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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2.03.11 16:43
재스퍼 존스 : 생존 작가 미술 작품 중 가장 비싼 이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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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 : 생존 작가 미술 작품 중 가장 비싼 이유 (6)
7. 생존 작가 미술 작품 중 가장 비싼 이유 비싼 미술품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과거 작가들의 작품들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세잔, 고흐, 고갱과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그렇다. 그런데 존스는 아직 살아 있는 작가다. 살아 있는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먼저 그럴 수 있다다. 왜냐하면 그도 이미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빨리 이루어진 셈이다. 그럼, 역사적으로 그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 무엇보다 그는 성공적으로 기존 대세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미술을 제시했다. 추상 표현주의가 높이 평가받긴 했지만 존스는 작품의 목표가 아무리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라도 할지라도 이것이 무엇을 소재로 그렸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건 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존스는 '소재'라는 것을 다시 그림의 중요한 요소로 끌어들였다. 그가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 소재는 다름 아닌 성조기, 미국 지도, 알파벳 글자, 숫자, 과녁 등 대부분 대중들에게 아주 익숙한 기존 이미지들이었다. 재스퍼 존스, Target, 1961 ©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고상함과 감정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추상표현주의 성향에 반대하면서, 그는 국기라는 모두가 아는 대상을 덤덤하게 그렸다. 당시 그의 이런 행위는 그 자체로서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다. Jasper Johns, Numbers in Color, 1981 Exhibition Poster (LARGE)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신경 써서 바라본 적은 없는 그런 사물들을 작품화하는 것을 통해 그는 오브제, 상징, 사물과 미술 사이의 간극을 다루었다. 존스는 이 이미지들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표현했다. 예를 들어, ‘깃발’을 그릴 때 왁스를 녹여서 바르고 그 위에 유화로 그리는 납화기법을 썼다. 그리하여, 깃발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물을 새로운 맥락, 새로운 예술의 영역에 놓이게 했다. 이것을 통해 관객들은 놀람과 동시에 일상적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작품활동을 그는 고급 미술과 일상생활 사이의 경계를 지우면서 앤디 워홀 같은 팝 아티스트 탄생에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존스의 미학은 ‘깃발’이라는 작품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평면화된 색면과 원색을 주로 사용했던 차가운 상업성을 띠는 팝 아트와는 사실 좀 달랐다. 왁스에 적신 신문지 조각을 캔버스에 덧대어 다이내믹한 표면을 구사해, 마치 추상표현주의의 몸짓이 담긴 붓 자국과 똑 닮은 풍부한 질감의 표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재스퍼 존스, White Flag, 1955 © The Metropolitan Museum
이 작품은 존스의 성조기 주제 회화 중 가장 큰 작품으로, 성조기를 단색으로 묘사한 최초의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도 빨리 굳는 재료인 엔카우스틱을 사용해 붓질을 한 획 한 획 분명하게 표현해 냈다. 그래서 48개의 별이 있는 이 성조기 디자인은 변화가 풍부한 표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이처럼 고상함을 예술 모토로 삼았던 선배들에게 일격을 가하면서도 추상표현주의의 감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그의 작품 표면에 남겼다. 그리고 여기에 깃발이라는 일상적 주제를 도입했다. 또한 그는 관객들이 이렇게 그려진 것이 그저 국기인지, 아니면 국기를 그린 작품인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즉, 그는 깃발이라는 사물과 그림이라는 예술을 오가며 사물과 미술 사이 경계를 실험했다. 그래서 그는 사물이 어떤 환경에서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 미니멀리즘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의도에서 성조기를 작품화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존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밤, 거대한 성조기를 그리는 꿈을 꿨다” 그저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그는 깃발이라는 일상적 주제를 택한 자신의 선택을 신비화하고 사물과 예술, 그 어느 쪽으로도 규정짓지 않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이것은 존스의 작품 ‘숫자 0(Figure Zero)’이다. 이 작품은 2010년 5월 11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출품돼 약 400만달러, 한화로 약 43억원에 낙찰됐다. ‘숫자’ 연작도 존스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 하나다. 숫자라는 추상적 개념을 재현한 구상화지만 재현하는 대상이 실존하는 것은 아니므로 구상화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미술에 대한 이런 그의 새로운 개념적 접근은 이후에 등장하는 개념 미술에도 큰 영향을 줬다. 게다가 이 그림에 등장하는 ‘0’은 개념적으로는 추상이지만 숫자의 형태 자체는 어디서나 흔히 구할 수 있는 전형적인 스티커의 모양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사물을 작품화하는 ‘레디메이드(기성품의 미술 작품화)’ 성격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Jasper Johns, Target with Four Faces ,1955 © MoMA
이 작품은 과녁의 기능을 가진 사물인 동시에, 과녁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는 두 가지 성질을 지니는 ‘과녁’ 연작 중 한 점인 ‘네 개의 얼굴과 과녁(Target with Four Faces)’이다. 존스는 모델 얼굴을 석고로 본을 떠서 캔버스 위쪽에 부착했다. 조각품을 덧붙여 회화와 조각의 혼합을 꾀했던 것이다. 3차원적 물질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는 그림의 평면성을 강조하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한편으로는 ‘과녁’이라는 사물을 주제로 선택해 응시하는 관객의 역동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눈 아래쪽 얼굴 부분만 있는 조각품을 붙여 관객과의 시선 교환을 차단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익명성 또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그의 예술세계를 명확한 언어로 분석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저러한 비밀을 그림 이곳저곳에 숨겨놓았고, 또 ‘누구도 이를 해석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그가 스스로 자랑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비평가들은 사실 아예 그의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피해왔다. 전후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대가로 꼽히는 재스퍼 존스는 9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담하고 무심한 듯,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결코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로 대대적인 전시회를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2월 13일까지 휘트니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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