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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2.03.11 17:25
초현실주의는 ‘꿈‘ (‘혁신적인 미술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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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는 ‘꿈‘ (‘혁신적인 미술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다’ 4)
4. 초현실주의는 ‘꿈‘ 1) 오토마티즘 오토마티즘은 무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가가 손의 움직임에 대한 의식적 통제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회화나 드로잉 또는 저술과 그 밖의 여러 작품의 제작에 사용되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오토마티즘은 마음을 촉발하거나 현대 사회의 이성주의에 대한 도전을 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꿈의 활용과도 매우 흡사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식적인 사고를 피하고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낙서와 같은 무의식적인 창조는 즉흥적이고 추상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촉매제와 같은 것이었다. Joan Miró, Dutch Interior (III), 1928 © 2022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앙드레 마송(André Masson, 1896-1987)이나 조안 미로(Joan Miró, 1893-1983)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오토마티즘은 의식적인 마음의 통제나 선택적인 과정을 건너뛰고 생각의 무방비한 과정을 포착해 낸다. 오토마티즘은20세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으로, 다다이스트들에 의해 우연의 효과를 노린데서 확산되었다. 다다이스트들은 오토마티즘을 감정의 개입없이 냉정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이후 초현실주의자들은 오토마티즘을 통해 무의식을 탐험하여 철저하게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에 발표한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오토마티즘을 초현실주의자들의 마술적 예술의 비밀들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너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재료를 갖다 주게 하라. 마음을 그 자체에 집중시키기에 가장 좋은 상태로 돌입하라. 너를 가장 수동적이고 수용적으로 만들어라. 네 자신을 자신의 천재성, 자신의 재능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의 재능과 천재성으로부터 떼어 놓아라”라고 말했다. 이것은 문학 작품의 창작 방법에 대한 것이지만 드로잉과 회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André Breton, Cadavre exquis (Exquisite Corpse), 1932 © 2022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이후에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와 회화 (Le Surrealisme et la peinture)’(1928)에 초현실주의의 근본적인 발견은 어떤 선입견적 의도도 없이 쓰기를 재촉하는 펜과 그리기를 재촉하는 연필이,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최소한 시인이 자신 안에 감추어 둔 감정적인 모든 것을 드러내줄 수 있는, 매우 고귀한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2) ‘그린다는 기쁨’ 르네 파스롱(1920-2017)는 ‘간추린 초현실주의 백과사전’(1984)에 오토마티즘적인 초현실주의 드로잉의 진정한 발명가는 앙드레 마송(Andre Masson,1896~1987)이다라고 했다. Andre Masson, Bull Fight, 1936 © 2022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1923년 혹은 1924년경 마송의 드로잉들은 여기저기에 짐승이나 색의 윤곽선을 암시하는 듯한 방황하는 선들로 발전했다. 마송은 곧 보다 정교한 오토마티즘 기법을 개발했는데 접착성 물질로 캔버스에 드로잉한 후 색 모래를 흩뿌려서 색을 입히는 방법이었다”라고 말했다. 마송은 우아즈의 바라니 태생 프랑스 화가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심한 부상을 입었고, 이런 전쟁 중의 경험은 마송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인간의 본질과 운명에 대한 심오하고 난해한 호기심, 모든 사물의 상징적 통일에 대한 모호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철학적으로 진전시킬 만한 지성이 부족했던 마송은 예술 활동을 통해 그런 사고를 통찰하고 표현하는 데 전념했다. 그가 1950년에 ‘그린다는 기쁨(Le Plaisir de Peindre)’에서 “이것은 본능보다 사고가, 아니면 흔히 영감이라 불리는 것보다 지성이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화가이자 시인들이 다루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진다. 무의식과 의식, 직관과 이해는 초의식 상태에서 눈부신 일치를 이루도록 변화되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했다. 그는 1922년부터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시자들인 미로, 에른스트, 시인 미셀 레리스, 조르주 랭부르와 친해졌다. 브르통의 주목을 받아 마송은 1924년에 초현실주의 운동에 동참했다. 특히 오토마티즘이라는 초현실주의적 실행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를 ‘무의식의 힘에 대한 탐구’로 여기면서 1928년 브르통과의 의견 충돌 후 초현실주의 운동을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 기법으로 작업했다. Andre Masson, Automatic Drawings, 1924-5
물감 대신 풀을 이용해 캔버스 위에 오토마티즘적인 그림을 그린 후 채색된 모래를 뿌려 색채를 입히는 방식으로 회화를 제작했다. 그의 작품은 즉흥적이고 암시적이며 상징적이었다. 1940년 미국으로 간 마송은 뉴욕 그룹의 피신해 온 초현실주의자들 중에서 아슐리 고르키와 함께 추상 표현주의의 초기 단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마송의 모래 회화에 나타난 오토마티즘과 잭슨 폴록이 실행한 미국 액션 페인팅 사이의 유사성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그는 1946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이듬해 엑상프로방스에 정착했다. 마송은 매우 뛰어난 기법과 때로 모호하기는 하지만 독자적인 내적 시각, 외형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눈을 결합시켜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Andre Masson, Lyrical Wreck, 1950 © 2022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그는 ‘그린다는 기쁨’에 이렇게 적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제작한 작품에서 놀라움의 효과가 사라진 뒤 나타나는 진정한 힘은 다음 세 가지 조건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첫째는 선행한 명상의 강도, 둘째는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 셋째는 이 시대 미술에 걸맞는 회화적 수단을 알아내고자 하는 필요성이다.” 초현실주의는 ‘혁신적인 이상한 일‘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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