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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칼럼 11번째 이야기

바자스 (BAZAS) 카니발에서 만난 와인



2월 말,3월 초는 프랑스 전역에서 크고 작은 카니발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다. 작년에는 세계 3대 카니발의 하나로 불리우는 니스(Nice)에서 약간 떠들썩하게, 올해는 보르도(Bordeaux )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카니발 축제를 즐겼다.

 프랑스에서 보낸 그 몇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카니발은 화려한 니스도 아니요,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 남서부의 거점 도시 보르도도 아닌,몇년 전 바자스(Bazas)라고 불리우는  소도시에서의 인상적인 체험에서 였다.


서01 바자스 성당(cathédrale Saint Jean Baptiste)1.png

바자스 성당 (cathédrale Saint Jean Baptiste)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 저널에서 사진 기자로 일하고 있는  G의 제안으로 친구들과 바자스로 향했다. 일명 바자스 사육제의 소축제라고 명명된,(Fête des Bœufs  Gras  à Bazas)이 흥미진진한 이벤트의 참가를 제안하면서 G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정, 프랑스인들이 생활 속에서 와인을 즐긴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당신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싶군요. 전 거의 해마다 빼놓지 않고 바자스 카니발에 간답니다. 오늘 하루쯤 학교 수업은 잠시 접어두고 함께 가는건 어때요? 분명 후회하지 않을꺼예요. 자신있습니다.”


못이기는척 따라나선 하루 동안의 소풍길.


때는 2월 말.

보르도 중심을 벗어나 한 시간쯤 달려서 도착한 인구 4700명 남짓의 작은 중세 도시 바자스(Bazas), 복합적인 단맛의 세계적인 디저트와인 산지 소테(Sauternes )과도 가까웠고, 동시에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순례길에 속하는 마을이기도 했다. 마을 중심부에 다다르자 성스러운 순례의 여정임을 표시하는 바닥에 새겨진 조개껍데기 모양의 이정표, 성당과 광장이 나를 반긴다


서03 산티아고 순례길 표시.png

산티아고 순례길 표시


결코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어디서 많이 본듯한. 그렇다. 아기 요람처럼 가운데로 갈 수록 움푹 패인 형태의 이 광장.


서02 바자스 성당(cathédrale Saint Jean Baptiste)2.png

바자스 성당 (cathédrale Saint Jean Baptiste)


 파리 시민들이 보부르( Beaubourg)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퐁피두 센터, 그 앞의 광장,이탈리아 시에나(Siena)의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과 닮았다.  유서깊은 성당(cathédrale Saint jean Baptiste )은 중세의 고딕과 18세기 네오클래식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를 하고서 광장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인간들의 삶의 공간을 내려다 보듯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어머니(성당)가 요람(광장)에 든 아기(광장 안을 지나다니는 나를 포함한 행인들) 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것 같다고 나는 느껴졌다.


서04 바자스 소축제를 알리는 포스터.png서05 바자스 로컬 와인(local wine).png


도시전체가 약간은 발그레하게 취한듯, 왠만한 성인이라면 거의 모두 손에 와인잔이든 맥주잔이든 하나씩 들고 오고 가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기꺼이 인사를 나누며,  흥겹게 포도주를 나눠 마신다.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작은 마을에서 생산되는 보르도 슈페리어(Bordeaux Supérieur)등급의, 선홍색 에티켓을 바탕으로 소머리가 선명하게 그려진 레드 와인을 주로 나눠 마시며 카니발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에티켓과 와인의 색에서 소의 피, 또는 희생같은 이미지가 연상되는 정제되지 않은 강렬함이 내 뇌리를 스쳤다

보르도 와인의 등급 체계는 와인 에티켓에 단순히 보르도(Bordeaux)라고 적힌것 부터 시작해서 그보다 좀 비싼 보르도 슈페리어,그 위에 소위 가성비 좋은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 , 대부분 유명한 샤토에서 생산 병입까지 이뤄지는 그랑 크뤼(Grand Cru Classé )라고 간단히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축제의 군중들이 마시고 있던 와인은 3-5년 내로 마실 수 있는 , 최소 12개월 숙성을 거쳐 병입되기때문에 보르도라고 단순히 표기된 것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향미를 느낄 수 있는,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생활속의 와인이다.

매일 매일 제철에 이 고장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재료로 요리한 평범한 식사와 곁들여 끼니마다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는 그런 와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심플하게 구운 고기류나 샤퀴테리(charcuterie 돼지고기등을 건조해서 장기 보존용으로 가공한 형태)와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그 중 단연 으뜸은 바자스에서 나고 자라고 도축된 쇠고기(AOP Le Bœuf de Bazas )구이와 함께한 조합이 아닐까?


서06 바자스 특산물 쇠고.png서07 푸아그라.png

바자스 특산물 쇠고기 & 푸아그라


오늘 축제의 꽃은 소. 바자스의 소는 그 맛이 좋기로 아주 유명하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방목해서 키워낸 이 지방의 소는 매우 연하고, 씹는 동시에 터져나오는 육즙이 가히 예술이다.

성당에서 광장쪽을 바라봤을때, 왼쪽에 위치한, 이 마을 토박이들에게 사랑받는 식당에서 맛본 바자스 쇠고기의 맛은, 이제껏 내가 먹었던 쇠고기가 진정한 쇠고기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주는 맛이었다. 거의 18년 동안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맛본 다른 쇠고기들에 대한 기억을 보기좋게 한방에 날려주는 그런 맛이었다

소금만으로 족했다. 고기맛 자체가 너무나 뛰어났기때문에 기교를 부려 장식을 할 필요도 없었고, 머리를 짜내 갖가지 조합으로 탁월한 소스를 만들어 곁들여 낼 필요성은 전혀 없어보였다.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이곳의 포도로 비오(bio)인증을 받아 생산해 낸, 그리 복합적인 향미를 지니도 않았고, 비싼 그랑크뤼등급도 아닌 이 와인이 훌륭하게 쇠고기의 맛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한국 음식에는 한국 와인이, 프랑스 음식에는 프랑스 와인이, 바자스 쇠고기는 바자스 레드 와인을 곁들이는게  젤 잘어울리는 조합이 된다는걸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바자스 축제가 끝나고, 시간이 한참 흐른후, 어느 일본 와인평론가가 일본에서 이 와인을 맛본 후, 아주 혹평을 써 놓은 것을 우연히 본적이 있었다. 순간 나는 피식 웃고말았다

그는 일본에서 비행기로 이 와인을 받아, 적당한 조명과 하얀색으로 셋팅된 와인테이스팅 룸에 앉아서 고요한 가운데, 타구(와인을 뱉어내는 통)를 옆에 둔 채 와인 시음 분석 이론에 입각해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으로, 열심히 작업을 했으리라. 거기에는 물론 떠들썩한 축제의 함성도, , 바자스의 소고기도 없었으리라.

 

서08 바자스 소축제.png

바자스 소축제


머리며 꼬리를 꽃과 회관,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회색빛이 도는 다부진 체격과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바자스의 소들이 긴 행렬을 이뤄 마을을 힘차게 행진하고 관중들의 열띤 환호를 받으며 최종 목적지인 성당앞 움푹패인 광장으로 집결하여, 초록색 긴 가운과 검은 모자를 쓴 심사위원 앞에 선다. 이제는 심판의 시간. 8세기 (서기 736)부터 시작된 이 마을의 아름다운 전통 !


가장 아름다운 소를 호명하는 순간 축제는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짧은 영광을 맛보고, 가장 아름다웠던, 그 날의 그 소는 장렬하게 도축되어, 그의 생애에서 어쩌면 가장 영광스러웠을지도 모를 그 밤에 , 축제의 만찬을 위한 제물로 바쳐진다.

 

요람같기도 하고, 술잔같기도 했던 성당 앞 그 광장을 거꾸로 엎어 놓으면 ,무덤도 되는 것이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리고, 보르도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바자스 주민과 자연스레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고로 맛있게 먹은 바자스의 쇠고기 식당은 왜 미술랭 가이드에서 발견 할 수 없었을까요 ? 그리고 함께 곁들여 요리의 맛을 빛내주었던 그 와인은 왜 이제껏 제가 품평회에서 만나지 못했던 것일까요 ? 

그의 대답은 짧지만 강렬했고 걸작이었다.

미술랭이고, 품평회고,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람 , 허허허 ! 주멍푸.(Je m’en fous. :’상관 없다는 뜻의 관용적으로 쓰이는 프랑스어 표현)

 

바자스의 카니발에서 내가 본것은 인생의 유한성(성당 앞 특이한 모양의 광장, 요람같기도하고, 술잔같기도 하고, 그리고 무덤같기도 했던)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성당)과 인간(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동물()의 아름다운 공생이었다.

그리고 그 셋의 공생 관계(convivialité )를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처럼 조용히 이어주는듯 나를 느끼게 했던,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

와도 같은 그런 와인이었다.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메일 :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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