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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9.03.04 19:34

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40) 말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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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40)
말모이
 
41-1.jpg

감독 : 엄유나
주연 : 유해진(김판수), 윤계상(류정환), 김순희(박예나)
개봉 : 2019년 1월 9일
 
말은 그 민족의 정신이다. 말이 없다면 민족정신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다른 문화권 나라를 식민화하기 위해 그 민족의 언어를 말살 시키려 한다. 민족정신이 말에 있기에 말이 사라진다면 민족정신도 사장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류를 지탱해 온 역사는 어떻게 보면 식민화 정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개인으로 시작하여 가문이 되고, 가문은 집단이 되고, 그 집단은 민족의 기초가 된다. 개인으로 시작하여 민족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순수함을 벗어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전쟁의 핏빛으로 얼룩져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전쟁 없이 개인에서 민족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한자만이 민족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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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문화를 만들어 내고, 문화는 문명을 만들어 낸다. 문명은 그 민족의 삶의 수준이 된다. 문명은 결국 말의 열매라 할 수 있다. 만약 문명을 하루아침에 제거 할 수 있다 할지라도 말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제거된 문명 보다 더 발전된 문명을 창출해 낼 수 있게 뿌리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언젠가 그 뿌리에서 더 강력한 줄기를 피워내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다른 문화권의 말을 없애기 위한 시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장 강력하게 다른 문화의 정신인 말을 짓밟는 행위를 한 나라가 있다면 우리와 가까이 하고 있는 일본이다. 일본은 세계 역사에도 없을 만큼 잔혹하게 주변국을 정벌해 갔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는 조선이다. 창씨개명을 하게 했으며, 강력하게 언어 말살 정책을 펴서 한글 사용하는 자들에게 중형을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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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의 주인공인 조선어학회 류정환 대표는 강조한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주인공 ‘김판수’(유해진)를 통해 한글사전이 편찬된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배제한 허구를 극화 한 것이다. 광복을 맞은 이후에나 ‘조선어학회’ 라는 정식 간판을 걸 수 있었다. 판수는 원고뭉치를 숨겨두고 일본 경찰에 처참하게 사살된다. 그의 시체는 아무도 찾지 못할 하천에 버려진다. 영화 제목이 말하는 “말모이”는 1910년에 편찬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말 그래도 전국의 말을 한군데로 모은 것이다. 판수는 극장 문지기다. 친구로 하여금 극장 안에서 도둑질을 하는 것에 눈을 감아준 것으로 그나마 직장에서 쫓겨난다. 친구와 본격으로서 쓰리군의 업을 삼기로 한다. 그 첫 번 표적이 말모이 원고 뭉치를 들고 들어오는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은밀하게 훔쳐 달아나지만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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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수의 본성은 착하다. 한국인이 가지는 보편적인 정직한 성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작금의 환경이 그로 하여금 생활수단을 위해 도둑으로 몰아낸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의 공납금을 지급하기 위해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내 몰린 것이다. 원래 본성이 악한 도둑은 웬만해선 걸리지 않는다. 미리 계획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도둑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성이 착한 도둑은 어쩌다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걸리게 되고 도둑으로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2009년에 개봉된 <홍길동의 후예>에서 홍길동 역을 맡은 김범수는 자신을 잡으려는 송재필(성동일) 검사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가난한 검사가 더 큰 도둑이 된다.’ 도둑을 잡는 검사가 더 큰 도둑이 될지라도 세상은 그 도둑에게 훈장을 주고 박수를 보낸다. 그게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라의 큰일을 한 사람들이 줄줄이 영어의 몸이 된 사실을 정치적 보복이라는 단어로만으로 해석해 낼 일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판수는 큰 도둑이 될 인물이 아니다. 그의 심성이 착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을 지탱하는 민초들의 보편적 성품을 대변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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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은 그에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 마음이 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의 소개로 새로운 곳으로 취직하여 면접을 보러 간 곳이 조선어학회이다. 그곳에서 처음 도둑질을 위해 가방을 훔쳤던 조선어학회 대표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인연은 묘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사전을 만드는 곳에 직원이 까막눈이며 도둑질 전과자라는 사실에 대표는 반대했지만 다른 직원들의 권유로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 그러나 글을 읽을 수 없기에 읽고 쓰기를 떼는 조건으로 채용한다. 판수의 일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지방용어인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모아 표준어와 사투리가 어떻게 표현 방법이 다른지 시연을 보이는 일을 하면서 내면으로는 한글을 익히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 판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돈도 안 되는 말을 모아서 뭘 하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의 생애 처음으로 글을 익히면서 한글의 소중함을 피부 깊숙이 깨닫게 된다. 한글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강력 정책에 비록 힘없는 풀뿌리 민초지만 한글을 지켜내기 위해 그의 젊은 바칠 것을 엄숙하게 다짐하게 된다.   
 

판수는 영화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러나 조선어학회 대표인 류정환은 실존인물이다. 조선어학회 대표이자 한글학자인 ‘이극로’를 극화한 것이다. 다만 그에 대해 감추어진 것은 북한으로 넘어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조선어학회 대표인 실존 인물이 아니라 무명의 판수이다. 판수는 한 개인이기도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힘없는 백성이 자기 나름대로 일본을 대항하며 살았던 민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어떤 깃발이 주어지는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일본을 향해 적극적인 독립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며 또한 한글을 지켜내는 숭고한 운동을 펼치는 일에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정신인 한글을 지켜낸 것은 유명 학자들의 몫이 아니었다. 까막눈인 판수와 같은 보편적 백성들에 의해 한글이 지켜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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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수는 일본인들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누구도 그의 시신을 찾을 수 없도록 버려진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일본은 부러질 수밖에 없는 자충수를 두는 어리석은 나라였다. 잠시 동안은 조선과 중국 세계를 향해 승전고를 울리는 듯싶었으나 역사의 진실은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는 패망하게 되는 것임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조선은 해방을 받는다. 판수가 목숨 걸고 지키려 했고 완수하려 했던 민족의 정신 말모이는 그의 핏값으로 완성된다. 1947년 소중한 사전 한권의 그의 딸이 김순희에게 전달된다. 그녀 역시 지극히 평범한 조선의 한 소녀일 뿐이다. 우리의 말, 우리의 정신은 특정 인물에 의해 지켜지고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보편적인 조선, 대한민국의 국민 한 사람에 의해 보존되는 것이며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나라를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국민을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그를 따르는 집단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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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말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켜내고, 민족정신을 지켜낸 것은 어떤 특정 정치인이 아니다. 한글 학자도 아니다. 판수와 같은 무명의 사람이다. 그 무명의 사람이 다시 그의 딸인 무명의 순희에게 소중한 말모이 사전이 전수되고 그들의 희생이 민족정신이 지켜졌다. 영화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화려한 이력이나 권력자가 나라를 지탱해 온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국민의 한 사람, 역사에도 그의 이름이 기록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그 한 사람에 의해 민족정신은 지탱되어 왔음을 영화는 담아내고 있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명언이 있다. 잘 생긴 나무는 자기 잘 난 맛에 산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가지만, 못생긴 나무는 그 누구도 거들떠보질 않는다. 산을 산으로서 존재하게 하며 푸름을 잃지 않게 하는 주인공은 바로 이름 없는 판수와 순희 같은 못 생긴 나무들에 의해서다. 그 나무들이 있기에 산을 지켜내고 숭고한 민족정신과 역사는 내일로 연결된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 카카오톡 아이디: seem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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