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대사관 | 유관기관 | 한인회 | 유학생회 | 기타한인단체 | 한인동포업체 | 주재상사 | 유럽내 추천사이트 | 해외동포 언론사이트

단독 사설
단독 칼럼
단독 인터뷰
독자기고/특별기고
엣세이/여행기/장편소설
유럽한인 취재뉴스
유로저널특집/기획취재뉴스
취재/독자/동영상
한인사회 게시판
정부/대사관 공지
재미있는 유머
경제뉴스
국제뉴스
정치뉴스
사회뉴스
기업뉴스
문화뉴스
연예뉴스
건강뉴스
여성뉴스
스포츠뉴스
내고장소식
독일뉴스
영국뉴스
베네룩스
프랑스뉴스
유럽뉴스
동유럽뉴스
스칸디나비아
스페인/이탈리아
오스트리아/스위스
그리스/터키/포르투갈
유럽각국 전시정보
유럽각국 이민정보
유럽각국 생활정보
유럽각국 교육정보
유럽각국 문화정보
여행기사 정보제공
유럽각국 여행정보
유럽각국 연금제도
유럽소비자 제품평가
공공기관/기업광고
동포업체 및 기타/해외
번역/통역, 관광, 가이드
민박, 하숙, 호텔

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20.06.01 20:00

쎄레와 꼴리우르 (2)

조회 수 127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Extra Form
테오의 프랑스 이야기

중세 수도원 기행
쎄레와 꼴리우르 (2)


꼴리우르Collioure 

수도원 시행 중 화가들의 마을 꼴리우르 항구 마을에서 야수파 fauvisme 로 불리우는 마을의 역사를 만든 수많은 화가들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세기 초반의 앙리 마띠스 Henri Matisse, 앙드레 드렝André Derain, 루이 발타Louis Valtat, 에띠엔 테뤼Etienne Terrus와 같은 야수들은 피레네 길과 지중해를 오가며 색깔을 폭발시켰다. 
b8.jpg
앙드레 드렝 - 꼴리우르 항구 1905년

피레네 오리앙탈 도의 지중해 항구로 난 프랑스 꼬뮨이다. 꼴리우랑크 Colliourencs 라고 부르는 주민 2427명(2017년)이 살고 있다. 

지리적으로 그 문화재로 명성을 얻었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유혹한 매력적인 마을이다. 

프랑스 최 남단 스페인 국경과 26 km 떨어진 꼴리우르는 바위로 둘러싸인 해안으로 독특하고 보호 받는 환경을 갖고 있다. 피레네 산맥이 지중해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작은 항구로 지금도 어부들이 멸치 잡이와 고기 잡이를 하고 있다. 겨울이 온난하고 여름이 길어 년 중 바캉스 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b9.jpg
앙드레 드렝, 1905년

꼴리우르 성은 673년 기록에 언급되었다. 비지고트 시절 전략적이고 상업 항구로 이용하였다. 
이 후 성과 마을은 루씨용 백작등의 소유로 넘어갔다. 1172년부터 1276년까지는 아라곤의 왕들이 그리고 1343년까지 마요르카의 왕들이 그리고 다시 아라곤의 지배로 넘어갔다. 

성채는 템플의 기사단들의 집터에 1242년부터 1280년까지 다시 지어 왕실의 거주지가 되었다. 꼴리우르는 루씨옹의 첫 번째 항구였다. 
아라곤 왕국 시절 상업항으로 직물, 기름, 포도주, 아몬드, 호두, 가축, 가죽, 철을 수출하였고 향신료, 파스텔, 붉은 물감, 황금, 은, 노예를 수입하였다. 

아라곤의 훼르디난도 5세와 카스티야의 이자벨라 1세, 카톨릭의 왕들의 정치적 결혼으로 꼴리우르와 루시용은 스페인 왕정의 치하로 들어갔다. 

b10.jpg 
훼르디난도와 이사벨라

1475년부터 1481년까지 프랑스 왕 루이 11세 Louis XI가 꼴리우르 요새를 건립케 하였고 이름을 쌩 미쉘이라 불렀다. 후계자인 샤흘르 8세 Charles VIII는 루시용을 카톨릭의 훼르디난도에게 돌려준다. 

그의 후계자인 카를로스 5세는 꼴리우르 만과 방드르 항구 Port-Vendres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을의 요새화를 강화하며 쌩 엘므 요새 Fort Saint-Elme 건축을 결정하였다.

1642년 루이13세 군대가 도시를 점령하고 루이14세Louis XIV 치하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공식적으로 프랑스 왕국으로 편입된다. 

b11.jpg



노트르담 데 장쥬 성당 L'église Notre Dame des Anges

18세기 세워진 꼴리우르 노트르담 데 장쥬 성당은 1672년 보방Vauban 대원수의 명으로 부서진 마을 중심의 쌩뜨 마리 교회에 이어 지금의 자리로 몇 백미터 마을은 이전하게 되면서 짓게 되었다. 

b12.jpg
앙리 마티스, 열린 창문,꼴리우르, 1905년

전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화가들이 이젤을 세우고 화폭에 담아간 교회로 이 지방에서 가장 많이알려진 교회가 되었다. 꼴리우르의 상징이 되었고 모든 기념품에 그림으로 담기는 아이콘이다. 

이 교회는 단일 네이브를 가진 남부 고딕 양식으로 지었다. 종탑의 돔은 아주 개성이 있게 1810년 올렸다. 이 종탑은 항구로 들어오려는 뱃사람들의 등대 역할을 했다. 네이브에 채플들이 붙고 뒤로 반원형 압시드가 들어갔다. 

b13.png


꼴리우르 현대 미술관 Musée d'Art Moderne de Collioure

꼴리우르 현대 미술관 은 이 역사의 연장선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1934년  러시아 화가 장 페스케Jean Peské가 당대 화가들의 기부작품으로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에는 현대와 동시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색깔의 해방"

지중해의 작은 항구 마을 꼴리우르에서 눈부시게 강렬한 색깔로 그리는 회화의 경향이 태어났다.

야수파라고 부르는 화가들은 "색깔을 해방 시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경향의 주동자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와 앙드레 드렝André Derain이었다. 그리고 많은 화가들이 이 경향에 합류하였다. 모리스 드 블라멩크 Maurice de Vlaminck, 오귀스트 샤보 Auguste Chabaud, 조르쥬 브라끄 Georges Braque, 에띠엔 테류 Etienne Terrus, 아리스티드 마이욜 Aristide Maillol 그리고 다니엘 드 몽프레드 Daniel de Monfreid . 

로망주의자 들리크르와가 색깔을 우리들의 뇌안에서 폭발시키고 있었다면 야수들은 화폭에 팔렛트를 집어 던졌다. 그들은 색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야수들은 시대의 협약과 단절하며 감정과 색깔을 절정으로 끌어 올리며 창작의 세계를 해방시킨다. 1905년 빠리에서 열린 가을 살롱전에 꼴리우르에서 작업한 화폭들을 가지고 앙리 마티스와 앙드레 드렝이 출현했다. 전시실 하나가 이 경향의 예술품에 배정되었다. 작품들은 격렬한 비평을 받았고 예술적인 충격을 유발하였다. 

전시실 한 가운데 조각가 마르끄의 작품으로 플로렌스의 영감을 받은 아기 천사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비평가 르이 복셀은 "순전한 색조의 광란의 연회" 한 가운데 길을 잃은 아기 천사에, "야수들(Fauves) 한 가운데 도나텔로"를 주목하였다. 이 마지막 표현이 야수파의 예술적 경향을 지칭하고 있다. 극한까지 밀어 부친 색깔의 탐구….

1905년 엥데팡당 살롱전에 모리스 블라밍크는 자신들의 야수파 회화를 빈센트의 사후 후원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끌어 들였다.

« 야수파는 흉내내는 색깔을 아주 멀리 하고 보다 강항 반작용으로 얻은 순전한 색깔로부터 다가온거다.»

« 색깔은 특히, 아마 보다 더 데상보다 하나의 해방이다. »
-앙리 마티스 -

야수들이 우리에서 나와 일 이년 간 자유롭게 살다가 야수들은 각자 자기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수도원길로 돌아가야 한다. 
-2020년 5월 코로나로 격리된 날, 사계절 옥탑방에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

유로저널광고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블룸스버리에듀케이션 입시정보 블룸스버리 에듀케이션 소개 및 연락처 file 편집부 2024.06.02 598
공지 이윤경의 예술칼럼 이윤경 칼럼니스트 소개 file 편집부 2021.05.03 5668
공지 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크리스트나 칼럼니스트 소개 file 편집부 2019.01.29 20883
1925 영국 이민과 생활 학업중단과 60일기간과 방문무비자 file 편집부 2020.06.29 928
1924 에이미리의 파리에서 랑데뷰 긴 시간 격리 후 첫 번째 외출 그리고 나 만의 여유 file 편집부 2020.06.29 1256
1923 아멘선교교회 칼럼 아멘선교교회 6월 24일자 말씀 file 편집부 2020.06.29 864
1922 테오의 프랑스이야기 옥시따니 (2) file 편집부 2020.06.29 7233
1921 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전하는 평화의 선율 file 편집부 2020.06.16 2143
1920 유로저널 와인칼럼 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35) - 코로나 이후의 와인 품평회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상 file 편집부 2020.06.16 1285
1919 테오의 프랑스이야기 옥시따니 (1) file 편집부 2020.06.16 1211
1918 아멘선교교회 칼럼 아멘선교교회 6월17일자 말씀 file 편집부 2020.06.15 810
1917 최지혜 예술칼럼 도날드 저드가 말하는 '타고난 예술가' file 편집부 2020.06.15 1509
1916 영국 이민과 생활 코로나사태로 7월까지 체류연장과 비자센터 오픈 file 편집부 2020.06.13 1393
1915 유로저널 와인칼럼 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34) - 와인의 도시에서, 박카스(Bacchus)를 만나다 file 편집부 2020.06.02 1362
1914 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모든 사랑으로… file 편집부 2020.06.01 1991
1913 아멘선교교회 칼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file 편집부 2020.06.01 1159
1912 에이미리의 파리에서 랑데뷰 귀족과 수집가의 집 file 편집부 2020.06.01 1583
» 테오의 프랑스이야기 쎄레와 꼴리우르 (2) file 편집부 2020.06.01 1271
1910 최지혜 예술칼럼 루비이통이 발견한 쿠사마의 가능성 file 편집부 2020.06.01 2183
1909 아멘선교교회 칼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 file 편집부 2020.06.01 802
1908 영국 이민과 생활 배우자비자와 과거 영국체류문제 file 편집부 2020.05.27 1238
1907 영국 이민과 생활 영국출생 자녀 영국시민권과 복수국적문제 file 편집부 2020.05.20 3196
1906 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눈부신 5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file 편집부 2020.05.19 2471
Board Pagination ‹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13 Next ›
/ 11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연락처 |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찾아오시는길 copyright@ EKNew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