 국경을 넘는다. 갸론느 운하는 Lot-et-Garonne 와 Tarn-et-Garonne, 를 연결하며 1847년 길이 183 km로 만들었다. 나폴레옹 다리Le pont Napoléon 는 나폴레옹 1세때 결정되어 나폴레옹 3세 당시 완공된다. 피레네 산맥 Les Pyrénées 유럽 남서부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프랑스 와 남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자연 경계를 이루는 산맥으로 산속에는 안도라 공국la principauté d’Andorre을 품고 있다. 피레네 산맥의 길이는 지중해 크뢰스 곶Cap de Creus에서 시작하여 대서영의 가스꼬뉴만golfe de Gascogne 이게르 곶Cap Higuer까지 430km에 이른다. 최고 높은 산은 피끄 다네또pic d'Aneto로 3 404 미터에 이른다.
삐레네의 어원은 플루타르크(Plutarque 46 - 125)의 기록에 피레나이아Pyrēnaîa로 처음 등장하였고 라틴어로 피네나에우스Pyrenaeus 스페인어로 로스 피리네오스los Pirineos 로 사용된다. 쌩 베르트랑 드 꼬멩쥐 Saint-Bertrand-de-Comminges 갸론느강을 굽어보는 해발 515m 가파른 원형구릉 위의 주민 2백명의 쎙 베르트랑 드 꼬멩쥐는 특이한 지형과 유적, 아울러 발굴 유물로 중부 삐레네에서 가장 중요한 선사 및 역사의 중심 마을이다. 기원전 72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갈리아에 정착시킨 이베리아인의 도시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곳을 피레네산맥의 장악을 위한 거점으로 사용했다. 당시 인구가 만 명이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37년 헤롯 대왕Hérode le Grand의 딸 헤로디아드Hérodiade와 그녀와 정을 나눈 헤롯 안티파스Hérode d'Antipas가 유배된 곳이기도 하다. 4세기에 주교좌 교구였다. 408년 반달족의 침입으로 대파되었으나 최근 발굴작업으로 광장, 야외극장, 공중탕, 신전 등의 로마 점령기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가파른 구릉 지형으로 주민의 이주가 늘고 신도시조차 6세기 말 전쟁으로 마을은 파괴되었다. 쌩뜨 마리 대성당 Cathédrale Sainte-Marie 11세기 말, 꼬멩쥬의 주교 베르트랑Bertrand de l'Isle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건축하면서 마을이 되살아났다. 성당은 샤띠용 가문Hugues de Châtillon의 헌금으로 14세기에 완성된다. 그의 묘관이 내부의 성모 채플에 있다. 제 1본당은 베르트랑이 1120년 시축한 성당의 자취이다. 나무 판으로 감싼 종루가 있고 로마네스크양식 정문은 멋진 조각물로 장식되어 있다. 남프랑스 고딕양식 후진과 신자석은 14세기 초반 옛 주교였던 베르트랑 드 고트가 보르도 대주교로 갔다가 교황이 되면서 재정적인 기여를 해서 건축되었다. , 내부는 16세기 뚤루즈 가구 명인들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회랑에 고대인의 석관과 유명한 <네 명의 복음서 저자 기둥 pilier des Quatre évangélistes >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둥 머리 조각이 걸작이다. 루르드 Lourdes 인구 1만 6천명의 루르드는 문맹인 한 방앗간 집 딸 베르나데뜨 쑤비루Bernadette Soubirous, 1844-79로 인해 성지가 되었다. 1858년 14세의 베르나데뜨 소녀는 고을 밖 마싸비엘 동굴grotte de Massabielle에서 18차례나 성모와 접견하는 이적을 체험한다.
백의의 성모는 그녀에게 "나는 죄없이 수태한 자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1862년 교구단의 오랜 조사 끝에 이 사실이 인정되었고 이후 동굴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숱한 환자가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현재 루르드는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로 대형 종교 집회장이 설치되고 그와 관련된 상업활동이 번성 중이다. 1873년 처음으로 프랑스 국내 순례행사 이후 규모가 계속 증대하여 현재 연 5백만의 인파가 쑤비루 방앗간 집과 마싸비엘 동굴을 방문한다.
뽀강gave de Pau 좌안의 넓은 종교행사장 주변에 비오 10세 지하 바질리카가 있다. 1958년 설립된 것으로 2만의 신도를 수용한다. 1885년 건축한 로제르 바지리카 성당은 아래층이 네오 비잔틴 양식, 건축 윗 층이 신 고딕 양식으로 양측 두 개의 대형계단으로 올라간다. 대성당 우측으로 돌면 기적의 샘물이 흐르는 마싸비엘 동굴이 나온다. 환자 전용의 침수탕은 동굴로를 끼고 있고, 동굴 옆에 설치된 6개의 대형화면으로 주요행사를 시청할 수 있다. 대성당 위 십자가 수난의 길chemin du Calvaire를 따라가면 멋진 전망이 펼쳐진다.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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