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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8) 

와인의 죽음과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해바라기

파리 뤼비통재단 미술관( Fondation Louis Vuitton)전시회를 중심으로


와인이 매력적인건 무엇때문일까?

그건 아마도 사람을 닮았기때문일것이다.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데깔꼬마니(decalcomanie)처럼 나의 인생사와 묘하게 대칭을 이룬다고, 강렬히 느껴지는 그 어느 순간이 올때, 그때가 아마도 와인이라는 음료에 미친듯이 빠져들게 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에서 항상 꽃길만 있는것은 아니듯, 때로는 질척거리는 시궁창같은 길을 홀로 비맞으며 비틀비틀 걸어야 할때도 있을것이고,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짙은 어둠을 헤매다 예상치 못하게 무지개를 만날 수도 있는것처럼, 사람의 힘으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빛과 어둠의 공존이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싱그러운 초록빛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불타는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입었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지 못한채, 암울한 갈색의 검은 잎으로  변해버리더니만  몇번의 비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으스스한 늦가을, 초겨울의 날씨탓에, 기형도 시인의 이 싯귀를 입속으로 되뇌이면서 처음 도착한 파리 메트로 사블롱(métro  Les Sablons)역은, 바람이 불고 비가내리고 있었다. 오전 열한시 쯤으로 기억하는데, 파리의11월 그 순간의 볼로뉴숲의 공기는 꼭 해 질 무렵처럼 스잔함이 감돌고 있었고, 나뭇잎은 온통 갈색을 띈 검은색처럼 보였다. 그 숲을 십오분 남짓 걸으니 해체된 배의 형상을 한 파리의 새로운 명물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FLV, Fondation Louis Vuitton)이 철골과 유리로 장식된 곡선의 위용을 드러냈다.


[크기변환][회전]20181107_171922.jpg  [크기변환]20181212_104545.png


프랑크 게리(Frank Gehry) 건축가가 '해체된 배의 이미지, 즉, 배 안으로 물이 들어 올 수 있고, 그 안에서 물고기들도 자유롭게 헤엄쳐 다낼 수 있는  배의 이미지'를 바탕 아이디어로 설계한, 볼로뉴 숲에 둘러싸인 파리의 새로운 명물로 등극한 이 미술관에서, 에곤  쉴레(Egon SCHIELE)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거의 개관시간에 맞춰 들어가, 폐관시간까지 그곳에 머물며, 비록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똑같이 28세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과 작별한 한 명의 유럽인과(에곤 쉴레) 또다른 한 명의 미국인 화가의 (바스키아)작품을 감상하였다. 그 수많은 작품들 중, 에곤쉴레의 해바라기(soleil d’automne-Tournesols, 1914)라는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크기변환]20181218_022720.jpg


작품이 제작된 시기와 장소는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삼개월 전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이다. 뭔가 희망이 사라져버린듯, 태양을 향해 그 빛을 받으며 사는것이 숙명인 해바라기는 왠일인지 시들어버린채, 태양빛을 외면하고 고개를 깊이 떨구고 있다. 황금빛의 커다랗고 수많았던 빽빽한 꽃잎들은 이미 벌레에 갉아 먹힌 듯 거의 보이지않고, 꽃의 중앙은 검게 변해 이미 벌레처럼 보인다. 짙은 절망감이 엄습해 온다. 모든 색깔의 채도는 지극히 낮고, 특이하게도 이 그림에서는, 꽃이 아닌 ,해바라기를 둘러싼 이미 말라서 비틀어진 나뭇잎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환경(잎)적 요인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주인공(해바라기)의 죽음(짙은 갈색, 검은색으로 변해 고개숙이고 꽃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진듯한 이미지)을 알리며, 에곤쉴레 자신의 죽음에 임박한 절망적 상황을 마치 자화상처럼 투영하고 있는듯 했다. 식물의 부패로 인한 해체, 분해됨, 안타까운 병듦을 표현한 이 그림은 희안하게도 계속 살아서 끊임없이 변신을 반복하고 있다는 프렉탈(fractal)한 느낌을 나에게 주었다. 백발의 나이 지긋한 한 서양인 여성은 이 그림 앞에 서서 연신 아름답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오래도록 그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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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말라 시든 꽃은 어떤 냄새가 날까? 몇년 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든 장미꽃의 냄새를 맡아본 경험이 있다. 와인의 향을 감별해 내는게 와인 시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특히 피노누아(Pinot noir)라는 부르고뉴의 대표 레드와인 포도 품종 오래된 빈티지에서 맡을 수 있는것이 이 시든 장미(Rose fanée) 향이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그때 그 장미꽃에서,식물성 기름냄새에 약간의 고춧가루를 섞어서 꽃과 함께 태운듯한 향이 났는데, 이 향은 대표적으로, 페닐에탄올(phenyl ethanol)이라는  복합물질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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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누아로 만든 그 유명한 로마네콩티 (DRC-Domaine de la Romanée Conti)와인 오래된 것을 열면, 매혹적인 시든 장미의 향을 음미할 수 있다고 한다. 시들었다하여 꼭, 그 매력을 상실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


파리에서 전시회를 보고, 보르도로 돌아와 친구들과 여러 와인들을 시음하였다. 그 중에는 직접 보르도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도 있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라성같은 사토에서 와인 생산을 담당하는 책임자(maître de chai)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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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와인 시음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위 '맛이 간 와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요인들이 이 와인들을 '맛이 간'와인으로 만들었는지 의견을 나누고, 소비자 입장이라면, 이 와인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산다면 적당한 가격은 얼마일까 가늠해보는 그런 자리었다. 특히 두 가지와인은 거의 모두에게 ;거부하고 싶은 심하게 맛이 간 와인; 이라는 악평을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두 와인중 하나는, 보르도 5대 샤토중 하나인  뽀이약의(Pauillac) 샤토 라피트 호쉴드(château Lafite Rothschild )1987년 빈티지였고, 또 다른 와인도 아주 훌륭한 보르도 생 줄리앙 마을의 와인인 샤토 듀크루 보카이유(château Ducru- Beaucaillou )1985년 빈티지였다. 


와인을 언급함에 있어서 '맛이갔다.'라는 표현은 어떨때 쓰는 것일까? 쉽게 말해서, '상했다. 변했다.죽었다.늙었으되(vieillissement) 곱게 늙지 않고 추하게 늙었다.' 정도로 표현될 수 있을것 같은 나만의 생각이다.


와인이 상하여 맛과 향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요인과 그에 따른 후각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게 표현된다. 우선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에서 시기를 잘못맞춰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수확하는 경우나,  병충해 관리가 않된 포도를 마구잡이로 따서 와인을 만드는 경우, 기계에 의한 수확으로 포도 과육이 뭉개지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럴때는 와인에서 녹색 피망의 향이나 습기찬 지하실에서 맡을 수 있는 곰팡이 냄새가 난다.


1차 발효, 레드와인이라면 1, 2차 발효 과정을 거치는 순간에 나타나는 미생물에 의한 감염은 주로 신맛과 향으로 표현되며, 때로는 마구간 냄새, 말의 땀냄새, 신발의 냄새같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외부적 요인, 즉, 코르크가 상했다던지, 불량 코르크로 병입을했을때는, TCA라는 화학물질에서 지각할 수 있는 독특한 향을 맡을 수 있고, 와인 제조용 오크통이나 스텐레스 용기를 화학약품으로 심하게 세척하는 경우에, 와인에서 스카치테이프 냄새가 나기도 한다. 또한, 와인 생산자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서, 예를 들면, 와인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지나치게 많은 이산화황을 투입하는 경우 의도와는 다르게, 포도 품종이 나타내는 전형적인 특성에 마스크를 씌우는 것같은 실망스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와인을 마셨는데, 어둠의 냄새와(눅눅한 곰팡이,젖은 마분지, 쥐냄새,상한듯한 쉰내 ) 암울한 톤의 와인색과 외향(레드와인인데, 심한 갈색으로 변했다거나, 화이트 와인이 오렌지 색을 띈다든지, 스파클링 와인도 아닌데, 기포가 올라온다던지 하는 경우)이 감지된다면 한번쯤 '와인의 죽음’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아마도 그런 종류의 와인을 마신다면, 기형도 시인이 읊었던 것처럼, 어쩌면 '입 속의 검은 잎’을 통렬히 느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배는 바다를 떠다녀야 하기때문에, 물이 들어와서는 안되고, 

해바라기는 언제나 해를 바라보고 황금빛 태양처럼, 높은 채도의 커다란 빛으로 표현되어야 하며,(클림트나 고흐의 그림에서 처럼) 오래되어 갈변하고 흙냄새, 시든 장미 냄새가 나는 와인은  가치가 없다라는 고정관념을 뒤엎은채,


건축가는 배를 해체시켜,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미술관을 만들고,

실낱같은 희망의 끈도 찾지 못한 채, 전쟁의 공포 앞에서, 독감으로 죽어간 젊은 화가의 시든 해바라기는 최고의 미술관에서 감동의 이름으로 부활하며, 시든 장미의 향은 이 세상 최고 값진 와인의 매력적인 향으로 평가되어진다.


생.노.병.사의 이야기를 다 간직한 와인은,

그래서 인간을 닮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메일 :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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