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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0.10.19 20:59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조회 수 1339 추천 수 0 댓글 0
최지혜의 예술 칼럼 (262)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바다를 바라보며 조깅을 한다고 상상해 보자. 몸은 점점 달라올라 땀으로 범벅이 되고, 해는 조금씩 떠오르면서 세상을 밝게 비춘다. 푸르른 바다가 햇살에 눈이 부시다. 숨은 가쁘고,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뛴다. 상쾌한 공기에 기분이 좋다. 파도는 변함없이 그리고 쉼없이 부서져 내린다. 여기서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둘러싸여 전개된다. 보이는 세계는 말 그대로 보고 느끼고 만지는 등 우리 신체의 오감으로 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깅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바다, 파도, 해, 그리고 몸과 땀이 가시적인 것들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보이니까 쉽게 이해된다. 그렇다면, 보이지는 않는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조깅을 하는 내가 느끼는 상쾌하다, 기분이 좋다, 변함이 없다는 것과 같은 감정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추상적이다, 개념적이다라는 이유로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천재들이 인정했던 천재인 17세기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1646-1716)는 세상 만물을 이루는 것으로 모나드라는 것을 제시했다.
Gottfried Wilhelm Leibniz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원초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물리학의 원자 개념과는 달리, 이것은 물질이 아니고, 물리학의 '질점(질량을 가지나 크기가 없고 위치만 주어지는 가상의 물체)'과 같은 관념적인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는 살아있는 영혼과 같은 것으로 세상의 활력과 움직임은 제 각각의 완전한 존재인 이 모나드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monad 이것은 무수하고 각각 다르면서 서로 독립해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활동 원리에 따라 활동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모나드는 우주 자체를 반영하고 우주의 거울이다. 즉, 우주가 가지고 있는 일체를 지니고 있어서,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우주가 구성하는 세계가 바로 대우주이다. 모나드는 자신이 지닌 명료성에 따라서 우주를 반영하는 정도가 다르다. 가장 명료한 성질을 가진 단자가 바로 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아래로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등의 단계적 계층들이 있고, 이 계층들은 하나의 지속적인 선을 형성하면서 연결되어 있다고 세계를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에는 비약이 없고,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완벽주의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지금 세상이 이미 가능한 세계의 최상의 버전이므로, 더 이상의 비약은 필요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이런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주름 개념으로 다시 해석했다.
Gilles Deleuze 이 때 주름은 그의 얼굴 이마에 눈가에 그리고 손에 보이는 주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주름을 입자와 같은 실체가 아니고 끊임없이 분화하는 잠재성으로 이해했다. 거기서 부분들은 부분과 부분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응집력을 유지하는 더욱 더 작은 주름으로 무한히 분할된다고 생각했다. 들뢰즈는 이 우주는 능동적인 힘에 의해 압축된 것과 같다고 말하면서 우주를 바다에 그리고 각 개인을 물방울에 비유했다. 우주에 있는 유기체와 비유기체는 똑같은 물질인 바다를 구성하지만, 그것에 작용하는 각각 다른 힘에 의해 각각의 개인인 물방울들은 차이를 만들어낸다. 유기체에 작용하는 힘은 조형력으로, 태어날 때부터 형성되어 있는 규정들을 따라 내재적으로 작용되는 힘이다. 반면, 비유기체에 작용하는 힘은 한번은 탄성력으로, 또 한번은 조형력으로 접힌 것과 같아서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유기체 것와 다르다고 들뢰즈는 설명했다. 유기체인 우리의 몸은 늘 움직인다. 이 움직임에 따라 우리 살들의 주름들은 펴지기도 하고 다시 접히기도 한다. 이처럼,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들뢰즈의 주름들도 운동을 한다. 들뢰즈는 세계는 3가지 층위가 있다고 했다. 어떤 질료도 미분화의 상태로 남아 있는 잠재성의 층위와 강도의 차이에 따라 개체로서의 차이들이 분화된 개체성의 층위, 그리고 구체적인 모양과 질을 가지게 되는 현실성의 층위이다. 살아 있는 알처럼 내재적인 원인에 따라 잠재성 층위로부터 현실성의 층위로 생성되어 나가는 것을 들뢰즈는 주름이 바깥으로 펼쳐지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안쪽으로 접히는 운동도 있다. 이것은 깊이를 만들고 밀도를 압축시켜 강도를 높이는 운동이다. 들뢰즈는 철학, 과학, 예술 등의 창조적 행위가 바로 잠재성을 안쪽으로 접어가는 행위라고 했다. 예를 들어, 예술가는 주위의 일상적인 소재들을 선택해 그 의미의 밀도를 높인다.
Paul Cezanne, Montagne Sainte-Victoire, 1904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며 모더니즘을 연 폴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수 백번을 그렸다. 들뢰즈는 예술을 재현이 아니라, 감각 존재로 설명했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도 그림의 대상도 관계하면서 그 주체나 대상 어느 하나로도 환원할 수 없는 이 감각의 존재를 스스로 세우는 것이 바로 예술이 하는 일, 즉 예술의 목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대상을 실제처럼 그리는 기교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블록을, 하나의 순수한 감각 존재를 추려내는 방법, 감각 존재를 홀로 서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Montagne Sainte-Victoire 세잔은 똑같은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그는 그 속에서 변화하는 것과, 그리고 변화하는 것들 사이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들을 포착해 했다. 그 때 그는 나는 산과 그림과 하나가 되었다고 말했다. 몰아일체가 된 그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담아내면서 감각의 존재를 세웠다.
Paul Cezanne, Mont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1887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겹겹히 그리고 깊히 접힌 주름들을 느낀다. 또한 형체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는 집들과 들판과 산의 모습에서 완벽한 세상을 보게 된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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