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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9.09.23 00:02
회화의 존재조건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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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존재조건이 무엇인가 3. 회화의 존재조건이 무엇인가 리히터의 작품의 형태를 시기별로 보면 1960년대 초기 구상 사진회화, 1966년 이후의 극사실적인 풍경 사진화 및 기하학적 추상회화에 집중했다. 당시의 독일의 신표현주의 대표적 작가인 안젤름 키퍼와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사진을 거부하고 회화에 집중할 때, 게르하르 리히터는 1960년대부터 오히려 잡지나 신문에 실린 사진을 선택해 그것을 단색으로 그려내며 변화를 모색했다. 즉, 인공적인 사진 이미지에 기반한 회화를 제작한 것이다. 또한 추상회화를 위해서도 그는 사진 이미지를 활용했다. 그에게 있어 사진은 '양식도, 구성도, 규범도 없으며, 개인적 경험을 떨쳐버리게 해주는 순수한 이미지'로서 기존의 예술개념을 탈각한 회화를 만드는 방법 그 자체였다. Gerhard Richter, Group of People, 1965 사진은 이미 아방가르드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여 낯설지만은 않은 매체였다. 그러나 시대양식을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던 사진을 리히터는 회화와 결탁하여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Gerhard Richter, Cloud, 1965 리히터는 사진 이미지 차용을 통하여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강박관념과 억압에서 탈피할 수 있었고, 또한 언론에 실린 사진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작업을 통해 주관과 객관 사이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흐름인 추상의 서정적 측면을 강조했던 앵포르멜과도 마침내 결별할 수 있었다. 희미하게 지워진 화면은 또한 그의 불안감을 가시화했다. 전쟁의 잔학성과 분단 독일의 현실을 리히터는 매체에 복합적으로 담아냈다. 사진을 그대로 묘사한 화면을 부드러운 붓을 사용해 일정한 방향으로 지워낸 그의 작업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것은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적 화면 구성을 추구하는 예술양식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미국과 유럽의 회화 장르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래디컬리얼리즘(radicalrealism)이라고도 불렀던 하이퍼리얼리즘은 기본적으로 미국적인 팝 아트(pop art)의 강력한 영향 아래 발생했다. John Salt, Trailer with Rocking Horse (Watercolor on Paper), 1974-75 (하이퍼리얼리즘 작품)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현대미술의 추상표현주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다. 팝아트와 마찬가지로 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면서도 소재를 취급하는 방식은 좀 더 극단적, 즉물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데, 가령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람의 미세한 피부 조직 따위를 기계적으로 확대하여 잔혹한 인상을 주거나 충격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a sculpture titled "Two Women" by artist Ron Mueck (하이퍼리얼리즘 작품) 하이퍼리얼리스트들은 이러한 효과를 위해 스케치나 습작보다는 카메라와 사진을 즐겨 사용하고, 사진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기 위해 환등기나 격자 등의 (반)기계적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게르하르 리히터의 지워진 화면은 관객에게 다가서기와 물러나기를 거듭하게 만들면서, 고정된 위치에서 관습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관람 방식으로는 그가 무엇을 그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렸는지를 알 수도 없고 식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Gerhard Richter, “Woman Descending the Staircase (Frau die Treppe Herabgehend),” 1965 Gerhard Richter, Elizabeth I, 1966 그는 1971-72년 사이에는 유명 사진 인물화, 그리고 1977년 이후에는 추상회화와 정물화 등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자본주의사회의 전형적인 사물과 인물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어 구상회화의 탄생을 도모했다고 한다면, 리히터는 언론에 실린 사진과 여행에서 찍은 일상적 이미지를 모노크롬으로 번역하여 구상회화와 사진과의 관계를 탐색했다고 할 수 있다. 동독에서 미술 공부를 한 그는 사진 이미지를 차용하여 자본주의를 단색으로 수용하고 이를 부드러운 붓으로 번역하여 회화세계에 활용했다. 양분화의 양상으로 치닫던 유럽의 미술계에, 회화가 자신의 위상을 상실하던 1960년대에, 그리고 사진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역할이 더욱 비좁아진 현대 회화에 리히터는 날카롭고 차가운 비판을 가했다. Gerhard Richter, 48 Portraits, 1972 ‘48개의 초상’이라는 작품은 1972년에 완성한 것으로 토마스만, 아인슈타인, 카프카, 앙드레지드, 폴 발레리, 릴케, 차이코프스키, 부치니,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그린 등 한결같이 엄숙한 표정의 백과사전 속 역사적 인물들의 사진을 유화로 확대해 그려낸 후 이를 다시 흑백사진으로 인화해낸 작품이다. 이것도 리히터의 실험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완전히 사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림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의 그림들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이 그림과 사진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는 회화의 존재조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된다. Gerhard Richter, ‘Brigid Polk (305)’, 1971 차용된 사진 이미지로 인하여 사라져 간 인물화, 역사화, 풍경화, 정물화, 기록화 등의 장르는 이제 그로 인하여 다시 사진의 이미지와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Gerhard Richter, October 18, 1977 리히터는 장르의 구별이 문헌적인 지식일 뿐이라는 점과, 사진이 회화의 명성을 침몰시켰다는 것은 비평의 논리라는 점, 그리고 추상과 리얼리즘의 구분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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