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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와인칼럼
2020.08.17 23:49

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38) - 와인 독립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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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서른 여덟 번째 이야기
와인 독립 8.15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일흔 다섯 번째 8..15 광복절!
개인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한 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산화해 간, 수 많은 독립투사들이 생각나는 오늘 (2020년 8월 15일)이다. 

필자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이곳에 살다보면,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이런 부분들을 더 생각하게 되는것 같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전쟁 전사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들, 책들, 그리고 여러 기록들.  잊을만 하면 티브이를 통해 방영되는, 독일군에게 당당히 맞섰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활약들. 각 도시마다 사람들이 빈번하게 이동하는 곳에 어김없이 설치되어 있는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들. 거기에 헌화된 꽃들. 이 모든것들은 지금 누리는 자유와 풍요가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시킨다.
적어도 이곳에서, '프랑스인들의 순국 선열들'은, 죽었으되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체감온도 섭씨4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타닌이 강하고, 탄탄한 구조감을 지닌  적포도주는,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무겁게 느껴지는 이 계절. 이곳 디종(Dijon)의 중심가 노트르담 성당과 시장(Les Halles )주변을 이맘때 쯤 어슬렁 거리다 보면 빈번히 마주치는 장면들이 있다. 

"키르(Kir), 키르 알리고테(Kir Aligoté ), 키르 크레망(Kir crémant) 네시부터 일곱시까지 해피 타임 가격으로 제공합니다."  라고 쓰여진 문구와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이 음료를 즐기는 수 많은 디종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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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키르(kir)를 즐기는 디종 사람들 / 사진: 서 연우

코로나 19가 창궐하는 요즘에도,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안쓰고 음료와 음식들을 즐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때문에,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시원한 이 음료를 마시며, 오후의 여유를 만끽한다. 

그러고 보니, 키르(Kir)라는 이름에서 아련한 향수가 밀려온다.
한 때는 나의 일터이던 비행기 안에서, 웰컴 드링크(welcome drink) 서비스때문에 숱하게 만들었던 키르 로얄(Kir royale )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키르 로얄은 크렘 드 카시스와 샴페인을 섞어서 차게 만드는 칵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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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램 드 카시스 / 사진: 서 연우

키르(Kir)란, 적어도 디종에서는  세 가지로 이해 된다.
첫째는 사람의 이름이요, 둘째는 이 도시에 흐르고 있는 큰 호수의 이름이고, 셋째는 와인을 섞어 만든 칵테일을 의미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샤누안 키르(Chanoine Kir)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펠릭스 아드리앙 키르”. 
그는 디종의 시장이었다. 그것도 무려22년동안 이나!

 샤누안(Chanoine )이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젊은 날의 그는, 디종 노트르담 성당 교구에  소속된 종교인 이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정치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독일 나찌의 프랑스 점령 때문이었다. 그 암울했던 나찌치하 괴뢰 정부 시절, 그는 레지스탕스(독일에 대항하여 프랑스 독립을 이루기 위해 활동했던 프랑스 애국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랑그르 수용소에 붙들려있던 오 천여명의 프랑스 포로를 탈출시키는 대담한 저항을 하게된다. 이 사건으로 그는 독일 점령군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되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독일에 협력 했던 '같은 프랑스인, 나찌 부역자들(Nazis collaborators)'에 의해 목숨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으나 극적으로 살아난다.  
1945년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던 그 해, 거의 칠십이 다 된 나이의 그는, 시장으로  추대되어 죽기 일년 전 까지 부르고뉴의 중심 도시 디종의 발전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긴다. 도시 남서쪽에 큰 인공 호수를 만든 것도 그의 업적중 하나 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기려  키르(Kir)라는 그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까지도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와인칵테일 키르(Kir)는 무엇일까 ?
크렘 드 카시스(Crème de cassis)라고 불리우는 리뀨어(liqueur)약 1/3과 화이트 와인 약2/3를 섞어 만든다. 이때 쓰이는 화이트와인은 알리고테(Aligoté )품종이어야 한다.
원래 이 칵테일이 탄생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1904년, 당시, 디종 시장이었던 앙리 바라벙은 시의회 만찬의 예산 절감을 위해, 비싼 샴페인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식전주(apéritif)를 제안하였고, 한 카페 종업원이 아이디어를 내면서 이 칵테일이 만들어졌다. 그당시는 이 칵테일이 별다른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는데, '팰릭스 아드리앙 키르'가 시장으로 재직하던 1950년대에, 이름을 사용해도 좋다는 그의 허락 하에, 이 칵테일의 공식적인 이름은 '키르(Kir)' 라고 명명된다.
그당시 이 알리고테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소위 '2등급 와인, 서민들이나 마시던 맛없는 와인'의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었다. 


1904년에는, 오늘날 처럼, '원산지 명칭 통제'즉, 아오쎄(AOC)씨스템에 따른 포도주 등급표시에 의해 엄격한 품질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그당시는 양조 기술도 발달하지 않아 포도 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바로 압착시켜 양조를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알리고테 와인을 맛보면, 산도는 비교적 높지만, 복합적인 과일 향이 다소 떨어지고, 약간은 씁쓸한 식물성 풍미가 느껴지는 다소 투박하고 밋밋한 와인이 나왔고, 그래서 잘 팔리지도 않았다. 즉, '품질 관리에 실패한, 그다지 맛없는 저가 와인'이었던 알리고테는 '크램 드 카시스'라는 이름의, 부르고뉴 지역에서 많이나는 이 까치밥나무 열매로 만든, 과일향과 당도가 높은 리뀨어(liqueur)와 섞여서 모두가 좋아하는 식전주로 거듭나게 되어, 판매량도 늘어나서 재고가 쌓이지 않게 되었다. 

지역 경제에도 이바지한 셈이다. 리뀨어는 그 자체만 놓고 볼 때, 주로 식사후에 많이 마시는 알콜 음료인데, 서양 정찬 코스에서 '마침표'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리고, 향이나 농도가 진한 것들이 많기때문에, 칵테일을 만들 때도 많이 쓰인다. '카시스'의 향기는 보르도 지롱드강 좌안을 대표하는 카베르네 소비뇽에서도 많이 나타나며, 물론 피노누아에서도 빈번히 발현되는 대표적인 '검은 과일향'이다. 부르고뉴 뉘 생 조흐쥬(Nuits-Saint-Georges)마을이 특히나 이 카시스로 유명해서 박물관까지 세워놨을 정도다.(Le Cassiss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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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생 죠흐쥬의 포도원 풍경 / 사진: 서 연우

오늘날 알리고테는, 그 옛날의 '산도가 높고 복합적인 향미가 떨어지는 화이트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고 생각한다. 디종에 살면서, 꼭 칵테일로 만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알리코테로 만든 와인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곳에 살면서 만났던 와인들은, 그렇게 산미가 확연히 높지도 않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인식되어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 와인의 '미네랄리티(minéralité )'와 흰과일, 흰 꽃향기가 잘 어우러진 복합적인 향미, 그리고 생동감(vivacité )을 지닌 알리고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물론 현대 양조 기술의 발달도 있었겠지만, 포도주 등급체계에 의한, 엄격한 품질관리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부르고뉴 와인 등급 체계는 1936년에 만들어졌고, 지역단위 등급, 마을단위 등급에서부터, 프르미에 크뤼, 그랑그뤼라는 최상위 등급까지 형성된다. 

그렇다면, 이 알리고테로 만든 와인중에도 그랑크뤼(Grands Crus)나 프르미에 크뤼(Premiers Crus)같은 상위 등급이 존재할까? 언뜻 생각하기에, 부르고뉴 샤르도네같은 귀족적인 이미지보다, 대중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 알리고테로 만든 상위 등급 와인은 없을것 같다고 생각하는건 지극히 상식적이다. 물론, 전체에 약 2%를 차지하는 최상위 그랑크뤼 등급에서는 알리고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프리미에 크뤼 등급에서는 찾을 수 있다. 

흔히들, 알리고테는 부르고뉴의 부즈홍(Bouzeron)이라는 마을에서만 생산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모레 생 드니(Morey-Saint-Denis), 그리고 샤쎄 르 껑(Chassey-le-camp)마을에서도 알리고테를 가지고 와인을 만든다. 부즈홍 마을이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아마도 '오베르 드 빌렌(Aubert de Villaine)''이라는 인물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유추해 본다. 지구상에서 제일 비싼 와인 '로마네 콩티'의 소유주인 그는, 자기이름으로 된 포도원을 부즈홍에도 가지고 있는데, 알리고테를 이용해 역시나 훌륭한 화이트 와인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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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콩티 / 사진: 서 연우


알리고테는, 바로 전 칼럼에서도 언급 했듯, 구애블랑(gouais blanc)과 피노누아(Pinot noir)의 자손으로, 부르고뉴에서 태어났고, 필록세라의 대 재앙 전에는 '샤르도네'와 나란히 심어 기르던 포도였다. 과거, 산도(acidité)가 높았던 이미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와인을 만들때, 당연히 스테인레스 스틸로 된 양조통만 사용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와인 메이커의 재량에 따라, 새 오크통에서 숙성을 통해 어느정도 '탈 산성화(désacidification)'를 이룬 깊은 맛이 표현되는 스타일로도 오늘날에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타입의 알리고테는 치즈를 가미한, 구제르(Gougère au fromage)랑 좋은 짝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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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르 / 사진: 서 연우


구제르는 부르고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볍게 먹는 둥근 모양의 패스트리이다. 혹은, 앙두이예뜨(andouillette)라는 이름의, 돼지 창자로 만든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한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프랑스 사람들도, 동물의 내장으로 만든 요리를 즐긴다는 점이 프랑스 생활 초기에 신기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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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르와 알리고테

알리코테는 또한, 프랑스 하면 생각나는 '달팽이 요리(escargots en persillade)'의 영원한 동반자 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독립 운동가'출신의 옛 디종 시장은, 비록 세상을 떠난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살아, 그의 이름이 사람들의 일상가운데, 끊임 없이 회자되고 있다.
키르(kir)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입가에서. 
키르(kir)를 마시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어쩌면 그들은, 산책을 하고, 키르(Kir )라는 이름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는 순간 순간.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우리는 어떤가 ?
혹시나
너무나도 빨리, 
'떠나간 님'을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광복절'에
아주 잠깐 동안만 ,
'떠난 님'에 대한 기억들을
아주 조심스레 
꺼내보고 사는건 아닌지 !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메일 :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현재  프랑스에  거주중.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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