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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2021.03.29 06:58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내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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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내는 음악

 

작년 3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절대 멈추지 않을 듯 숨 가쁘게 발전을 거듭하던 인간의 일상이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테러도 전쟁도 자연재해도 아닌, 고해상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만 겨우 그 생김새를 보여주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고도로 성장한 현대 문명을 ‘일시정지’ 시킨 것이다.

 

누구도 1년이 지난 3월의 ‘오늘’ 역시 그 작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으리라. 지난 1년,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법으로 힘겨운 사투를 벌여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와 일상을 헤집어 놓았고, 누군가를 사재기 열풍으로, 누군가를 파산의 위기로 내몰았다. 또 누군가는 ‘관계 단절’의 절망감으로 몰아넣었다. 감옥살이 같은 생활에 지쳐가던 이들은 저마다 집에 있던 탬버린, 색소폰, 심지어는 냄비 뚜껑을 들고 나와 다양한 악기 소리를 보태 그럴싸한 합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발코니 연주’ 영상들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코로나 바이러스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많은 이들이게 전달되었고, 코로나 시기를 버텨내는 약간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이렇듯 음악’, ‘문화’, ‘예술’의 분야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부지런히 새로운 음악문화 컨텐츠를 만들어내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음악’ 이란?

순식간에 선진국의 의료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수많은 인간관계마저 단절 시켜버린 바이러스의 맹공격 앞에서 과연 음악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음악’의 사전적 의미는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의미 없이 마구 두드려대는 냄비 뚜껑의 마찰 소리를 우리는 ‘음악’이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연대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발코니로 들고 나온 냄비 뚜껑은 훌륭한 악기가 되어 ‘음악’을 연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세를 떨치게 되면서 덩달아 자주 언급되는 흑사병 시기를 돌아보자.

흑사병이 창궐하고 14세기 유럽에서만 7년 이내에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 2천5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 줄어든 인구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다시 흑사병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나이와 신분 직업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기에, 음악가 자신이 목숨을 잃기도 했고, 소중한 가족 중 누군가를 잃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음악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공포와 두려움, 절망감 또는 희망을 음악에 녹여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칸타타 <내 몸 성한 곳 없으니> BWV 25

칸타타 <내 몸 성한 곳 없으니>는 중세의 흑사병과 30년 동안 계속된 종교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시기에 씌여졌다. 이 당시 바흐는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의 교회음악가로서 재직 중이었다. 일주일에 최소 1곡 이상의 모테트나 칸타타를 작곡하며 무려 300개의 칸타타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내 몸 성한 곳 없으니>는 재직 첫해 1723년 8월 23일 삼위일체 대축일 후 열네번째 주일 예배 때 초연 되었다.

이날 예배의 중심 성경내용은 루카복음 17장 11-19절 나병 환자의 치유와 관련된 복음이었다. 그 성경 내용에 맞추어 칸타타의 가사 또한 병들고 아픈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칸타타 <내 몸 성한 곳 없으니>는 총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합창 : 내 몸 성한 곳 없으니

2. 레치타티보 (테너) : 온 세상이 그저 병원일 뿐

3. 아리아 (베이스) : 가련한 저는 어디에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까?

4. 레치타티보 (소프라노) : 사랑하는 나의 주님

5. 아리아 (소프라노) : 저의 보잘 것 없는 찬양에 귀 기울여 주소서

6. 합창 : 내 모든 날에 당신의 전능하신 손길을 찬양하리니


첫 번째 합창 파트는 시편 38장 4절을 가사로 채택했다.

“당신의 노여움으로 제 살은 성한 데 없고 저의 죄로 제 뼈는 온전한 데 없습니다.”

거리 곳곳에 쓰러져있는 신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무거운 선율들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어 질병이 가득한 세상, 전염병의 증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불안함이 테너의 목소리로 낭송된다.

“온 세상이 그저 병원일 뿐 /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사는 이 곳 / 요람에 누운 아이조차 병으로 신음하고 / 가슴에는 통증이 / 펄펄 끓는 고열 / (중략) / 첫 감염자가 모든 사람을 감염시키는 구나 / 아, 이 병균이 온몸에 퍼지고 / 누가 나의 치유자인가, 누가 나를 회복시키나”

낮은 베이스의 음성으로 부르는 비탄에 잠긴 아리아에서는 병으로 고통받는 자의 절박함과 슬픔이 느껴진다.

“아, 가련한 저는 어디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까? / 이 몸의 병균과 부스럼은 / 어떤 약초와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으니 / 나의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여 / 오직 당신만이 내 영혼을 회복시킵니다”

 

바흐의 칸타타는 질병의 고통과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회복과 희망으로 끝맺는다.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합창으로 시작한 칸타타는 그 세상에 살고 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테너, 베이스,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각자의 절망감, 불안함, 비탄을 쏟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내 찾아오는 회복의 순간에 대한 감사와 환희의 합창으로 끝맺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공포 앞에서도 희망에 시선을 두었던 신앙인, 음악가들이 작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위로로 다가온다.

 

죽음의 보편성과 필연성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수 있는 흑사병은 문화, 신앙, 경제 등 유럽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병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검게 변해 비참하게 죽어나갔으며, 끊이지 않았던 전쟁까지 더해져 당시 사람들에게 죽음은 매일 겪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제는 옆집 농부아저씨가, 어제는 대저택 사는 백작 부인이, 오늘은 아랫마을 양치기 소년이... 매일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직업, 나이,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마주치게 되는 죽음의 보편성와 필연성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죽음을 꿈꾸기 시작했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마주치게 되는 죽음의 공포와 필연성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죽음을 꿈꾸기 시작했다.

 

카미유 생상(Camille Saint-Saëns)의 죽음의 무도


2009년 4대륙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스모키 화장을 하고 강열한 검은 의상을 입고 피겨스케이트를 타던 김연아 선수를 기억하는가?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운 강렬한 몸짓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던 음악이 생상의 <죽음의 무도>이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의지는 또 하나의 예술 장르를 유행시켰다. <죽음의 무도>를 주제로 한 많은 회화 작품들에는 해골, 왕, 귀족, 농부 등 다양한 모습을 한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다.

 

원래 생상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는 시인 앙리 카잘리가 오래된 프랑스 괴담을 바탕으로 쓴 시에서 영감을 얻어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으로 작곡되었다. 2년 후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으로 편곡하고, 노래 파트는 바이올린 선율이 대신하도록 했다.

 

지그 지그 작! (Zig et zig et zag!)

바이올린 소리를 흉내 내는 의성어로 청각을 자극하며 시작하는 앙리 카잘리스의 시의 내용 그로테스크 하기 그지없다.

 

지그 지그 작! /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 발꿈치로 무덤을 박차고 나온 죽음은 / 한밤중에 춤을 추기 시작하네 / 지그 지그 작!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겨울바람이 불고, 밤은 어둡고 / 보리수 나무에선 신음이 들려온다 / 하얀 해골이 커다란 수의 밑에서 껑충 뛰며 / 어두운 그림자를 가로지른다

 

지그 지그 직! / 모두들 뛰어들며 / 무용수들의 뼈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음탕한 연인이 이끼 위에 앉아 / 지나간 옛 감미로움을 맛보려는 듯

 

지그 지그 작! / 죽음이 끝없이 악기를 할퀴며 연주를 한다 / 베일이 떨어졌네! 춤추는 여자는 알몸이 되고 / 춤추던 상대 남자가 그녀를 사랑스럽게 끌어 안네

 

(중략)

 

지그 지그 작! / 죽음이 모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춘다. / 지그 지그 직! / 왕이 군중 속에서 농부들과 춤을 춘다

 

하지만 쉿! / 갑자기 춤은 멈춘다, / 서로 밀치며 도망간다 / 수탉이 울었다 / 아! 이 불행한 세계를 위한 아름다운 밤이여! / 죽음과 평등이여 영원하라!


생상의 <죽음의 무도>는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밤 12시를 알리는 하프의 선율로 시작한다. 밤안개처럼 음산하게 깔리는 현악기들의 지속음 사이로 하프가 열두 번 현을 뜯으며 밤 12시를 알린다. 끼-익!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선율을 타고 오래된 관 뚜껑이 열리면 무덤을 박차고 나온 해골들이 빠른 왈츠 리듬에 맞춰 껑충껑충 기괴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검은 하늘 위로는 까마귀와 박쥐떼가 몰려들어 으스스한 광란의 춤사위를 즐긴다.

죽음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저주의 신발을 신은 자들처럼

선율은 무섭도록 빠른 리듬으로 숨차게 달린다

광란의 축제가 맹렬하게 절정을 향해 갈 때,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해골들은 일순간 밤안개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격렬했던 춤사위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서글픈 선율만 남긴 채 곡은 갑작스레 끝을 맺는다.



생상의 자필악보에는 죽음의 멜로디를 연주할 솔로 바이올린 파트에 특별한 메모가 되어있다.

바이올린 현의 일반적인 조율은 ‘솔-레-라-미’인데, 이 네 개의 현 중 가장 높은 음을 ‘미’ 보다 반음 낮은 ‘미 플랫(미♭)으로 조율하라는 뜻이다.

이 변칙 조율을 통해 해골들이 추는 광란의 춤사위가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더 효과적으로 음악 안에 풀어내기 위해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생각한 작곡가의 의도는 적중했고 이 곡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연주되며 음악 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수백 년 전 음악이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는 것처럼, 바이러스는 죽거나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 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벌써 1년을 맞이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처럼, 전염병의 불길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작고 미세한 바이러스와 세균 덩어리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일상은 때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인간은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질 뿐, 또다시 그 두려움, 무력감과 어떻게 마주해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해 갈 것이다.

그 걸음에서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발전되었으며, 우리는 그 역사의 한가운데 살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좌절하기보다 이 위기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음악’은 그 상념의 시간에 더 없는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다시 찾아올 평범한 일상을 기다리며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mchristinay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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