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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0.06.15 19:48
도날드 저드가 말하는 '타고난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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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예술 칼럼 (253) 도날드 저드가 말하는 '타고난 예술가' 5. 폴카 도트 야요이 쿠사마는 어린 시절 식탁에서 이상한 환영을 경험했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꿨다. 식탁보에 있던 빨간색 꽃무늬가 벽과 바닥, 그리고 그녀의 몸까지 퍼져나가는 이미지를 본 후, 그녀는 강박적일 정도로 동일한 이미지를 무한히 반복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 Yayoi Kusama at the age of ten 그녀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츠모토에서 유복하고 전형적 가부장적 가정의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바람을 폈던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어머니에게 늘 감시를 받았다. ![]() 야요이 쿠사마 가족 사진 그녀의 환각 증상이 관음증으로 작품에 한참동안 나타나는 것은 이 때의 경험으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어릴 적 기억들이 그녀를 완전히 잠식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과 성적 취향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물방늬 무늬로 덮어버리며 그것에 완전히 심취하게 되었다. 그녀는 1948년 엄격한 도제식 학풍을 고수하는 교토시립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전통 일본화(Nihonga)를 배우면서 미술을 시작했다. 이 때 그녀는 과슈, 수채화, 유화와 같은 다양한 서양화 기법을 익혔다. ![]() Yayoi Kusama, The Germ, 1952 하지만, 그녀는 사제 간의 절대 복종을 중시하는 도제식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1952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도, 당시의 전시들과는 달리 다양한 매체로 완성된 그림들을 벽에 걸었다. 1957년 결국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미국행을 택했다. 당시 일본에는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의 허무주의적 분위기로부터 탈출해 미국으로 향한 예술가가 많았다. 존 레논과 결혼한 오노 요코나 온 카와라도 이 무렵 미국행을 택한 예술가들이다. ![]() Yayoi Kusama, A Flower,1952 야요이 쿠사마는 미국으로 건너간 1957년, 시애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이 뉴욕에서의 전시였기에, 1958년 그녀는 뉴욕으로 떠났다. 어린 일본 여자에게 그 곳은 그리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그녀는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쓰면서 그녀는 작품 활동에만 시간을 보냈다. 마침 자신이 일본에 있을 때 편지를 보냈던 조지아 오키프가 그녀가 뉴욕에서 어떻게 지내는 지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오키프는 그녀를 한 아트 딜러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 딜러는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을 샀다. 이 때 번 돈으로 그녀는 물감과 캔버스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큰 새까만 표면에 수천 개의 흰점들을 그렸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첫번째 ‘무한 망’ 시리즈 작품이다. ![]() 1959년 자신의 첫번 째 '무한 망' 작품 앞에 서 있는 야요이 쿠사마 그리고 마침내 1959년 브라타 갤러리(Brata Gallry)에서 그녀의 뉴욕에서의 첫번째 솔로전을 가졌다. 이 때 미니멀리스트 도날드 저드와 프랭크 스텔라는 전시회에서 쿠사마의 작품을 직접 구매했다. 당시 추상 표현주의가 점령하고 있었던 뉴욕에서 아웃사이더로서 저드도 쿠사마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동병상련을 느끼며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첫 전시에 대한 리뷰로서 도날드 저드는 잡지 <ARTnews>에 바넷 뉴멋이나 마크 로스코 그림과 비교해서 완전히 새로운 하지만 완성된 그림이었다고 그녀의 작품을 극찬하며 그녀는 말그대로 타고난 예술가다라고 호평을 했다. 1960년에는 루치오 폰타나, 이브 클랭 등 38명의 유럽 작가로 구성된 단체전 <모노크롬 말러라이 (Monochrome Malerei)>에 미국 작가로서 야요이 쿠사마가 출품작가로 선정되었다. ![]() Yayoi Kusama, Untitled, 1974 (도날드 저드가 구매가 한 작품 중 하나) 서구의 무수한 추상 실험을 접할 수 있었던 이 전시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모노크롬 회화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그해 11월에 6명의 일본 작가로 편성된 단체전 <일본의 추상 (Japanese abstraction)>에도 참가했다. 당시 화단의 주류였던 단색조 추상회화 전시에 그녀가 채택된 것은 미국 활동을 전개하던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그녀가 망사처럼 화면 전체를 채우는 모노톤 추상회화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Yayoi Kusama, No. F, 1959 ![]() Yayoi Kusama with one of her Infinity Net paintings in New York, c. 1961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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