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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서른 두 번째 이야기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쥐맛'과 마담 박테리(Madame Bactérie)



춘래불사춘 ! (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같이 않다는 말이 너무나  실감 나는  '사월'이다.
도무지 잠잠해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다. 

20200407_134306.jpg
(이 글은 2020년 4월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2020년 경자년  1월, 신년 벽두부터 인터넷 상에 떠돌며,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킨 하나의 영상이 떠오른다.
예쁘장한 젊은 여성이 통째로 요리된 박쥐를, 마치 삼계탕을 먹듯이 맛나게 먹으려 시도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중국의 도시, 절규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면서, 그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가 박쥐임을 강조하여 경각심을 준 동영상이다.

디즈니의 대표캐릭터 미키마우스처럼,  영리하고 약삭빠른 귀여운 이미지나, 인도의 한 사원에서 숭배되고 있는 나름대로 성스런 이미지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쥐라는  동물은, 주로 어두운 밤에 활동하며, 곡식을 축내고, 병균을 옮기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상당부분 인식되고 있는듯하다. 중세 암흑기에 흑사병으로 유럽을 초토화시켰던 '페스트'균의 매개체 역시 쥐가 아니었던가!


와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가끔씩 운(?)나쁘면 만나게되는,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쥐냄새'가 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은 아니다. 아니, '쥐냄새'라 하기보다는, '쥐맛'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다. 왜냐하면, 이론상으로 이것은 와인이 담긴 잔을 흔들지 않고도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닌, 와인 잔을 흔든 후(agitation) 코의 깊숙한 뒷부분(rétro-olfactif)에서 미세하게 감지할 수 있는 냄새인때문이다. 
고도로 발달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보통 사람의 경우, 웬만해선 후각을 통해 이것을 인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맛을 보면, 충분히 인식가능하다. 특이하게도 이 냄새는 침(salive)과 결합했을때, 비로소 시너지효과를 내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와인에서 감지되는 이 '쥐냄새', '쥐맛'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
필자는 보르도 대학, 와인 시음, 양조과정을 공부할때, 직접 이 '쥐맛'을 체험한적이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적포도주에서 쌀뜨물을 맛보았을때 느꼈던, 쌀냄새와 약간은 끈적거리는 듯한 질감이 혀를 휘감았다. 

꼭 누룽지에 물을 넣고 끓인 숭늉의 뉘앙스가 와인에서 느껴졌는데, 단순히 숭늉맛이라 하기에는 그 혐오감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거기에 쏘시지 껍질, 땅콩, 계피향을 입힌 비스킷의 향, 쥐의 오줌, 썩은 모피냄새가 뒤범벅된 '무겁고, 어둡고, 위에서 지그시 누르는 듯이 둔탁하고 짙게 깔린 안개같은 맛'이 필자의 기억 속에 선명한, 와인의 '쥐맛'이다.

20200407_134359.jpg


이 맛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
보르도 대학의 '질 드 흐벨 ´교수는 그 원인을 '박테리'(Bactérie)와 '변질된 효모'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국어와 달리, 프랑스어는 성별이 존재하는 언어이다. 세균이라는 뜻의 박테리(Bactérie)는 프랑스어로 여성 명사이다. 
그래서 이 내용을 배울때,프랑스 친구들과 '마담 박테리'라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마담'은 프랑스에서, 여성에게 붙이는 존칭이니까.


와인에 쥐맛을 느끼도록 작용하는 젖산균(Bactérie lactique), '락토바실루스'(lactobacillus brevis, hilgardii ,fermentum)같은 유산균(김치나 요구르트를 발효시키는, 인간에게 이로운 균이다.) 이 당(sucre)이 존재하는 와인 발효과정에서, 이 당(sucre)과 결합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로 생기거나 와인의 젖산 발효(fermentation malolactique)와 관련있는 외노코큐쓰(oenococcus)때문에 생기기도한다.

그리고, 브렛타노미쎄쓰(Brettanomyces spp.)라는 이름의 병든 효모(levure, 호모는 와인 양조 과정 중, 알콜 발효를 주관한다.)역시, 와인에 쥐맛이 들게 하는데, 이건 위생적인 이유때문에 생기는게 아니라, 와인을 제조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기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쥐맛이 나는 와인은 PH숫자가 증가 하는 것과는 반비례해서  산미는 떨어지고, 반대로 토종 미생물의 수는 점차 증가하게된다. 쥐맛이 나지 않게 와인을 만드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SO2, 즉 산화 방지제를  기준보다 많이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쥐맛'은 그 어떤 종류의 와인보다 더, 요즘 많이 유행하고 있는 내추럴 와인(vin nature)에서 만나게 되기 쉽다. 왜냐하면, 내추럴 와인은, 산화방지제의 사용을 많은 부분 억제하기때문이다. 그래서 내추럴 와인을 만들거나 운반할 때는,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시음하고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심하게 눈에 띄는, 와인의 결함이 분명히 발견되는데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것을 내추럴 와인의 개성인것처럼 둔갑시켜 미화하는 일종의 스노비즘( snobbism)은, 내추럴 와인을 대하는 전혀 '내추럴'하지 않은 자세이기에, 그런 자세를 경계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디까지가 결함이라고 말 해야 하는지, 내추럴 와인의 세계에서는 아직도 이 화두를 명확히 구분 할 수 있는 논거가 제기되고 있지 않아 이부분은 여전히 논쟁중이다.(프랑스 디종, 2020년 2월, 내추럴 와인 콘페런스 참조)


그렇다면,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산화방지제를 적극 투입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첫번째로, 쥐냄새, 쥐맛은 상당부분,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와인의 결함이다. 처음에 와인을 막 열었을 때, 이 냄새와 맛이 발현될 확률이 많다. 와인을 연 채로, 몇 시간  그대로 두면,신기하게도 이 맛과 향이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주로 잘 만든 와인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그것은  다른 긍정적인 향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올라와, 이 부정적인 향미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두번째, 이 쥐맛과 쥐냄새를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곳에서, 누구와 얼마만큼 행복한 감정을 가지고, 어떤 음식과 어떻게 와인을 마시느냐에 따라, 분명 이 부정적인 맛이 이론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못느낀채로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대다수는, 와인을 실험실에 앉아 심각하게 하나하나 분석해가며 마시지는 않는다. 

산화방지제를 많이 투입해 미생물에 의한 변형이 전혀 없는 와인은, 아름답지만 생명없는 마네킨같고, 화려하지만 시들지 않는 조화와도 같다.

 이런 이유로 100프로의 양조학적 결함 없는 와인을 만들자고 산화방지제를 넣는 간단한 선택은 하지 않는다. 다소 양조학적으로 결함이 있다 할지라도, 산화방지제를 많이 쓰지 않아서 생기는 장점이 훨씬 더 크기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와인에서 이 쥐맛이 '과도하게 ´되면 그건 분명, 큰 문제가된다. 
이 지옥같은 맛을 가져오는건, 모두가 작은것들이다. 효모나 박테리 모두가 미생물 (microorganisme)아닌가 ?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시되고, 존재하지만 망각되기 쉬워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것들을 무시한 댓가는 엄청난 결과로 다가온다.  지금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떨게하고 있는 것도, 박테리보다도 훨씬 작은 몇몇 나노그람에 불과한 '바이러스'때문이 아닌가 ?

천하의 알렉산더 대왕을 죽인 것도, 아주 작은 모기 한 마리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인도 원정때 말라리아로 죽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L'essentiel est invisible pour les yeux! >>

생텍쥐페리의 단편 소설,  '어린 왕자'에서 읽었던 이 말이 요즘처럼 절실하게 다가왔던적은 없었던것 같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막에 불시착하기 전엔, 아마도 그 소설 속의  비행사는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자가 격리'중인, 필자를 포함한 오늘을 살고 있는 지구인들도 이렇게 '고립된 사막'에 '불시착'해야만 하는 SF영화와도 같은 일들이 우리 생애에 일어나게 될 줄 아무도 몰랐으리라.

그 작은 것들(코로나 바이러스)로인해서 말이다.

운 없게 만난, 와인의 '쥐맛'처럼
비록 이 상황이 지옥같을 지라도,
오로지 흐르는 시간만이
와인의 쥐맛을 데려갔던 것처럼,
언젠가는
이 상황도 끝날것이며
그 날이 오는 날

이왕이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꽃향기 가득 담은
와인 한 잔 마시며
'베르테르의 편지'를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

20200407_134636.jpg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메일 :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현재  프랑스에  거주중.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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